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좋은 날이었다.
달리지 않기 딱 좋은 날.
날씨는 추웠고,
바람은 강하게 불었다.
당직 후 퇴근이라 몸은 충분히 피곤했다.
이 얼마나 좋은 조건인가.
오늘 달리지 않는다고 나에게 채찍질을 가할 사람도 없었다.
아무도 모른다.
"오늘 하루만 그냥 쉴까?"
마음을 바꿨다.
"그냥 일단 나가자."
엄청난 의지로 운동화를 신은 것은 아니다.
나름 나 자신을 일으킨 방법은 하나였다.
"오늘 뛰면서 내가 왜 뛰어야 하는지 이유를 찾아보자."
15km를 뛰었다.
평소보다 많이 뛰었다.
이유는 찾지 못했다.
내가 뛰지 않을 이유는 수십 가지다.
조금 과장하자면 책 한 권 분량은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꼭 달려야만 하는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네가 달리기로 했잖아."
"풀코스 뛰기로 했잖아."
"아무도 몰라도, 너는 알자나."
이날 나는 알았다.
왜 나는 매번 포기를 했는지.
무엇이든 꾸준히 할 마땅한 이유는 찾기 힘들다.
그냥 내가 하기로 했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나 오늘 하루 쉬어도 되는 이유는 정말 많다.
이 많은 유혹들을 뿌리치는 게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매번 쉽게 도전하고, 쉽게 포기했다.
"방법을 바꿔야겠다."
내가 겨우 생각해 낸 방법은 딸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
"아빠 열심히 연습해서 마라톤 완주 꼭 할 거야!"
"너도 무엇을 하든 포기하지 않도록 해!"
그날부터 나는 건강을 위해 달리지 않았다.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기 위해 매일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