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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Jul 28. 2024

응원대장

-어떤 사람이 전자책을 썼는데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대.

아침밥을 먹던 남편이 말을 꺼냈다. 남편은 스몰토크를 하지 않는다.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모두 의미가 있고, 오랫동안 생각해서 진하다. 그래서 남편이 말을 하면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남편의 얼굴을 쳐다본다. 


남편과 달리 나는 말이 많다. 어렸을 때부터 많았다. 엄마는 나를 말장시라고 불렀다. 물에 빠져도 입만 살 것이라고 했다. 말로 먹고살겠다는 말도 들었다. 특히 남편에게 말을 많이 한다. 남편은 듣고, 나는 미주알고주알 종알거린다. 얼마 전에 응모했던 게 떨어져 속상하다는 말을 종일 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다음 기회가 있을 거라며 위로했는데,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게 아니니까 이것저것 해 보라고.


남편의 말에는 해석이 필요하다. 주어와 서술어 목적어가 뒤죽박죽이다. 암호처럼 툭툭 튀어나오는 말을 조합하는 것도 내가 할 일이다. 


-그러니까 오빠 말은 내가 쓴 글을 전자책으로 만들어보라는 거지? 소설은 계속 퇴고하면서 응모하고. 

-응

-근데 오빠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너무 좋다. 


남편이 다시 입을 닫았다. 21년째 살고 있는 우리는 척하면 척이다. 눈만 봐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안다. 가끔 알고 있다고 생각하다 오판을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맞다. 지금 남편은 나를 걱정하고 있다.


브런치나 블로그에 글은 많은데 하나도 엮지 못하는 글들뿐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책으로 엮으라고 하지만 어떤 주제로 만들어야 좋은지 감도 잡지 못했다. 독자는 아무 이유 없이 책을 읽지 않는다. 책을 통해 하나라도 얻기를 원한다. 감동이나 재미, 동경과 존경이라도 하고 싶어 한다. 독자로서 나는 그렇다.


문제는 내 글을 누가 읽을 것인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 뭐 하나 성공해 본 적 없는 사람, 중구난방의 글을 모아놓는다고 책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내 책을 소개할 때 뭐라고 할 건지 생각하면 막막하다. 그러면서 매일 글을 쓴다. 하나의 주제로 모아지지 않는 글은 퍼져나간다. 멀리멀리 퍼져서 점점 희미해진다. 처음에는 뚜렷했던 것들을 방치했다. 내 잘못이다.


남편은 모른다. 그저 내 이야기만 듣고 안쓰러워한다. 솔직히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내가 쓴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어줘도 남편은 묵묵부답이었다. 첫 번째 독자는 말이 없다. 크게 바란 적이 없었지만 가끔 섭섭할 때가 있다. 그래도 남편에게 읽어줬다. 그 대답을 오늘 들었다.


-오빠, 고마워. 내가 조금 더 생각해 볼게. 방학 때는 정신이 없으니까 조금 미뤘다가 개학하면 본격적으로 글 쓸게요. 그때는 오빠가 나 많이 도와줘야 해.

-싫은데.


고개를 돌리는 남편의 엉덩이를 툭 치고 일어나 커피를 내렸다. 연한 아메리카노를 건네고 소파옆에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을 봤다.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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