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하기 전 나는 일기예보도 제대로 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비가 오면 오나 보다 더우면 덥나 보다.’
그랬던 내가 일기예보를 수시로 확인하고 온도와 습도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일상을 보내다가도 오늘 달릴 수 있을지 없을지 날씨를 확인하는 게 중요했다.
실내 러닝 머신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야외에서 그날 풀 내음을 가득 폐에 넣고
바람을 몸으로 통과해야 제대로 달렸다는 안도감이 든다.
같은 장소임에도 아침, 저녁, 비 오는 날, 해가 쨍쨍한 날 모두 다르다는 걸 달리기를 통해서 알게 됐다.
‘그동안 무덤덤하게 살았구나.’
작은 것들을 보고 귀 기울이고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삶을 뛰면서 알게 됐다.
1,2월은 눈이 오는 경우, 조심조심 종종걸음으로라도 달리면서 찬 공기를 폐에 가득 담는다.
3월에는 벚꽃이 피어서 구경하는 동시에 떨어지는 벚꽃 눈을 맞으며 틈 날 때마다 달린다.
꽃도 봐야 하고 땀을 식혀주는 따뜻한 바람도 느낄 수 있어서 제일 많이 달리는 때다.
4월과 5월에는 아카시아 꽃내음에 취해서 싱글벙글 달리고
6월에는 밤 꽃 냄새로 여름이 가까이 왔음을 알게 된다.
7월과 8월에는 폭염과 장마가 있지만 지치지 않을 정도 틈이 날 때마다 달려 다닌다.
9월부터 12월, 눈이 오기 전까지는 시원한 밤공기를 킁킁거리며 단풍과 떨어지는 잎들로
1년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걸 확인한다.
자연의 일부분인 인간이 계절에 흐름에 따라 느끼고 삶을 준비하는 것이 당연한 것을,
그동안 보지도 살피지도 않으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신기하다.
날씨를 통해 나의 1년을 톺아보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세상이 코로나로 시끄러워도 작고 큰 일들이 벌어져도 자연은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간다.
조용히 싹과 꽃을 피우고 보내줄 잎들은 다시 보내주며 아주 차근차근 성실한 모습을 보면
나는 과연 얼마만큼 성실한 삶을 살고 있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달리면서 배운 건 때론 지겨워 보이는 풍경일지라도 자세히 바라보면
그 안에는 매일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거다. 같은 건 하나도 없다.
같은 9월이라도 작년 9월과 올해는 다를 수밖에 없다.
반복되지 않으니 지루하지 않고, 한 번 뿐이니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몸으로 새긴다.
오늘도 눈을 뜨자마자 일기예보 어플을 켠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하긴 하지만 아직 여름을 통과 중이다.
일몰 후엔 선선해질 테니 저녁 러닝을 하기로 한다.
비가 온다면 계획을 바꿔야 하겠지만.
나는 자연이다. 한 번뿐인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