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대하는 태도가 삶을 바꾼다
“궁전이나 움막 어딘가에 특별한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서건 느낄 수 있는 행복보다 더 큰 행복이 따로 있다고 착각하지 마라.”–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대학에 진학하면, 회사에 취업만 하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
우리는 종종 행복해지기 위한 목적지를 정해두고 그곳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막상 그 지점에 도착하고 나면, 생각보다 큰 변화가 없다는 걸 깨닫곤 한다.
행복이란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만 얻을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 같은 것일까. 아니면, 그 자체로 이미 참인 명제처럼 지금 이 자리에도 조용히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작년 유행했던 “럭키비키”, “오히려 좋아” 같은 말들은 계획했던 대로 일이 잘 안 풀리더라도 그 상황에 낙담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이겨내는데 큰 힘이 된다. 어쩌면 행복은 좋은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느냐보다, 좋지 않은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는지도 모른다.
계획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더라도, 그 상황을 조금은 유쾌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힘든 일도 잠시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인생에는 마음가짐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순간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내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느냐에 따라 같은 시간이 지옥이 되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희망을 건네며 견딜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결국 같은 상황이라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때의 기분과 기억은 전혀 달라진다. 그리고 그 시선을 선택하는 일은 온전히 내 몫이다.
혼자일지라도 날 좋은 날에는 일부러 산책을 나가 햇볕을 쬐는 사람. 가끔은 기분을 내기 위해 자신을 위해 맛있는 한 끼를 사 먹는 사람. 이런 나를 위한 사소한 노력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 대체로 더 행복해 보인다.
예전의 나는 이런 시간과 지출에 꽤 인색했다.
혼자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 책을 읽고 싶어도,
“혼자서 너무 오버하는 건 아닐까”, “지금 내 상황에서 이건 사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를 위한 지출과 시간을 모두 ‘쓸데없는 낭비’로 여겼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가 낭비라고 여겼던 그 순간들이 오히려 나를 회복시켜 주었다.
그 시간 덕분에 다시 하루를 버틸 힘을 얻었고, 다시 나답게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나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 나를 위해 기꺼이 귀찮음을 감수하는 것.
이런 태도가 일상의 행복을 조금씩 넓혀 준다.
중요한 건 돈을 얼마나 쓰느냐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얼마나 따뜻한 마음과 시간을 쓰느냐이다.
어디에서나 행복을 찾아보려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대체로 더 행복하다.
행복은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하는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나를 위해 조금씩 내어 주는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