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르무통 LeMouton May 24. 2024

물과 산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자라섬

온몸에 사랑을 가득 품고 

내 운명을 구원한 너에게 


자라섬은 강아지와 함께 하는 산책 코스로 정말 최고다.


자라섬은 강아지와 함께 하는 산책 코스로 정말 최고다. 잘 가꾼 넓은 잔디밭이 여기저기 있고 섬의 지형을 따라 나무와 꽃과 얕은 동산과 돌길을 번갈아 걸을 수 있다. 옆구리에 강 풍경을 끼고! 자라섬에 갈 때면 공을 챙겨간다. 가끔은 운 좋게 에너지 넘치는 강아지와 실컷 공놀이를 할 수도 있다. 오프리시는 불가하므로 길고 긴 리드줄을 몸에 걸고! 


자라섬은 둘레를 둘레둘레 걷기만 해도 좋다


자라섬은 둘레를 둘레둘레 걷기만 해도 좋다. 벌써 더운 기가 올라오는 5월, 강아지는 혀를 길게 빼고 자라섬을 누빈다. 길고 넓게 걸을 수 있는 곳, 자라섬에서 양껏 걷고 뛰는 나의 강아지를 볼 때마다 운명에 대해 생각한다.


이번 반려길 산책을 함께한, 나의 반려신발 르무통 스타일2 (베이지) 와, 나의 반려견 로카


처음 만났을 때 강아지의 추정 나이는 7살이었다. 의사는 강아지의 길고 부드러운 입술을 들어 치아를 확인하며 말했다. 정확하진 않지만 7살즈음 되어 보여요. 더 어릴 수도 혹은 나이를 더 많이 먹었을 수 있지만 그 언저리일 겁니다. 7살 강아지, 어느 날 갑자기 동네를 떠돌아 다니던 강아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때에 절은 붉은 줄무늬의 목줄을 하고 있었는데 목줄을 채웠던 사람은 왜 강아지를 놓아버린 걸까. 목욕으로 해결되지 않을 정도로 엉키고 뭉친 털을 잘라내며 생각했다. 우리 강아지는 몇 명의 주인을 거쳤을까? 단 한 명에게 버림 받은 거였다면 차라리 마음이 덜 아플텐데,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나고 쫓겨나고 만나고 쫓겨나는 걸 반복하진 않았겠지. 


떠돌던 강아지도 훌륭한 집강아지가 될 수 있다고


떠돌던 강아지도 훌륭한 집강아지가 될 수 있다고, 20kg이 넘는 강아지도 충분히 집안에서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우리 강아지의 히스토리를 이야기할 때마다 TV프로그램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수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지 못하도록 키우던 강아지의 귀를 막던 할머니의 손. 미안해, 자꾸 너의 아픈 이야기를 소문내서. 하지만 옛일 따위 다 잊고 신나게 뛰어 노는 최고로 멋진 강아지의 모습을 보고 또 다른 멋진 강아지 친구가 신나는 견생을 살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 거니까, 좀 봐줘.


이번 반려길 산책을 함께한, 나의 반려신발 르무통 스타일2 (베이지) 와, 나의 반려견 로카


구조되어 집에 왔을 때 강아지는 혹시 자기를 해치는 건 아닌지 호시탐탐 낯선 환경에서 탈출하려고 했다. 함께 살게 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강아지를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괜찮아, 다 괜찮아, 널 아프게 하지 않을 거야. 괜찮아, 다 괜찮아, 이제 우리 잘 해보자. 


집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것, 집 안은 절대 배변하는 장소가 아니라는 걸 익힐 때까지 우리 둘 다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래서 그렇게 큰 개는 밖에서 키워야 한다, 는 참견을 들을 때면 귀를 꼭 막고 입을 꾹 닫았다. 괜찮아질거야, 좋아지겠지, 잘 할 수 있어, 믿어준 대로 강아지는 조금씩 적응해갔다. 밥 때를 기다리고, 간식을 요구하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꼬리를 흔들면 반겨줬다. 그러다가… 뒷다리 사이로 말려 들어갔던 강아지의 꼬리가 조금씩 펴지다가 마침내 하늘을 향해 쭉 뻗어 360도 빙그르르 돌았던 날 꼬리가 없는 나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길 없어 그저 껑충껑충 뛰기만 했다. 뛰면서 다시는 네가 혼자 있을 일은 없을 거라고 이제 너의 운명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소리쳤다. 


이번 반려길 산책을 함께한, 나의 반려신발 르무통 스타일2 (베이지)


운명에 대해 생각한다. 강아지를 만나기 전이었다. 술자리에서 명리학을 공부했다는 누군가에게 내 사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생년월일시를 말하고 눈을 반짝이며 의자를 당겨 앉았지만 좀처럼 그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애플리케이션에 사주정보를 입력하던 그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음, L 씨의 사주는… 이라는 말을 어찌나 천천히 하던지. 왜요, 별로야? 아뇨 아뇨, 그렇진 않아요. 


나라는 사람은 나무에 비유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결심했다는 듯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라는 사람은 나무에 비유할 수 있다고 했다. 나무 중에서도 바위를 뚫고 자라난, 바위 위의 멋지고 큰 소나무라고. 술자리에 있던 친구들이 오~ 하고 탄성을 보내왔다. 바위 위의 멋지고 큰 소나무, 근사하다는 친구들의 말 사이로 문제는, 이라며 사주를 본 그가 말을 이었다. 문제는 외롭다는 거예요. 숲 속의 나무도 아니고 들판의 나무도 아니고 바위 위라, 외로워요. 외롭다는 말에 내가 한숨을 쉬고 술을 들이켜자 그가 다급하게 말했다. 외로운 건 나쁜 게 아니에요. 그리고 바위 위의 나무를 누군가 발견하면 그걸로 끝이에요. 멋진 나무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 사람들이 엄청 드나들거든요. 


나는 왜 하필 그 해, 그 달, 그 날, 그 시간에 태어나 이렇게 외로운 것인가


그날밤 집으로 돌아오면서 괜히 눈물이 났다. 혼자 있는 걸 즐기며 산다고 생각했는데 외로움이 운명이라고 하니 사무치게 외로워졌다. 갑자기 험준한 산등성이, 오르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단단한 바위 위에 선 기분이었다. 나는 왜 하필 그 해, 그 달, 그 날, 그 시간에 태어나 이렇게 외로운 것인가, 억울하고 화가 나서 편의점에 들러 술을 샀다. 씻지도 않고 주저 앉아 500ml 맥주캔을 따서 노트북을 열었다. 


곱게 포장해 마음 한쪽 구석에 잘 숨겨놨던 외로움이 갑자기 제 모습을 드러냈다.


메일함 속 먼 곳에 사는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편지를 다시 읽고, 업로드했던 SNS의 사진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내가, 외로운가? 알고보니 나는 외로웠던가? 신기하게도 갑자기 사무치게 외로웠다.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고즈넉한 내 삶에 대만족이었는데. 나이를 먹고 속을 다 내어보여도 괜찮을 친구들이 하나 둘 자신의 삶을 만들어 떠나고, 나의 생을 온전히 책임지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동안,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지나쳤는데 아니었구나. 곱게 포장해 마음 한쪽 구석에 잘 숨겨놨던 외로움이 갑자기 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반려길 산책을 함께한, 나의 반려신발 르무통 스타일2 (베이지)


그날 이후 나는 때때로 외로웠다. 전에는 외로움이라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차라리 듣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살았더라면 좋았을 걸. 괜히 그런 건 왜 물어서 스스로를 볶아대고 있나 후회를 하는 날이 잦아지던 그 즈음 강아지가 내 삶 속으로 들어 왔다. 강아지를 돌보느라 나는 내 팔자고 운명이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강아지가 마킹해 놓은 패드를 빨고, 집안에 싼 똥을 치우고, 밥을 먹이고 씻기고 산책하고 또 산책하고 또 산책을 하고. 강아지와 있느라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었지만 사람에 싸여 있을 때보다 덜 외로웠다. 


이번 반려길 산책을 함께한, 나의 반려신발 르무통 스타일2 (베이지) 와, 나의 반려견 로카


어느 날 강아지와 자라섬에 산책을 나가 긴 리드줄을 매고 공놀이를 했다. 강아지는 귀를 펄럭이며 천천히 걸어와 입에 문 공을 내 발 아래 떨어뜨리길 반복했다. 나는 그 때마다 두 팔을 벌렸고, 강아지의 얼굴을 잡고 뽀뽀를 쪽, 했다. 꼬리를 360도 빙글빙글 돌리며 눈 맞추는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알았다.


이 녀석이 살아 있는 한 나는 외로울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녀석이 살아 있는 한 나는 외로울 일은 없을 것이다. 강아지를 구해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강아지는 자신의 운명을 걸고 온 힘을 다해 바위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나를 찾아와 준 것이었다. 온몸에 사랑을 가득 품고서. 


그런 강아지를 위해 자라섬을 찾는다. 너른 초록의 기운을 흠뻑 받으며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내 외로움의 부스러기를 가뿐하게 쓸어내주는 나의 데스티니, 오늘도 걱정없이 꿀잠자렴. 



반려길이란?

길을 입양해서 가꾸며 평생을 돌보는 나의 반려길 프로젝트, 르무통이 시작합니다. 


* 나만의 반려길을 소개해주세요

댓글에 나만의 반려길을 소개해 주세요. 그 길을 사랑하고 아끼는 이유, 길의 위치, 역사, 길에 얽힌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적어주세요. 에디터 L씨가 그 길을 소개합니다. 매주 3명의 당첨자를 선정해 르무통 공식몰 적립금 5만원과 르무통 매거진을 드립니다.

이전 10화 쇠퇴한 산업의 현장이 이국적인 공간이 되기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