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덕근 Mar 02. 2021

딱 20%만 더 도전하자

위험한 것에 도전하라는 말은 틀렸다. 위험에 섣불리 도전하다가 잘못하면 재기불능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양극화가 심화될 때, 그러니까 한쪽에는 코로나로 인해 취업도 제대로 안 되는 한쪽과 재테크로 이른바 파이어족이 된 사람들의 성공의 갭은 나도 빨리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한다. 공포와 성공신화를 당근과 채찍 삼아 흔든다.


극단적 선택은 극단적 상황을 만든다. 크게 성공하거나 재기 불가능으로 떨어뜨리거나. 그리고 대다수는 후자가 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노출되는 것은 성공사례가 다수다. 성공사례를 듣고 싶어 하지 실패사례를 듣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수많은 실패사례에 귀를 기울이기도 힘들 뿐더러 쉽게 공유되지도 않는다. 누구도 그걸 입밖으로 꺼내는걸 꺼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도전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은 좋은 걸까? 그것도 틀리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변한다.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때문에 우리는 적당한 것에 투자를 해야 한다. 사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항상 투자를 하며 살아왔다. 그게 돈이 돈을 버는 투자만 하지 않았을 뿐이다. 자기 계발, 교육, 대학 진학, 스포츠 등록 등은 모두 투자에 가깝다. 그중에 어떤 것은 성공했을 것이고 어떤 것은 본전도 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투자는 계속 이어진다.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투자와 도전은 비슷하다.


교육을 생각해보자. 초등학생에게 고등학교 수학을 가르치면 잘 따라오는가? 항상 100점을 맞지 않았다고 야단칠 수 있는가? 높은 기준은 의욕보다는 포기를 선택하게 한다. 막연함이 두려움을 낳기 때문이다. 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상위권이 받는 트레이닝을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이든 단계가 있고, 그 단계를 차곡차곡 올라가야만 높은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때문에 눈은 높되 지금 시작하는 단계는 이전 대비 딱 20%만 더 올리면 된다. 이것도 여의치 않다면 10%만 더 높은 기준으로 삼으면 된다. ’이 정도면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모험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별거아닌 것들이 누적되면 엄청난 것들로 다가온다. 흔히 말하는 복리효과다.


한 번에 하이리스크를 쥐어 자신의 운명을 점치는 것보다 하나씩 쌓아나가 운명을 만들어가는 길을 선택해보는 건 어떨까? 그 길은 분명 지루하고 오래 걸리지만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이다.




함께 보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lemontia/387

https://brunch.co.kr/@lemontia/245


매거진의 이전글 왜 이리 자신감이 넘치냐는 말을 들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