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우체통에 도착한 여섯 번째 편지
날씨가 갑자기 선선해졌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더위가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눈 녹듯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더울 때는 시원한 가을이 그립더니 막상 날이 추워지니 따듯함이 그리워지네요.
더울 때는 잘 모르지만 이상하게도 가을이 되며 날이 선선해져 가면 사랑의 감정이 고파지기도 합니다. 이번 편지 역시 가을과 함께 찾아온 따뜻함을 그리는 '사랑'에 관한 편지입니다.
* 본인이 드러나지 않도록 내용을 약간 변경·축약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직장에 다니고 있는 30대 여성입니다.
우연히 작가님의 브런치에서 '어른이 되면 왜 사랑에 조심스러워질까?'라는 글을 보고 정말 공감돼 저도 용기를 내어 고민 우체통에 편지를 보냅니다.
20대에는 대학원 공부와 취업에 모든 에너지를 쏟느라 연애는 뒷전이었습니다. 자리를 먼저 잡고 연애해도 되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다 보니 어느새 30대로 접어들고 있더군요. 물론 그 사이에 연애 상대가 없었던 건 아니었어요.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연애나 결혼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어요. 소개팅도 해보고,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나가봤죠. 하지만 잘 통하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일 년에 한 명쯤은 연애해보고 싶은 상대를 만날 기회가 생기기도 했어요. 소개팅이나 모임은 아니었고 원래 알고 내던 지인이었습니다.
물론 생각처럼 잘 되지는 않아 지쳐가는 도중 휴가를 떠날 기회가 생겼어요. 어디로 가볼까 고민하다 우연히 몇 년 전 지인의 결혼식에서 마주쳤던 동기가 가까운 해외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어요. 아주 먼 거리도 아니고, 처음 가보는 나라이기도해서 호기심도 생겼죠. 혼자 모르는 장소에 여행 가는 것보다는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어 밥이라도 한 끼 함께 할 수 있는 곳이 좋더라구요.
그의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그에게 연락했어요. 5일 정도 휴가를 갈 예정이니 '저녁 한 끼 정도는 같이 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휴가 당일 생각보다 늦게 그 나라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일이 있어서 못 나온다고 했지만 제가 늦은 시간 숙소를 가는 내내 문자로 잘 가고 있는지 걱정해주더라구요. 그의 마음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짐을 풀고 한숨 돌리려는데 문자가 한 통 왔습니다. 그가 숙소 앞이라며 나와보라고 했죠. 그 순간 '이 시간에 왜 여기까지 왔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바로 숙소 앞으로 나갔죠. 몇 년 만에 봐서인지 정말 반갑더라구요. 물론 낯선 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서 느낌이 조금 달랐던 것 같기도 해요. 그렇게 그와 함께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와인을 한잔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휴가 동안의 제 스케줄을 그가 다 짜 주더군요. 그날부터 휴가 내내 그와 함께였습니다. 물론 그는 출근을 하고 저는 관광을 했어요. 그가 일이 끝나면 저녁에 함께 저녁을 먹었죠. 제가 해외로 휴가를 온 건지, 그를 만나러 온 건지 헷갈릴 정도였어요.
그 덕분에 행복한 휴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일상으로 복귀하니 다시 그가 생각나요. 어떻게 지내나 궁금하기도 하고, 저를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하기도 하네요. 물론 그가 먼저 연락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제 소식을 궁금해한다는 말이 들리기도 하네요.
그와 저의 나이 차이, 한국과 해외의 물리적인 거리, 때마침 외로울 때라 그랬는지, 그 사람도 그때 외로웠던 건지 여러 생각이 드네요. 살다 보니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상대를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더라구요. 그냥 좋았던 기억으로 간직해야 할지, 아니면 다시 그에게 가 그와 저의 마음을 확인해야 할지.
아니면 작가님의 말처럼 결국 제가 상처받을까 봐 한 발 더 다가서지 못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장거리 연애, 나와 상대의 감정에 확신이 없는 점이 고민의 핵심이신 것 같습니다. 내 감정과 상대방의 감정에 확신도 없는데 장거리 연애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면 사실 누구든 이 상황에서 연애를 생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지금부터는 제 생각을 하나씩 전해드릴게요.
모두가 말리는 장거리 연애
장거리 연애, 사랑에 있어 누구도 원하지 않는 연애의 모습이다. 사랑하면 항상 곁에 있고 싶고, 뭐든 함께 하고 싶은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만나는 날을 제외하더라도 보고 싶으면 달려가기도 하는 것이 연애다. 그러나 장거리 연애는 그런 취약한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다.
간혹 두 사람이 사랑하는 데 있어 물리적인 거리가 무슨 상관이냐는 사람들이 있다. 확실히 요즘엔 기술도 많이 발전해서 문자 메시지는 기본이고 영상통화까지도 무료로 가능하다. 결국 가까이 살 때보다 얼굴은 더 자주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미 오랜 시간 만나온 연인이라면 몰라도 새로 시작하려는 사람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은 연애다.
문자고 영상 통화고 매일 또는 매 순간 연락이 가능하다. 그러나 글과 영상으로는 행복을 온전히 나눌 수 없고, 슬픔을 완전히 껴안아줄 수도 없다. 답은 순식간에 올지 몰라도 서로의 따뜻하고 포근한 품은 결코 대신할 수 없다.
장거리 연애에서 사랑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주기적으로 만나 서로의 진심을 온전히 건네고, 떨어져 있는 동안 그 진심을 굳건히 믿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랑에 확신이 들 때가 있을까?
연애를 시작할 때의 확신은 어디서 올까? 어릴 때는 좋으면 좋다 말하기 쉽지만, 나이가 들면서 좋은 사람에게 좋다 말하기 어려워진다. 체면이라는 감정이 생기기 때문이다. '거절당하면 어쩌지?'
감정보다는 이성적 판단에 좀 더 치우치기 때문에 어떤 '신호'가 있어야 연애를 시작하는데 확신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어떤 신호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상대의 행동에서, 또는 본인의 감정에서 그 확신의 신호를 찾아내야 비로소 사랑을 시작해도 된다는 확신을 하게 된다. 마치 자동차를 움직이기 위해서 그 자동차에 알맞는 열쇠를 꽂고 돌려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남성분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이 역시 본인이 아니고서야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오랜만의 만남, 먼 길을 날아온 감정, 타지에서의 재회 이 모든 것은 독특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것이 사랑의 감정이든 반가움이나 잠시라도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감정이든 말이다. 어떤 감정인지는 본인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확신을 가지고 연애를 시작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확신은 만남을 시작되고, 서로 알아가는 과정에서 다져진다. 마치 흙과 비가 만나 땅이 차츰 단단하게 굳어지듯이 말이다. 물론 만남 이후에도 서로에게 확신을 주지 못한다면 결국 관계는 깨지게 되어있다.
서로 손을 내밀어야 잡을 수 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라는 말이 있다.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 손을 내밀어야 잡을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서로 손을 내밀었지만 한 사람의 손은 사랑의 의미고 다른 한 사람의 손은 우정의 의미일 경우 관계는 깨지고 만다.
상대의 마음이 궁금하다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상대편에서 먼저 손을 내밀면 잡을지 말지 고민을 할 수 있지만, 언제까지고 상대방이 손 내밀기를 기다리고 있다면 결코 상대의 속마음을 확인할 길이 없다. '불확실함' 때문에 피한 선택은 언제나 후회를 남긴다.
사랑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쭉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디라도 도착하겠지 싶지만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사랑 역시 멈출 곳이 없으면 항상 제자리로 돌아온다.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않는 사랑의 감정은 평생 후회라는 모양새로 가슴에 남게 된다.
손을 내밀어 보자. 손을 내밀지 않음에서 오는 후회보다는 내밀어 보고 나서 느끼는 후회가 덜 쓰라리고, 덜 오래간다. 손을 내밀지 않음에서 오는 후회는 평생을 가고, 손을 내미는 것에서 오는 후회는 어쨌든 결국 잊혀진다.
결국 본인의 삶이기 때문에 어떤 선택이든 본인의 몫이다. 어른이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니까.
고민이 해결되지 않을 때는
언제든 '고민우체통'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 고민우체통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