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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Oct 15. 2019

[D+145] NSW 주립도서관 / 낯선 나의 직업

낯선 도시에서 낯익은 나의 직장을 만나다

나는 4년 동안이나 사서로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거리낌 없이 스스로를 사서라고 소개할 수 있을까, 이 길은 정녕 나의 것이 맞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품어왔다. 분명 좋아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적은 급여는 항상 불만이었고, 나의 인생에 다른 노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여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류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직업에 대해 누군가 욕이라도 할 때면 '그건 사실과 달라'라고 항변하다가도 '그래서 뭐가 다른데?'라고 되물으면 가만히 고민하게 되고 마는, 그런 애증의 시간들이었다.


심지어 동료 사서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때, 나도 모르는 신간 정보를 자원봉사자 선생님이 더욱 빨리 알아놓으셨을 때, 그리고 끊임없이 앞서가는 선배 언니 오빠들을 보며 나는 왜 일찍 뛰어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가 퍽 부끄러워졌다. 주방장오빠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그러한 생각들은 더욱 분명해졌는데, 오빠와 종종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기 일쑤였다.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해도 적어도 여러 분야의 책에 대하여 안다고 자부했던 나였지만 사실 읽지는 않고 안다는 것은 큰 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오빠가 말하는 책 중에는 스테디셀러라 불리는 고전들이 더러 있었는데, 오빠만 읽은 책들이 대거 등장할수록 그 앞에서 '저 사서예요'라고 말하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우습게도 나는 '나만 이런 것이 아닐 거야'라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랑하는 동료이자 친구인 S에게 '너도 모르지?'라며 물어보았을 정도랄까.


사실 시드니에 오자마자 바로 찾아갔어야 할 도서관을 이제야 찾아간 것도 나에게 있어선 하나의 속죄와도 같았다. 채스우드 도서관을 처음 찾아갔을 때 마치 현대적인 그 도시를 반영하듯 외관이라던지 도서관의 분위기 자체가 흡사 한국의 도서관과도 몹시 비슷하였는데, NSW 주립 도서관은 뭐랄까. 마치 도서관이 하나의 박물관과도 같았다.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도서관의 외향부터 책을 보존하는 방식과, 장서들에서 느껴지는 위용에 잠시 주춤했을 정도랄까.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에 등장하는 야수의 서재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서관 가는 길 / 시드니 왕립 식물원 (Royal Botanic Gardens Sydney)
NSW 주립 도서관 (State Library of New South Wales)

구 도서관(미첼 도서관)과 신 도서관(딕슨 도서관)으로 나누어진 NSW 주립 도서관은 NSW의 역사를 보존하고 이용하도록 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종종 시드니 도서관과 NSW 주립 도서관을 헷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NSW 도서관에서는 도서관 고유의 역할로 인해 일반 도서는 소장하지 않는다. 아무런 정보 없이 찾아간 나 역시 당혹스러워 그곳 선생님께 여쭈어보았는데, 친절하게도 공공 참고문헌을 소장하고 있다며 답해주셨다. 한국에서 온 사서라는 나의 소개에 그분께서는 반가워하시며 구 도서관과 신 도서관(신 도서관에서는 일반 참고 도서인 잡지 및 신문 등을 소장하고 있다.)의 차이점과 일반 도서가 소장되어 있는 시드니 내 도서관들에 대해 말해주셨다.


한국의 공공도서관들은 정책과 결정권자에 따라 그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마는 경우가 더러 발생한다. 예를 들어 도서관 앞에 갖은 수식어를 붙이며 도서관과 박물관의 개념조차 허물어버리는 일들이 있는가 하면, 도서관이라는 명칭을 남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 지자체도 있다. 몇 해 전 집 앞에 생긴 장난감 도서관에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장서 대신 장난감을, 대출 대신 대여를 하고 있는 상황에 도무지 입을 다물 수 없었고, 나는 화가 나 그 자리에서 관장님 면전에 대놓고 그렇게 쓸 바에야 도서관이라는 명칭을 빼버리는 것이 어떠냐며 항의하고 싶을 정도였다. 종종 도서관과 독서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이용자의 민원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도서관이 어느 순간 독서실로 둔갑해버리는 곳들도 더러 발생한다. 그러니까 도서관에서'도'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도서관은 공부하는 곳'이라는 개념이 어느 순간 생겨버린 것이다.


게다가 일부 지자체에서는 지나치게 프로그램과 실적에 의존하여 이곳이 도서관인지, 문화센터인지 조차 혼란스럽게 만들어버리는 데다가 실적의 압박까지 가하는 바람에 사서들의 사기를 떨어트리곤 한다. 도서관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채 몇십 년도 되지 않는 현시점에서 누군가는 이것을 과도기라 말하고, 누군가는 한계라 말하며, 누군가는 우리나라 공무의 어쩔 수 없는 특징이라 말한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서로써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하는 동료 선생님들을 볼 때면 나 역시 응원하고 싶은 마음과 그래야만 한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한 편으로는 지레 겁을 먹은 채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한 환경에서 정보 보존과 제공이라는 도서관의 기본적 역할에 충실한 NSW 주립 도서관을 보고 있자니 한 편으로는 가슴이 벅차오르면서도 미숙한 내 영어가 못내 속상하였다. 그러니까, 내가 외국에서 살면서 누릴 수 있는 특권 중 하나가 외국 도서관을 일상처럼 견학할 수 있는 것과 그곳 현장에서 사서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줄곧 그 사실을 잊어왔다는 것과 이런 곳에서 사서로 일하려면 도대체 몇 년의 시간을 쏟아야만 이룰 수 있을까 등의 생각이 교차하며 마음이 이내 착잡해지고만 것이다. 그간 한국과는 다른 외국 도서관의 환경에 익히 들어왔지만, 직접 체험하고 보니 저절로 한숨이 쉬어졌다.


햇볕이 내리쬘 때 들어가 날이 어두워질 때 나온 나는, 돌아오는 길에 동종업계에 근무하는 선배님들에게 내가 느낀 감정들을 곧바로 사진과 함께 전송하였다. 낯선 이곳에서도 같은 사서로써 내 고민과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그들이 있음에 감사했고 '젊을 때 하기에는 답답해'라고 폄하하였던 내 직업이 사실은 깊이가 얕은 데서 오는 투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호주로 떠나기 전 '어쩌면 나는 호주로 살러 가는 것이 아닌 한국에 살기 위해 가는 걸지도 몰라'라며 말한 적이 있었다. 새로운 것들이 어느덧 익숙해지고, 익숙하고 지루했던 것들이 다시 새로워지는 일. 낯선 곳에서 내 직업을 만나며, 나는 사서로 일했던 나를 꽤 좋아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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