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마지막 질문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척박한 환경 속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남자는 아버지의 권유로 컬럼비아 농과대학에 입학한다. 남자는 꿈과 희망을 사치라고 여겼다. 먹고 사는 문제해결이 우선이었다. 고된노동과 흥미를 갖지 못했던 학업을 병행하던 남자는 대학교 2학년 때 영문학 개론 강의를 듣고 나서 인생의 변환점을 맞이한다. 남자는 문학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농부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남자는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스토너>라는 제목은 주인공의 이름이다.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영문학자가 되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40년 동안 영문학을 가르쳤던 스토너의 일생을 그린 책이다.
독자는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의 삶이 멋지고 드라마틱하기를 원한다.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거나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원한다. 독자들의 이런 기대는 소설가로 하여금 점점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만들게 한다.
인생의 한 단면만 떼고 보면 엄청난 사건들이 있다. 그 순간은 평생 못 잊을 것 같은 상처들, 사랑, 아픔, 찢어지는 고통들이 존재한다. 그때는 전부였던 것들도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지고, 퇴색되어 간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나면 맑은 하늘이 나타난다.
소설 <스토너>는 주인공 스토너의 일생을 통해 그런 삶을 보여주고 있다.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스토너는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재미없고, 지루한 사람처럼 보인다. 학자로서 명성을 얻지 못했고, 교육자로서 학생들의 인정을 받지도 못했으며, 사랑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선하고 참을성이 많고 성실한 성격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소설 속 주인공인 영웅처럼 불굴의 용기와 지혜로 어려움을 헤쳐나가지 않았다. 그에게 닥친 인생의 위기를 조용히 인내하며 기다렸다. 어떤 순간에도 쉽게 동요되지 않았고, 그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 냈다. 그런 스토너의 모습은 답답하면서도 안타까웠다.
세상살이는 자신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 나이가 되었는데도 스토너는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안으로 안으로 삭히다 보니 속에는 커다란 종양이 생겼다. 스토너의 모든 인내와 고뇌가 합쳐진 결과물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가 안쓰러웠다. 그의 삶이 애잔하고 슬펐다. 딱히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스토너를 이해하지 못하고 배척했다. 일방적으로 울타리를 쳐 놓고, 그 안에서 살려면 자신들의 의견을 따르라고 강요했다. 스토너는 울타리 안에 들어가느니 춥고 어두운 바깥에서 혼자 있기를 원했다.
스토너에게 필요한 것은 책을 읽을 작은 공간이었다. 스토너는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펼쳐내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어떤 환경에서도 스토너는 큰 불만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삶은 그의 기준에 의하면 훌륭한 것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스토너가 강의를 할 때 몰아지경에 빠져 총장이 온 줄도 몰랐다는 장면은 스토너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게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저마다 할 일을 하며 오늘 하루도 무탈했음에 감사하며 잠자리에 든다. 매일 행복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되면 행복의 소중함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다. 행복했던 그 짧은 순간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마치 스토너처럼
스토너는 기둥 같은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건물을 볼 때 화려한 외양에 눈이 돌아간다. 벽돌과 건물의 모양, 지붕, 커다란 유리창에 감탄한다. 정작 건물을 받치고 있는 것은 기둥이다. 기둥은 볼품없이 혼자 서 있다. 하지만 기둥이 없으면 집이 무너진다.
세상에는 화려하고 멋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임기응변에 능하고, 센스가 빛나며, 인간관계를 능수능한하게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그들이 끌고 가는 세상 속에서 스토너는 재미없는 사람이다.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으며, 자신의 일만 하느라 인생을 낭비한 바보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스토너가 좋다.
그는 견디기 힘든 맹렬한 폭풍 속을 지나갈 때처럼 고개를 숙이고, 옷깃을 단단히 여며고, 생각을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는 데만 고정시킨 채 전쟁의 시기를 보냈다. 단단한 인내심과 무신경으로 보내는 한편 전쟁의 두려움과 죽음을 갈망했다.
그는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되뇐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스토너가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난한 집에서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대학을 선택한 후부터 스토너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갔다.
결혼과 출산, 아내의 기이한 행동과 교수로서의 수업, 갑자기 찾아온 불같은 사랑과 이별, 그리고 지독한 상처를 남긴 전쟁을 겪었다. 그가 자신의 실수 혹은 남의 잘못으로 인해 겪는 고난은 누구나 살면서 겪게 되는 고난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었다. 그의 결혼생활은 불행했고, 하나밖에 없는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매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았다. 지나간 일에 의미를 두기 보다 인생을 관조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흘러가는 것을 억지로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인생을 통달한 사람 같았다.
나는 어떤가?
'나는 과연 내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했나? 무엇을 기대하고 있나?'를 물어본다. 아직은 대답할 때가 아니다.
먼 훗날 그날이 올 때까지 스토너처럼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