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엄마와 함께 한 밤 산책
이혼을 향해가는 지난한 과정들은
'우울은 나태함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여겨왔던 나에게도
깊은 우울과 외로움, 불면의 시간을 안겨다 주었다.
비어버린 침대 맡에서 불쑥 허전함이 밀려오곤 했고,
피곤함에 못 이겨 겨우겨우 뉘인 몸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인해 잠들지 못했다.
괴롭고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내 아픔을 공유하지 않았다.
부모님께도 우리 부부가 이렇게 되어버린 상황과
그 과정들에 대해서 간략히 말씀드렸을 뿐이었다.
이윽고, 설이 찾아왔고 예년과 달리 나 홀로 고향에 내려갔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은 반가운 얼굴을 보이면서도
나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날 밤도 나는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늦은 밤 산책이나 다녀올 겸 주섬주섬 슬리퍼를 신던 그때
엄마가 나를 따라나섰다.
그리고, 엄마와 산책을 하며 처음으로 내 심정을 털어놓았다.
"엄마, 저는 아직도 우리가 왜 이렇게 됐는지 이해가 안 돼요.
서로 조금만 노력하고 이해하면 해결될 수 있는 일인데.
그래서, 자꾸 뒤돌아보게 되고 놓아지지가 않아요."
그 말은 들은 엄마는 내 마음을 다 이해한다며,
그저 후회 없게 내가 하고 싶은 최선을 다해보라며
손을 꼭 잡아주셨었다.
정말 오랜만에 잡아 본 엄마의 손,
그리고 처음으로 들어본 위로의 말에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내 손을 잡아주던 엄마의 손이 떨리고 있었던 걸.
눈물 쏟던 나를 보며 엄마도 마음속으로 울고 있었으리란 걸.
그래서, 힘든 길임을 알면서도 이혼을 해야만 했다.
더는 나의 아픔으로 인해 내 소중한 사람들이 눈물 흘리지 않게 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