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년이 살았던 그곳
일단 한 달 쓰기 도전 프로젝트, 2024. 12. 26.
오늘은 사놓은지 꽤 되었지만 선 듯 손이 가지 않았던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연말 연차 덕분에 시간이 낙낙한 것도 있었지만 읽기 망설였던 것에 비해 한 번 읽기 시작하니 단숨에 읽어 내릴 수 있었다. 소설의 배경인 광주는 나의 고향이기도 하다. 나는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학부 생활까지 했었다. 소설 속에는 낯선 듯 익숙한 지명들과 학교들이 차례차례 나왔다.
5.18에 대해서는 조기교육 수준으로 어릴 때부터 익숙하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런 것이 우리는 소풍을 5.18 묘역으로 갔었고, 당사자인 선생님들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났다. 내가 다니는 대학교 단과대 한 편에는 그날의 희생자였던 선배들을 기리는 향불이 자주 피어져 있었다. 그래서 사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내가 당연히 아는 걸 모르는 세상이 꿈처럼 생경했다. 그날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이,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참 놀라웠다.
5.18이 일어났던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배웠던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났다면, 그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갔을까. 쉽게 머리가 뜨거워지는 나는 분명 한 번쯤은 멋모르고 거리로 나섰을 것이다. 그러다 만약 살아남았다면 그 지옥 같은 광경을 보고 겁에 질려 도망치고, 평생을 죄책감과 자기혐오로 눌러살았을 것이다.
다른 가정이 하나 더 떠오른다. 그날, 아빠는 와이셔츠 차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출근길에 군인 몽둥이에 두들겨 맞았더랬다. 만약 그날 아빠가 잘못되셨다면 나는 아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이어 다른 가정을 떠올린다. 만약 그날 누군가의 아빠, 엄마, 딸, 동생, 누나, 오빠가 잘못되지 않았더라면 내가 지금 누리는 이 평범한 하루를 누리는 누군가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슬픔과 안도감과 부채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겠다고.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작가가 노벨상을 탔기 때문이었다. 노벨 문학상 작품을 모국어로 볼 수 있는 기회라는 누군가의 말에 혹해 책을 들었다. 작가가 상을 타지 않았다면 5.18에 대해서는 새로울 것도 없이 잘 알고 있기에 굳이 볼 필요가 없다 생각하며 읽지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작가의 다른 책을 읽었을 때, 잘 썼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읽지 않았을 것이다. 참 담담하게 잔인한 글을 쓰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그날의 잔혹한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그중 하나의 심상이 자꾸 이미지화 되어 내 뇌리에 박혔다.
그래도 역시 읽어야 할 책을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 기록이 전달하는 것과, 영상이 전달하는 것과, 사진이 전달하는 것과, 문학적인 글이 전달하는 것은 그 모든 것이 다르다. 그중 가장 생생하게 나를 그곳으로 데려간 것은 바로 한강 작가의 책이었다. 읽으면서도 책을 끝까지 이어 읽어야 한다는 생각과 책을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아직도 그 고통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계엄이라는 두 글자를 실시간으로 보고 듣고 있는 지금의 아이러니한 상황에 화가 치밀어올랐다. (정말로 인간은 잔인하구나, 다시 또 책의 내용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을 보고 있으며 내가 느꼈던 감정과 심상을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인이 함께 느끼며 그날을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럽다. 가장 큰 권위를 등에 업고 더 많이 더 멀리 이 이야기가 퍼져나가길 바란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밖에서도 더 많은 이들이 알아야 할 이야기다. 이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몇 년 동안 쉴 새 없이 떠올리며 글을 썼을 작가님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이미 떠나간 이들의 넋을 달랠 수 없는, 그저 남은 자들의 넋두리이자 자기 위로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우린 회고해야 한다. 지난 고통과 아픔을 회고하지 않는 이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도 이 책을 오랫동안 읽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