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보는 눈이 높아졌다. 디테일한 타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맨날 손그림 느낌의 귀여운 타투만 받다가 좀 디테일이 있는 작업들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타투이스트 코모를 만나게 되었다.
물론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지만 나는 돌아가신 아빠의 슬픔에서 조금 벗어나, 나를 위한 타투를 받기 시작했다. 코모한테는 2가지 작업을 받았다. 하나는 역시나 아빠 추모 1주기를 기념하기 위한 타투였고, 또 하나는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받았다.
타투이스트 코모의 작업
시든 백일홍 여섯 송이
코모라는 타투이스트에게 감동을 받았던 이유는 코모는 레퍼런스를 찾아 도안을 그리기보다 가능하면 실물을 보고 도안을 그린다. 그래서 내가 시든 백일홍 6송이를 받고 싶다고 문의했을 때, 실제로 꽃집에서 꽃을 사다가 그 꽃을 말려, 입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사진을 내게 보내주었다.
보내준 꽃 사진과 내가 직접가서 찍은 시든 꽃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 코모에게 작업을 받기 전, 다른 타투이스트에게 문의했었다. 아마 더 유명한 타투이스트였을 건데, 알고 보니 싹수없기로 유명하다. 나는 분명 시든 꽃을 그려달라고 했는데, 너무 생기 있는 꽃 도안을, 그것도 당일에 주는 뻔뻔함과 그 자리에서 수정이 가능하다고 하니, 그 타투이스트에게는 타투를 받을 수 없었다. 그림은 잘 그린다. 하지만 추모 1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내가 원했던 꽃은 아니었다.
처음 문의했던 타투이스트의 도안
그렇게 다 시들어가는 꽃잎이 다 떨어진 백일홍 여섯 송이를 새겼다. 60의 나이에 돌아가신 아빠를 추모하기 위해 오른팔 뒤편에. 지금보니 아예 저렇게 모가지가 꺾인 시든 꽃도 괜찮았겠다 싶네. 아무튼 타투를 할 때는 정말 도안이 문제다. 의미도 의미대로, 그림도 그림대로 잘 그려주는 작업자를 만나기가 솔직히 쉬운 일이 아니다.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
피카소는 내 우상이다. 20대 때 나는 피카소 같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피카소를 검색하면 그의 직업란에 화가이자 사회혁명가라고 쓰여있었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던 20대의 나는 자신의 작업물로 사회를 고발하는 그의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이 벌어지던 때, 나치의 무기 실험으로 게르니카 폭격해 1500여 명의 민간인이 살생당한 끔찍한 사건을 고발하기 위해 그려졌다. 이 그림으로 목소리 낼 수 없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이 되고자 했던 걸까? 이 작품을 몸에 새겼다. 피카소의 사인과 함께. 근데 타투의 사진을 보면 안에 붉은 선이 있는데, 이 타투는 사실 커버업(cover-up) 타투다. 마음에 들지 않는 도안의 타투를 받았다가 후회하고 이 타투로 덮었다.
커버업하기 전 도안과 타투
이때부터 조금 생각을 하면서 타투를 받게 되었던 것 같다. 나도 이 작업으로 인해서 배우는 게 많았다. 나의 첫 반려묘 나비를 몸에 새기고 싶은 욕심에,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그냥 받아버렸다. 근데 어쩌면 내가 미술을 전공하고 실제로도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이어서 그림 실력이 시원찮은 타투이스트들의 작업물들이 더 마음에 안 들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안목이 좀 생겼거나. 실제로 그림을 잘 못 그리는데 그냥 아이패드로 사진을 따기만 해서 그리는 타투이스트들이 많다. 그걸 알면서도 그냥 받은 내가 문제였지, 뭐.
게르니카의 그레이 톤을 채우는 건 진짜 아팠다! 저 넓은 면적을 다 채워야 하니, 살이 찢기는 고통을 참아내며 큰 교훈을 얻었다. 퀄리티 있는 작업물을 받고 싶은데 돈이 없으면 돈을 모으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받지 말아야 한다. 지우거나 덮는게 더 고통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