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굽는 계란빵 Mar 20. 2024

아찔한 제안

준혁은 기존 팀장으로 있던 부서에서 본부로 옮겨오면서 몇 가지 숙제를 건네받았다.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시장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온라인 시장과 접목하여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만족스러운 결과물. 곧 매출을 올리라는 말이었다.


미소에게 받은 자료를 보니 오프라인 매출은 작년에 비해 형편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말이 쉽지 기존 본부장이 벌여놓은 일을 수습하기도 버거운 상황에 매출상승이라. 


'이 자리에 올려둔 이유가 있겠지.'


매출보단 사랑이 우선이었지만 일단 안전한 길을 가기 위해선 대표 눈밖에 날 필요는 없었다. 


"제안 하나 할게요."

"무슨 제안입니까?"

"오프라인 매출 한 번에 올려드릴 제안입니다."


대체 무슨 제안이길래 들어나 보자라는 심정이었다. 헌데 생각보다 솔깃했다.


'그거면 대안이 될 수도 있긴 하겠지.'


알고 보니 수민의 어머니는 유명한 공간크리에이터였다. 


"도연경 씨 아시죠?"


요즘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마트 1층도 판매하는 코너가 아닌 먹고 즐기는 공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리뉴얼되는 파주의 아웃렛은 공간디자인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조경, 내부, 실내 디자인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었다. 얼마가 들더라도 최고랑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쪽에선 미팅조차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조건이 있어요."

"뭡니까?"

"저 본부장님 좋아해요."

"근데요."

"저랑 사귀어요."


다짜고짜 찾아와서 제안이라고 내놓은 것이 사귀자? 준혁은 자신의 우습게 보인 것 같아 화가 치밀었다. 


"오주임은 내가 참 쉽죠?"


쉽다니 무슨 말이야? 쉬운데 왜 나한테 안 넘어가? 평소엔 늘 본체만체 유령 취급하며 입사 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눈길 한 번 준 적이 없었다. 혼자 몰래 좋아하는 것도 그렇지만 공미소와 묘한 기운인 게 영 찝찝했다. 안 그래도 파주 아웃렛 리모델링으로 접촉하고 있는 사람이 엄마인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허락 따위 필요하지 않았다. 무조건 들어주실 거니까. 근데 뭐 쉬워? 


"무슨 말씀이시죠? 쉽다니요?"

"그런 제안이라면 받을 생각 없으니 나가보세요."

"후회하실 텐데요."

"내가 그 정도로 무능해 보입니까? 할 말 끝났으면 나가보세요."


수민은 발을 쾅쾅 구르며 본부장실을 나왔다. 


'힘들고 어려운 길 쉽게 가게 해주겠다는데 이걸 마다한다고? 어이가 없네.'


화가난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네가 안되면 다름 사람을 이용하는 수밖에. 수민은 로그인을 하고 미소에게 메시지를 날리기 시작했다. 공미소 네가 얼마나 쓸모가 없는지. 그에게서 떨어져야 하는지 이유를 분명히 알려주면 되는 거였다. 


- 공주임. 아까 말한 소개팅 토요일 오후 3시 OO호텔 앞이다.


모르는 미소에게 메시지를 던졌다. 


- 뭐? 무슨 소리야? 생각해 보기로 했잖아.


뻔한 대답. 


'그럴 줄 알았지.'


- 생각해 보는 게 한다는 말 아니었어? 난 그래서 바로 약속 잡았는데.

- 취소해. 

- 어우야. 이렇게 바로 취소하면 내 얼굴이 뭐가 돼?

- 그러니까. 네가 벌인 일. 네가 수습해.

- 아, 몰라. 010-XXXX-XXXX 연락처 줄 테니까 취소든 뭐든 알아서 해. 팀장님이 찾으신다. 이만!


'어호. 뭐 이런.' 


미소는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대체 뭘 먹으면 저렇게 얄미워질 수가 있는 건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나저나. 이걸 내가 왜 수습해.' 


가뜩이나 소개팅 때문에 준혁과 사귀자마자 싸울 뻔했다. 그의 냉랭한 분위기. 생각할수록 분했다. 


'진짜 오수민!! 가만 안 둬!'


미소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머리가 어지러워 일을 할 수가 없었다. 탕비실로 들어가 아이스 리떼 버튼을 눌렀다. 열을 식히며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수민과의 악연 아닌 악연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입사 후 신입사원 연수 때의 일이었다. 




작가의 말.

악연이 시작된. 그 날로 돌아갑니다.


이전 05화 열기로 채워진 본부장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