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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Nov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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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을 하다가


한국인에게, 우리나라 여자들에게, 우리네 엄마들에게 김장은 어떤 의미일까. 연례행사, 겨울 준비, 식량 적금, 피곤하고 번잡하지만 그래도 해야 하는 일•••


"돈 주고 사 먹으면 너무 헤퍼, 돈도 비싸고!" ,

(정확한 계량이나, 레시피가 있어야 똑같이 엄마 맛 낸다고 한 나에게) "아니 계량할 게 뭐 있어 그냥 눈으로 보고, 색 보고, 중간에 맛보면서 추가하는 거지." , "(비닐장갑을 낀 뒤에 그 위에 랩을 감싸면서) 이렇게 하면 옷에 튈 일도 없고 랩만 싹 벗기면 돼.", "(배추 속을 넣고 마지막 겉잎을 감싸라고 나와 미주(올케) 에게 알려주면서) "배추 이불을 덮어줘야 돼. 그래야 꺼낼 때도 편해요."


•••


2018년, 엄마가 경과를 보기 위해 CT 찍으러 가야 하는 시간을 앞두고 김장을 시작하고, 한참 속재료 담느냐 병원에 예상 시간보다 30여분 늦게 도착했다.


"엄마!!! 아픈데 도대체 김장을 왜 하는 거야. 엄마가 엄마를 귀하게 여기고 올 해는 좀 쉬어야지." , (언니랑 나는) "우린 절대 우리가 아픈데 김장 같은 거 안 하고 살 거야. 엄마 딸들이 엄마 보고 배우는 건데 이건 엄마가 잘못 가르치는 거야." 등의 말을 하던 그날이, 엄마와 마지막 김장을 담그는 날이 되었다.


엄마가 마당에서 김치한 걸 알고는 엄마 친구분들도 "형님 저희가 드릴 수 있는데.." 하셨던 말도 생생히 기억난다.


언젠가 한 작가의 글에서 엄마 돌아가시고 마지막 남은 김치 한 통을, 오랫동안 먹지 못했다는 글도 생각나고, 내가 마지막으로 먹은 엄마 김치는 언제였는지 ㅡ올해 너무 생각 없이 그 김치를 먹은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오늘 외숙모, 올케와 함께 김장을 하면서 역시 그날 이야기를 나누며 일을 쉽게 하던 엄마가 떠올랐다. 역시 비닐장갑에 랩으로 손목까지 감싸고, 김치 이불, 배추 이불도 잘 덮어주면서. 김장은 분명 번거롭게 준비할 게 너무 많은 일이고, 결국 준비가 다 인 일이기도 하지만.. 또 훗날의 이런 추억거리가 된다는 것에도 지긋지긋한 여성의 노동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어른들은 추석에 고춧가루 받아 빻는 것부터가 김장 준비의 시작이니..


김장하는 순간에도 엄마의 지혜, "배추 이불" 이란 단어를 만들어 설명하며 즐거워하던 엄마. 한 사람의 지혜, 유머, 대화를 김장의 순간에 더욱 그리워하게 됐다.


당시 엄마는 그게 엄마의 마지막 김장인지 알았던 걸까, 궁금하다.


죽음은 한 존재와의 영원한 이별이지만, 그 사람의 말, 행동, 지혜, 음식, 글 등 모든 것과의 작별이기도 하다. 물론 그걸 자각할 때는 늘 죽음 이후라는 것도, 사람을 쓸쓸하고 허전하게 만든다.


딸들은 김장에, 김치에도 엄마 생각을 하게 된다.


"이불 덮듯이! 배추 이불을 덮어주세요~" 김치 이불. 배추 이불.
모든 것을 찍어두던 나. 엄마와의 마지막 김장날 찍어준 사진과 영상을 보며 2년 전을 추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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