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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곳이었던 우리의 집

8. 비어버린 옷장을 보며

by 레 자무레즈

그 이후로 우리는 시간을 가지며 노력해 보기로 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와이프의 연락은 하루를 넘어 이틀, 사흘 뒤에 오기도 했고

어느 날은 내가 몸이 아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기도 했다.


와이프는 노력해 보겠다면서도, 나아질 자신이 없다고 말하며

계속해서 도망치고 멀어지고 있었다.


와이프가 멀어지면 내가 그만큼 따라가면 된다고,

한 번은 화를 내보기도 또 어느 날은 달래 보기도 하며

버티고 견디는 시간들을 보냈다.


하지만, 와이프가 계속해서 도망치고 멀어질수록 원래 우리가 있던 자리는 아득해지고 있었고

아주 사소한 문제 같아 보였던 우리의 균열은 결국 이혼이라는 결말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혼에 대해서 논하는 과정은 이전의 다툼보다 더 고달팠다.

누구의 잘못이 더 크냐, 재산분할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제 와서 하는 고백이지만, 나는 일부러 과하다 싶을 정도의 재산분할을 요구했다.


그러면 와이프가 이혼을 포기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이혼을 하게 된다면 재산이라도 조금 더 챙겨가는 게 낫겠다는

상반되면서도 찌질한 마음이었다.


고맙게도, 와이프는 자신의 잘못이 더 크다고 재산분할에서 어느 정도 양보해 주었다.

어느덧 와이프가 집에 오지 않은지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토록 오지 않았던 와이프는 자신의 짐을 챙기러 집에 들렀다.

짐이라고 해봐야 간단한 옷가지들과 책 몇 권이 전부였지만.


와이프가 짐을 챙겨 떠나고 그 빈 공간을 바라보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동안 왜 우리의 집을 버리고 떠났는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어리석고 둔한 나는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의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이 집에서 와이프의 공간은 고작 옷장 반칸만큼이었음을,

함께인 줄 알았던 이곳에서 여태껏 나 홀로 살고 있었음을.


KakaoTalk_20250406_194253765.jpg 우리의 옷방. 4칸의 옷장에 와이프의 짐은 겨우 반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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