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할아버지 #0
누가 시킨 일도, 꼭 해야 하는 일도 아니지만 하게 되는 일이 있다.
어떤 때는 해오던 일이라 관성처럼 이유 없이 하지만, 어떤 때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이유를 모르고도 한다.
이번 책 쓰기가 내게 그런 일이었다.
아버지 기일에 맞추어 이 책을 완성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책을 쓰기 시작하고도 몇 달이 흐른 후에야 찾게 되었다.
하나. 아버지(할아버지)와 더는 추억을 만들 수 없다. = 지금까지 만든 추억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 기억력 나쁜 내가 가진 아버지에 대한 기억보다 아이의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더 다채롭고 생생하다 = 아이의 추억을 남겨줘야겠다.
셋. 영상, 사진에는 담기지 않는 그 당시의 생각과 느낌을 남겨야겠다 = 글로 적어야겠다.
넷. 아버지는 날더러 '작가'가 되어보라고 했다. = 이렇게라도 실현해 보자
이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 '산 할아버지'이다.
그 누구보다 특별하고 재미난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큰 아이가 그것을 오래도록 간직하기를.
할아버지와 함께한 시간만큼이나 추억도 적어 아쉬운 둘째에게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아버지와 다른 할아버지로서의 모습에 놀랐던 어른들에겐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을.
그렇게 추억하고 남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