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에 쌓여가는 책들
다 읽은 책이 하나둘 책상에 쌓이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책만 읽던 시절에는 하루의 대부분을 책에 투자했다. 당연히 책 읽을 시간이 많았고, 책을 정리할 시간도 많았다. 한 권 한 권 읽어나갈 때마다 바로 정리했다. 밑줄 그은 부분 중 기억하고 싶은 문장은 노트에 옮겨 적었고, 밑줄 친 부분만 다시 읽으며 책 리뷰를 작성했다.
하지만 요즘은 책 읽을 시간이 많지 않다. 읽은 책을 정리하기는커녕 책을 읽을 시간도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읽은 책은 조금씩 늘어가는데 정리할 시간이 없어 다 읽은 책이 책상 위에 쌓이기 시작했다.
한 권일 때는 '시간 나면 정리하자'라고 생각했지만, 여러 권이 되니 '저걸 언제 다 정리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읽은 책을 굳이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을까?'
책 정리가 귀찮아지면서 굳이 읽은 책을 다시 훑어보며 정리를 해야 할까 싶었다. 그래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는 왜 책을 정리하는가?'
나는 왜 책을 정리할까?
독서를 시작하고, 읽은 책을 정리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스스로 책 한 권 꺼내 읽어본 적 없던 내가 스스로 책을 골라 읽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래서 독서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책을 읽는 것에만 집중했다. 이미 읽은 책을 왜 정리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무작정 읽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읽기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동안 읽어왔던 책들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어떤 책들을 읽었지? 어떤 내용이었더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 읽고 책장에 꽂아놓은 책들을 보아야 비로소 어떤 책들을 읽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책의 내용까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았다. 그저 '대강 이런 내용의 책이었던 것 같다'라는 식의 직잠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읽은 책은 꼭 정리를 하기로 결심한 것은.
책 읽기를 누구에게 배운 적은 없다. 책을 정리하는 것 역시 누구에게도 배우지 못했다. 책 정리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우선은 읽은 책의 목록을 작성하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때부터 스프링노트에 읽은 책의 목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어떤 책을 읽었는지만이라도 기록하기로 했다.
읽은 책 목록을 작성하는 일이 익숙해질 때쯤 '책 내용을 간략하게라도 정리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고, 책을 읽으며 무엇을 배웠고, 책의 어떤 점이 좋고 별로였는지 기록하기로 했다. 손으로 직접 쓰기는 힘들 것 같아 블로그를 만들어 블로그에 책에 대한 감상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책 정리가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채워나가다 보니 책을 정리하는 나만의 방식이 생겼다. 책을 읽으며 밑줄 친 부분과 메모해둔 내용을 보며 노트에 정리했다. 그다음 책을 다시 한번 훑어보며 블로그에 책 리뷰를 작성했다. 처음엔 나도 몰랐지만 책의 주요 부분을 노트에 정리하며 책을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었고, 책 리뷰를 작성하며 책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책 정리를 하며 자연스레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곱씹어볼 수 있었다.
예전과 달리 한 번 읽은 책도 정리를 하고 나면 꽤 많은 내용을 기억할 수 있었다. 기억이 나지 않을 때는 책을 정리한 노트나 블로그에 써놓은 리뷰를 보면 쉽게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책을 한 권 읽고, 정리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꾸준히 책을 읽으니 읽은 책은 쌓여갔고, 정리할 책은 늘어갔다. 쌓여가는 책을 보면서 꼭 정리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나만의 책 정리 방법을 만들었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내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책 정리를 할까?'
고민끝에 나온 대답은 이것이었다.
'내가 책 정리를 꾸준히 해왔던 이유는 배움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지금까지 책 정리를 해왔던 이유는 배움을 잊지 않기 위함이었다. 책을 한 번 읽는다고 모든 내용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집중해서 책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좋은 책을 여러 번 읽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 결국 배움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책 정리를 해야만 했다.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그냥 지금처럼 하면 될까?'
안 된다. 지금처럼 했다가는 또 읽은 책이 쌓여갈 것이 뻔했다. 변화가 필요했다. 내가 읽은 책을 정리하기로 한 이유는 조금이라도 더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밑줄 친 부분과 메모한 내용을 다시 한 번 읽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짐작해보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다시 읽어보는 것만으로는 머릿속에 깊이 새겨지지 않았다. 책을 다시 읽어보고 정리하며, 리뷰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 깊게 박혔다. 읽은 책을 어떻게 정리할지, 리뷰를 어떻게 작성할지 고민하며 책을 읽을 때 책에서 얻은 배움을 오래 간직할 수 있었다.
결국 다 읽은 책을 다시 훑어보며 정리하고, 책 리뷰를 작성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는 지금까지와 같은 방법이다. 똑같은 실패를 반복할 수는 없기에 규칙을 하나 추가하기로 했다. 읽은 모든 책을 똑같이 정리하지 말고, 좋았던 책들만 지금처럼 정리하고 별로였던 책들은 가볍게 정리하기로 했다.
좋았던 책은 전처럼 밑줄 친 부분과 메모해둔 내용을 다시 보며 노트에 핵심 내용을 정리하고 책 리뷰 역시 공들여 작성하기로 했다. 대신, 별로였던 책은 밑줄 친 부분과 메모한 내용만 가볍게 읽어보고 리뷰는 간단하게 작성하기로 했다.
좋은 책을 정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되, 별로였던 책을 정리하는 데는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기로 했다.
나만의 규칙을 세우니 마음이 가벼웠다. 그날 저녁 바로 다 읽은 책을 한 권 꺼내 정리를 시작했다. 우선 별로였던 책을 집어 들었다. 밑줄 친 부분과 메모해둔 내용만 가볍게 읽고 블로그에 리뷰를 작성했다. 전처럼 리뷰에 책 내용을 정리하지도 않았꼬, 책의 문장을 발췌하는 등의 작업도 하지 않았다. 그저 책에 대한 소감만 작성했다.
그러니 20분 정도면 한 권의 책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 정도 속도라면 책 정리가 훨씬 빨리 끝날 것 같았다. 우선 별로였던 책들부터 빨리 정리를 한 다음 좋았던 책들도 정리를 시작해야겠다.
언제나 더 좋은 방법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더 좋은 방법을 누구나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그것을 찾아다니는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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