물 반 전복 반이었다.
공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농장에서 일 할 때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차가 없는 내가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자유롭게 어디론가 갈 수 있다는 사실. 주말이나 평일 오전에 퍼스 시내(Perth City)나 프리맨틀 시내로 나가 여가를 즐길 수 있었고, 호주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무엇보다도 시간만 있다면 '바다'로 나가서 스노클링을 하거나 서핑을 즐길 수 있다는 것.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생활이었다.
여름이 시작되었다. 주말의 바닷가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전복 시즌(abalone season, 전복을 채취할 수 있는 기간)'도 다가오고 있었다.
공장에서 일하기 전, 윤조 형과 함께 로킹엄(Rockingham)의 바다에 나가 스노클링을 하면서 전복을 채취한 적이 있었다(관련 글 - 가끔은 바다). 윤조 형과 함께 전복을 채취하던 그 때. 아직은 바다가 차가웠던 그때는 '전복을 채취할 수 있는 기간'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공식적인 '전복 채취 시즌'이 다가온 것이었다.
공장 동료인 뉴질랜드 출신 가브리엘과 오지 형이 주말에 전복을 잡으러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도 전복을 잡으러 가는 것에 동참하기로 했다. 매년 시즌이 되면 전복을 잡으러 나간다는 가브리은 일을 하는 중간중간 나에게 전복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11월 1일부터 시작되는 전복 시즌. 전복을 잡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라이선스가 있다고 해서 매일 전복을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퍼스 주변의 허가된 장소에서만 잡을 수 있었으며, 잡는 것이 허용되는 시간은 일요일 오전 7시~8시 사이, 일주일에 딱 한 시간뿐이었다. 하루 동안 잡을 수 있는 양도 20마리로 제한되어 있으며, 크기가 작은 것도 잡으면 안 된다고 했다.
"하루 20마리? 그게 어디야, 그거면 충분하지!"
나는 우체국에서 전복 라이선스를 구입했고(시험을 보거나, 자격이 갖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라이선스를 사는 것이다. 일종의 허가증), 주말을 손꼽아 기다렸다. 우리는 밤늦게까지 일을 하며 '아발로니(abalone)~ 아발로니~'를 부르짖었다.
"아발로니~ 아발로니~ 전복들이여, 우리가 간다"
일요일 아침, 우리는 퍼스 북쪽의 노스비치(North beach)에서 만났다. 큼직한 전복이 많이 나기로 유명한 곳인 그곳 해변에는 우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전복을 잡기 위해 모여 있었다. 주차장에서 다이빙 슈트를 갈아입고 전복을 담을 그물망과 고글, 핀(FIN)과 부러지지 않는 다이빙용 나이프를 챙겼다.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 사진 설명 ※ (왼쪽) 전복을 따러 나온 사람들. 서 있는 사람 중 가장 왼쪽이 필자. 그 오른쪽이 오지 형, 그 옆이 가브리엘. 가브리엘은 바닷가에 가족들을 데리고 나왔다.
7시가 되자, 어디선가 하루라기 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이 바다로 우르르 몰려갔다. 첨벙첨벙. 대부분의 사람들은 깊지 않은 곳의 암초에 붙은 전복을 잡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우리의 관심은 그런 곳에 있는 전복이 아니었다. 핀과 아쿠아슈즈, 다이빙 슈트로 무장한 우리는 그물망과 나이프를 들고 바닷물 속으로 성킁성큼 걸어 들어갔다. 바람이 불면서 약간은 거센 파도가 몰아쳤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파도를 뚫고 좀 더 깊은 곳에 있는 암초를 찾았다. 물 속에 있는 우리에게 파도의 공격은 무의미했다.
눈앞에 펼쳐진 '전복 밭'. 물 반 전복 반이었다. 처음엔 손바닥 만한 전복 20마리를 어떻게 잡아라는 생각을 했지만, 눈 앞에 놓여 있는 전복들을 보니 손바닥 만한 전복 100마리라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20마리 밖에 잡지 못한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20마리를 초과해서 채취한 사실이 발각되면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했다.
하루 제한 양인 20마리를 채우는 데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공식 허가 기간 첫날이라서 그런지 전복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고, 건져 내기만 하면 되었다. 물속에서 내가 했던 유일한 고민은, '어디에 전복이 있을까'가 아니라 '여기 있는 이게 클까, 아까 잡은 전복이 클까'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물속에서 전복의 크기를 비교해 보고, 큰 것은 그물망에 넣고 작은 것은 물속에 풀어주었다.
'넌 좀 더 커야겠어. 아쉽지만 안녕.'
※ 사진 설명 ※ 전복 라이선스/허가증(왼쪽)와 바다에서 잡아온 전복들.
매 주 일요일 아침, 오지 형, 가브리엘과 함께 '전복'을 따러 바다로 나왔다. 손바닥 만한 전복을 바리바리 싸들고 집(셰어하우스)으로 돌아가면 함께 살던 사람들이 나를 반겼다. 혼자는 도저히 다 먹을 수도 없었고, 나눠 먹어도 많은 분량이었다.
밥을 할 때는 전복이 들어간 '전복 밥'을, 볶음밥도 '전복 볶음밥', 스파게티에도 전복이 들어간 '전복 스파게티', 비빔밥도 '전복 비빔밥', 죽도 '전복죽'. 그리고 라면을 끓여 먹을 때도 자연산 전복이 들어간 '전복 라면'을 끓여 먹었다. 모든 음식에 전복이 들어갔지만 여전히 냉장고는 전복으로 가득차 있었다.
자연산 전복 라면.
호주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앞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