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목욕탕

어린 시절의 추억

by LenaMilk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따라다녔던 목욕탕. 그때만 해도 (내가 90년대 초반 생이니,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동네에 목욕탕이 여러 개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단순하던 목욕탕의 기능도 점차 큰 사업 아이템으로 각광받으며 큰 사우나 시설과, 컴퓨터실, 오락실 그리고 심지어 수영장과 각종 온천탕, 헬스 시설을 갖춘 큰 찜질방으로 변화했다. 그렇게 찜질방의 매력에 빠져들어 매주 주말이면 부모님과 함께 찜질방에 가고는 했다. 찜질방에 있는 식당에서 된장찌개를 먹고 후식으로 식혜를 마시며 컴퓨터를 하고, 동네 만화방에서 빌려온 만화책을 보며 찜질방에 누워있고는 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놀다가 엄마와 함께 여탕으로 들어가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왔다 갔다 하면서 물속에서 놀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갔다. 목욕탕에서 땀 빼고 광낸 후 집으로 돌아오면 일주일의 긴장과 피로가 싹 풀리고는 했다.


이런 최신 찜질방이 유행하면서 지방에도 최고 시설을 갖춘 큰 찜질방들이 생겼다. 하나의 테마 파크처럼 다양한 오락 시설과 무엇보다 수영장 같이 큰 목욕 시설과 탕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이 유행도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은 듯하다. 그래도 10년 가까이는 유지되며 동네 주민들이 몰려들던 찜질방들도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다.


나이가 먹으며 아무래도 옷을 벗고 맨몸으로 동네 사람들과 마주치는 게 어색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우나와 뜨거운 물의 답답함, 다 같이 공유하는 공중목욕탕의 찝찝함을 인식하고서부터는 나 조차도 발길을 멈추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 부모님은 매주 목욕탕에 가셔서 땀을 빼고 찜질방의 운동 기구 시설을 이용하셨다. 반면에 나는 집에서 각질을 제거하고 피부 관리를 할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을 쓰면서 관리를 했지만 역시나, 사우나와 뜨거운 탕에서 땀을 흘리고 때수건으로 때를 밀고 난 후에 볼 수 있는 보들보들한 살결과 얼굴의 광은 목욕탕에서만 가능한 듯했다. 그렇게 어쩌다 한 번씩 어머니와 목욕탕에서 시간을 보내며 모녀지간의 비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소소한 재미로 자리 잡았다. 그래도 여전히 어릴 때만큼 자주 목욕탕으로 발길이 가진 않았다.


결혼을 하고 새로운 터에 자리를 잡으며 그래도 한 번씩 갔던 이제는 부모님 동네가 되어버린 그곳의 목욕탕이 그리워졌다. 그리고 새로운 동네의 주변을 살펴보니 정말 바로 집 앞에 대중목욕탕이 있었다. 정말 오래된 목욕탕인 듯했다. 예전 모습을 갖춘 단순한 대중목욕탕이었다. 그 앞을 지나다니며 한 번은 꼭 가봐야지 하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한 이유는 아무래도, 새로운 사람들을 마주치고 새로운 공간에 들어서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MBTI 테스트를 하면 평생 극 I가 나오는 나로서는, 항상 새로운 것을 마주하는 것이 즐거우면서도 부담스럽다. 특히나, 사람을 마주치는 것은 나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한다. 꼭 그들과 개인적인 관계를 쌓아가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냥 모르는 사람을 마주치는 것 자체가 갈수록 부담스러워진다.


이렇게 머뭇거리던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전날 친구들과 오래간만에 원 없이 술을 마신 나는 그다음 날의 숙취로 고생하고 있었다. 잠도 오지 않았고 온몸이 아픈걸 보니 다시 한번 만취할 정도로 술을 마신 나 자신이 싫어졌다. 어떻게 숙취를 풀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목욕탕이 생각났다. 뜨거운 물과 텁텁한 사우나에 가서 땀을 흘리고 나면 몸이 좀 풀리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 구비되어 있는 가벼운 목욕 제품과 마트에서 구매한 시원한 삼다수 하나를 사들고 목욕탕을 찾았다.


정말 기본만 갖춘 오래된 목욕탕임에도 입장료가 8천 원이나 했다. 그렇게 8천 원을 결제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다. 오래된 사물함 안에서는 약간은 꿉꿉한 냄새가 나길래, 열어져 있는 사물함을 골라 그곳에 옷과 신발을 벗어 보관한 후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목욕탕은 딱 봐도 낡았지만 매우 깨끗했다. 새신사 할머니 두 분과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 그리고 아주머니 몇 분이 전부였다. 그렇게 샤워를 하고 작은 탕으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은 탕이 2개였고, 차가운 물 1개 그리고 2개의 사우나 방이 있었다. 미지근한 물과 뜨거운 물을 왔다 갔다 하며 몸을 풀고 차가운 물에 들어가 몸의 열을 낮춘 후 사우나에 들어가 멍을 때리다 보니 몸이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그렇게 앉아있다 보니, 새삼 가정교육과 가정환경이 얼마나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게 됐다. 어릴 적부터 주말이면 목욕탕을 가시던 어머니, 그리고 매달 찜질방 이용권을 구매하시고 새벽같이 찜질방에서 운동&목욕을 하시며 하루를 시작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라다 보니, 이렇게 나도 어느덧 30대가 되어 목욕탕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실제로, 따듯한 물과 차가운 물을 왔다 갔다 하며 몸의 온도를 조절하고 땀을 빼는 것이 혈액순환에 좋다고 한다. 당연히 땀을 흘리다 보니 피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동네 목욕탕을 이용하다 보면 그곳에서 모임이 생기기도 한다. 아주머니들끼리 사우나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다가 동네 친구가 되기도 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반면에 하루하루가 무료한 아주머니들의 신세한탄 그리고 자식 자랑 사위 자랑 돈 자랑의 무대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평생을 살아온 동네의 목욕탕은 약간은 부담스러웠다. 나의 살찐 모습에 살을 빼라고 사람들 앞에서 훈수를 두는 아주머니도 만나봤다. 워낙 20대에 호리호리 했던 터라 살찐 게 티가 많이 나긴 했지만 몸무게가 늘어남에 따라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것은 당사자인 나였다. 그런 점에서 새로 이사 온 곳의 목욕탕에는 서로 잘 모르는 할머니와 아주머니들 가끔가다 내 또래의 젊은 새댁 몇 명이 전부였기에 매우 조용했다. 앞으로 이 목욕탕에 정을 붙이고 자주 이용할 듯하다.


keyword
이전 11화서울에서 먹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