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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Oct 15. 2018

2015.11.2 / 유럽으로 출발

인천-London, United Kingdom

수연이가 찍어준 비행기 밖 풍경

한눈에 봐도 내 것임을 알 수 있는 도트무늬 캐리어를 끌고 인천공항을 들어섰을 때 설렘보다는 막막함이 먼저 밀려왔다. 도저히 인터넷이 안되고서는 타국을 밟을 자신이 없던 나는 신한은행 제휴 유심을 택했고, 유심은 장착하면 그만이란 생각에 유심 업체 데스크를 찾아갔는데 이게 웬일. 유달리 내 핸드폰만 인식이 안돼 애를 먹었고 계획한 시간을 다 잡아먹은 끝에야 유심을 대여받을 수 있었다. 그제야 숨 좀 돌리려던 찰나 시계를 두고 온 탓에 급하게 시계 하나를 장만했고 여유롭게 출국하려던 계획과는 달리 급하게 출국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헤맬 것이 분명한데 외국은 오죽하겠느냐는 엄마의 말에 연신 걱정 말라며 말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엄마와 말에 적극 동의하고 있었다. 물론 로마 공항에서 인천공항이 얼마나 크고 복잡한지를 새삼 깨달았지만.


부모님과 한 번 씩 포옹한 후 괜스레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은 채 수속을 마친 후 비행기로 들어서는데 얼마나 떨리던지. 숙소는 잘 찾아갈 수 있을까, 내 영어는 어느 정도 실력이었더라, 물과 밥 정도는 사 먹을 수 있겠지라는 오만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잠도 제대로 자지 않은 채 가이드북을 몇 번이고 읽어대었다. 그렇게 화장실만 들락날락 대다가, 인사이드 아웃을 자막도 없이 보는 곤욕을 치르고는 옆에 앉은 탑승객들을 보니 순간 또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을 걸었다. 영국에서 프랑스로 넘어갈 예정이던 주이, 일본 유학생이었던 수연이와 서로 영어는 얼마큼 할 줄 아냐, 숙소는 어디로 잡았냐를 물으며 각자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적극 긁어모았다. 배낭여행이라는 공통사 하나로 어느새 서로에게 의지하게 된 우리는 그 이후로 런던 여행을 부분적으로 동행하게 되었고 아름다운 런던아이를 바라보며 이토록 화려한 영국의 야경을 혼자가 아닌 함께 보았다는 것에 안도했다.


출국심사를 받을 시 백수였던 나는 당당하게 직업란에 아무것도 적지 않았고, 주이는 우리가 친구라고 했으며(그리고 나는 동시에 아니라고 했다) 심지어 한 명은 일본에서 출발하는 탓에 입국심사 때 어려움을 겪는 해프닝도 발생했다. 심지어 나는 직업을 왜 안 적었냐, 전 직업은 무엇이었느냐, 지금은 무엇을 하였느냐 등등의 질문 세례가 쏟아졌고 지금도 이 해프닝은 떠오를 때마다 절로 웃음이 나온다. 히드로 공항으로 나와 전철 안에서 뿔뿔이 헤어진 후 홀로 어두컴컴한 거리에 혼자 캐리어를 끌고 겨우 숙소에서 도착하고는, 아이디를 보여달라는 말에 부킹닷컴 아이디를 알려주는 바보짓을 저지른 후 체크인 후 방으로 돌아와 부모님께 잘 도착했다는 안부전화를 넣었다. 짐 푸는 데만 장장 2시간이 걸리고 친구들에게 도착했다는 카톡을 보낸 뒤 잠들었던 첫날.


그렇게 내 인생의 첫 배낭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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