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3.

단 하나를 선택했던 찰나에 순간을 기억하다

by 황정현

무의미의 축제


‘의미’란 것을 찾기 위해 죽어라 공들였다. 그 시간과 노력들을 철저히 후회한다. 나는 왜 기껏 여기에 오느라 그 난리법석을 떤 걸까? 많은 사람들이 가는 그 길로 죽어라 기를 써 달려가야 했다. 그럼 적어도 지금 고민하는 것들 중 하나라도 깔끔하게 해결됐을 것이다. 예컨대 돈 문제 하나는 걱정 없다거나 오늘처럼 이해되지 않는 사람에 대해 굳이 이해하려 애쓸 필요 따위 없다거나.


이 사람 저 사람의 어이없는 돌팔매질에 넋을 잃고 다시 회사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과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나. 간신히 고개를 들어 마주 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응시했다. 눈, 코, 입, 표정, 옷의 컬러, 패턴, 특유의 움직임 등으로 보이지 않는 그들의 고단했을 여정을 유추해본다. 순간, 중학생 때 처음으로 밤하늘에서도 구름이 보인다는 사실과 마주한 정도의 충격이 나를 깨웠다. 지금껏 다른 사람들의 얼굴과 삶을 이토록 똑바로 응시해본 적이 없었다. 무감각하게 스쳐왔던 것이다.


“내가 너를 알고 네가 나를 알면 너는 나를 죽일 수 없다.” 독일의 유대인 학살 이후 인류 최악의 인종청소로 간주하는 르완다 대학살을 기억하며 르완다 어느 가톨릭 교회에 붙은 문장이라고 한다. 1994년 4월부터 약 100일 동안 르완다의 후투족 정부군과 용병들이 소수민족인 투치족 80만-100만 명을 살해했다. 내가 사람인 줄 알고 네가 스스로 사람인 줄 알면 사람인 너는 사람인 나를 죽일 수 없다. 지금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단 하나를 선택했던 찰나에 그 순간을 떠올린다. "나는 사람이다. 그리고 당신도 사람이다." 매일이 암흑 같던 석사 연구생 시절도, 상처 난 손을 계속해서 물 속에 넣을 수밖에 없었던 쓰라렸던 알바생 시절도... 힘들었던 때마다 내가 선택했던 단 하나가 기억나버렸다.


무의미의 축제 속에 살면서 이 하나를 기억하는 하루하루의 대가는 사람답게 사는 일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너무 크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다시 선택해버렸다. 그 이유는 거창한 인류애나 이타심 때문이 아니다. 바로 '나' 때문이다. 내가 사람이듯 너도 사람이란 걸 아니까. 언제부터 우리는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지 않게 된걸까. 왜 우리는 돈을 잃는 것만큼 사람을 잃는 것에 가슴 저려하지 않게 된걸까.


무엇보다 사람을 중요하게 여겨야한다는 수많은 인간 존중의 당위들은 필요치않다. 그러한 당위는 애당초 존재할 수 없다. 태어나는 것에 대한 선택권조차 없었으니까. 그냥 하나만을 기억하자. 잊어버리더라도 꼭 다시 기억해내자. 나도 너도 그저 사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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