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공장 원정대, 남바완의 고난의 대서사시 12
<60살 어린 아들보다 20살 많은 은교>
저녁이 준비되는 동안 나는 기다란 조리대에 반쯤 엎드려 있었다. 어안이 벙벙함이 가시지 않았지만 내가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해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스스로를 속였다. 너무나도 긴 하루였다. 다시 오일쉐어를 구해야 한다는 책임과 막막함이 어깨를 짓눌렀다. 하품이 쏟아졌다. 그때 갑자기 무언가 내 양 옆구리를 푹 찔렀다. 화들짝 놀라 펄쩍 뛰어오르며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니 노인이 있었다. 내가 굳어서 눈만 깜빡대자 노인이 웃었다. 가뜩이나 자글자글한 노인의 얼굴에 깊게 고랑이 패었다.
"얀~~"
노인은 히마리 없는 늦여름 모기처럼 다 꼬부라진 혀를 굴렸다. 불쾌감이나 모욕감 같은 구체적인 감정보다는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변태처럼 웃으며 계속 같은 단어를 반복하는 노인도, 바보처럼 굳은 내 몸도, 노인과 유아의 흔적이 동시에 존재하는 기괴한 집구석도. 마치 영혼이 유체이탈을 해서 현재의 상황으로부터 유리된 것처럼.
"잇츠 얀~~~~"
노인이 하품하는 흉내를 냈다. 나는 하품이 영단어로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그 기점으로 yawn은 깊게 각인되어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단어가 되었다. 한 명 지나가기도 비좁은 통로, 내가 허리를 숙이고 있어 더 비좁았을 그곳을 일부러 양해를 구하지 않고 지나갔다. 그리고 내 뒤에 서서 양 옆구리를 찔렀다. 거리, 위치, 자세 모두 성행위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성적인 의미가 잔뜩 함의된 행동임은 노인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양공장에서 평생 일해 모은 돈을 베트남에서 여자를 사 오는데 쓸 정도로 여자에 미친놈이니까. 그런 주제에 그런 짓을 한 이유가 '하품'이 영어로 뭔지 알려주기 위함이었다고 말하다니.
"잇츠 야아아안~~~ 유 얀~~"
어떤 말도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노인은 '너 하품했잖아'라고 웃으며 반복했다. 내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 살의가 얼굴에 드러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빤히 그를 쳐다보는 시간이 길어지자 그는 웃음으로 여유를 가장한 채 자리를 떴다. 마치 성희롱성 농담을 하고서 재빨리 치고 빠지는 중년 부장처럼.
머릿속에는 '왜?'가 둥둥 떠다녔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다 죽어가는 송장한테 이런 일을 당해야 하지? 심지어 그는 아주 유쾌한 농담을 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 이후로도 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친한 척을 했다. 피해자는 존재하지만 가해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인지부조화 때문에 나는 오래오래 여운에 잠겨야 했다.
어느 날은 불쑥 화가 났다. 노인을 죽이고 싶었고 한마디 쏘아붙이지 못한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내 정신은 자꾸만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 여러 번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때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최소한 한국어로 욕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 일에 사로잡혀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시골에서 가장 가깝게 지냈던 사람도 내가 노인에 대한 증오를 몇 차례 표출하자 단칼에 잘랐으니까. '나는 당한 게 없어서 앙금 없어.'라고. 내 상처는 남에게 아무것도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그 이후로 아예 입을 닫았다. 내 복수는 직접 하리라 다짐하고 떠날 날만을 기다렸다. 밤이면 잠금장치 없는 방 문이 열릴까 잠도 잘 이루지 못했으면서.
장장 2주 반동안 숱하게 헌팅과 실패를 반복한 끝에 오일 쉐어를 구했다. 졸로가 콜드룸에서 일하는 브라이언을 소개해준 덕분이다. 브라이언의 차는 브라이언과 운전자 시저, 또 다른 필리핀 친구까지 총 세 명이 이용하고 있었다. 뒷 좌석에 세 명이 끼어 타야 해서 불편했지만 그래도 카시트랑 타는 것보다 쾌적했다. 게다가 금액도 첫 번째 오일 쉐어의 절반이었다.
딱 하나 단점이 있다면 플레이리스트였다. 항상 브라이언의 차에서는 똑같은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하나는 위켄드 노래였고 다른 하나는 정체 모를 뽕끼 가득한 노래였다. 영어는 아닌데 멜로디가 익숙해서 아마추어가 커버한 곡인가 싶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원곡은 샘 스미스의 Too good at say good bye였다.) 싸이월드 눈물셀카를 뛰어넘는 자아도취, 감정 과잉, 소몰이 창법, 느끼한 음색까지.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출근길, 어둠 속을 가를 때도 구슬픈 부르짖음을 들어야 했고, 퇴근길, 양 떼 목장을 지날 때도 구슬픈 부르짖음과 함께해야 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도 모르게 클라이맥스 부분을 따라 부르고 있었고, 자괴감이 몰려왔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차에 오를 때마다 제3국 가수가 부르짖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시저의 플레이리스트가 바뀌는 것보다 내 처지가 더 빨리 변했다. 노인이 날 집에서 쫓아냈기 때문이다. 뽕삘 샘스미스에 뇌가 절여진지 정확히 2주 만의 일이다. 다시 집과 오일 쉐어를 구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여기서 뭐 하나 쉽게 풀린 적 없었다. 사소한 일들도 매번 어긋나 해결하기에 바빴다. 어쩌면 당장 도망가라는 계시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살아남는데 급급한 나는 힌트들을 외면했고, 그 후에 복리처럼 더 큰 재앙이 찾아왔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되짚어보는 게 무색하게 나는 이미 한참이나 잘못 꿰어진 궤적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