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잘 못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여버린 건 지 알 길이 없다.
나는 오늘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난 일 년간 내가 쓴 돈이 무려 몇 천만 원에 달했다.
친절하게 카드회사에서 연간명세서를 보내주며 소비내역을 알려준 덕분이다.
물론 사업자 카드로 겸해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1인가구가 쓰는 돈 치고는 너무 많다는 것을 인지했다.
이건 아닌데, 정말 이건 아니지 않나.
그 돈이었으면 그간 사업자금으로 빌렸던 대출금을 다 갚고도 남았을 텐데
그동안 난 무슨 생활을 하며 살았던 것인지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돈에 대한 개념이 이렇게도 없었나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참 무지하게 살았구나 싶었다.
카드 사용 패턴을 분석해 보니 사업장 관련 고정지출을 제외하고는
아무래도 쇼핑과 배달음식에서의 쓰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렇다고 내가 명품을 사거나 값비싼 전자기기를 산 적도 없는데 참 아이러니하다.
처음엔 당황스럽고 놀라웠다가 이내 먹먹함이 밀려왔다.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버는 족족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구나.
이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조금은 달라져야 한다.
그동안 살아온 날들은 행복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후회는 없다.
하지만 앞으로를 위해 노후 준비해야겠다는 결심이 앞섰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두 번 중 한 번은 참고 사고 싶은 물건은 정말 나에게 필요한 물건인지
나이를 먹고 할머니가 될 때까지 함께 할 수 있는 물건인지 고민 후 사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물건을 사들이는 일은 혼자 살면서 많이 줄었지만
물건이 제대로 쓰일 수 있을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안 그래도 연말연시가 되면서 대청소 한 번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는 장면이 있었다.
당장 필요한 물건이 아님에도 광고에 홀린 듯, 있으면 언젠가는 다 쓸 일이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이해시키며
택배가 쌓여가던 그 시절에 슬픔과 분노, 우울함과 행복감이 한데 뒤엉켜있는 물건들.
혼자 사는 집에 물건이 왜 이리 많은 건지 그간 많이도 사들였구나 하면서 그때의 내가 안쓰러웠던 적이 있다.
당분간은 계속 혼자일 텐데 혹시라도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이 물건들을 누가 다 정리해 주나 생각했던 순간들도 있다.
미니멀라이프는 아니어도 조금씩 비우고 비우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