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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굽는 계란빵 Feb 21. 2024

붉은 입술

준혁은 미소의 입술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젤리처럼 말랑해 보이는 아랫입술을 엄지손으로 문질렀다. 미소의 몸은 그의 손이 움직이는 대로 부르르 떨렸다.


"과장님...... 그만."

"모르겠다며."


미소는 뾰족한 바늘을 쥔 손으로 준혁의 어깨를 밀어냈다.


'어깨야, 돌덩이야.'


"어떻게 남자를 힘으로 이기려고."


끄떡도 하지 않는 어깨는 미소가 감당할 수 없는 힘이었다.


"그런데 과장님. 저 싫어하셨잖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과장이 누군가.


'이런 쉬운 수식도 못 넣습니까?, 통계가 엉망이잖아요. 다시. 다시. 다시.'


매번 다시를 외치던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데 왜? 요즘 좀 이상하다 싶긴 했는데. 이건 아니지. 급발진이지.


"내가요?"

"네. 과장님이요."

"싫어한 적 없는데. 그래서 싫어요?"

"네?"


준혁은 피식 웃더니 미소의 손에서 바늘을 가져와 반짇고리에 넣었다. 단추를 다느라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살며시 넘겨주었다. 그리곤 볼을 쓰다듬었다. 보드랍고 말랑했다.


"이쁘네. 공미소."


'지금 나보고 이쁘다고 한거야?' 한과장이 단단히 돌았구나. 뭘 잘못 먹은거지.


"출발할까요?"

"네? 네."


미소의 화끈거리는 볼에 연신 손부채질을 했다. 그가 만진 볼은 낮술을 한 것도 아닌데 태양보다 더 붉어졌다.


'공미소 정신차려!'


/


병원을 다녀온 미소는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 겨우 자리로 돌아왔다. 아침부터 무슨 일인지 정신이 혼미했다. 숨 돌릴틈도 없이 저 멀리서 놀란 김대리가 미소에게 달려왔다.


"공주임! 괜찮아? 병원 다녀왔다며?"

"네."

"그런데 한 과장이랑 같이 간 거야?"

"......"


발등이 쿡 하고 쑤셨다.


어쩐다. 베이글 사건도 그렇고.


"그게."

"내가 오전에 외근만 아니었으면 같이 가는 건데. 많이 안 좋은 거야?"

"아니요. 2주 정도 통원치료하면 된데요."

"2주나. 말도 안 돼. 어디 봐."

"김대리 여기서 뭐 합니까?"


검은 아우라를 내뿜듯 이글대는 한 과장이 김대리 앞에 섰다.


"과장님. 오셨습니까?"

"근무시간 아닙니까?"

"아직 5분 남았네요."


꼬박꼬박. 성질을 긁네 이게.


"앞으로 직원들 일에 일일이 나서실 필요 없으실 것 같은데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본부장님. 축하드립니다. 높으신 분이 더 큰 일을 하셔야죠."


돌려차고 엎어치기까지.


"그럴수록 직접 챙겨야죠."


'헉! 본부장?' 미소의 얼굴이 굳어졌다.


준혁은 미소의 얼굴을 살폈다. A4 용지처럼 하 게 질려 있었다. 겨우 손에 들어왔다 싶었는데 다시 펴보니 모래처럼 사라진 것 같았다.


'망할 놈에 자식. 괜한 이야기를 해가지고.'


"점심시간 끝났네요. 일들 시작하시죠."


싸늘한 목소리에 김대리도 미소도 업무를 시작했다. 회사에 왔으면 일을 하는 게 인지상정. 미소는 을 중에 슈퍼 을일 뿐이었다.


6시 5분 전. 열나게 엑셀을 불테우고 있을 때쯤. 발등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다친 발등을 보니 불현듯 자기 커피를 걱정하던 얄미운 누군가가 생각났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때마침 수민의 메시지가 울려댔다.


- 공주임. 발은 좀 어때?


'지 커피만 걱정하더니 일찍도 물어본다.'


- 괜찮아. 병원 갔더니 2주는 고생해야 한데.

- 근데 너 한 과장이랑 무슨 사이야?


그래, 너 한준혁 극성팬이었지.


- 뭔 사이긴. 상사랑 부하직원이지.

- 근데 왜 너를 번쩍 안아? 이상하잖아.


다쳤잖아.


- 극성팬님. 팬픽은 집에 가서 쓰시고요. 일이나 하시죠.


미소는 키보드 엔터에 힘을 잔뜩 실었다.


'탁!'


누가 보면 일잘러인 줄 알겠네.


"톡톡."


준혁은 미소의 책상 위를 톡톡 두드렸다.


"그렇게 해서 부서지겠어요?"


미소의 귀 가까이에서 들리는 목소리. 등 뒤에 서 있는 이젠 본부장이  한과장이 서 있었다.


"소중한 사내 물품인데 부서지면 안 되죠."

"퇴근 안 합니까?"

"병원 다녀온 값으로 야근 티켓 예약했는데요."

"난 야근 티켓 승인한 적이 없는데."


또각, 또각. 화가 나 달려온 수민은 얼굴을 먹구름을 잔뜩 머금고 미소의 자리로 다가왔다.


"야 공미소 내가 무슨 극성팬이냐?"


순식간에 이목이 집중되면서 준혁과 수민의 눈이 마주쳤다.


'왜 또 한준혁이 공미소옆에 있는 거지?'


당황한 수민은 애써 웃음을 지었고 공미소 한정 댕댕이 준혁은 싸늘한 눈빛만을 쏘아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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