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현실적"이라는 단어를 정말 많이 사용한다.
현실적이라는 단어는
어떤 상황에 가장 적당한 선택지라는 의미에서
매우 합리적이고, 대부분이 만족할 만한 선택을 의미하는 듯하다.
하지만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현실적이라는 말은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현실 안주적"
나에게 가난은 현실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란 것은 형광등을 켜지 않으면 한 발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햇빛이라곤 들어오지 않는 깊은 지하실과 네 가족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지하 공장에 딸린 단칸방.
돈이 들어가는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의 표정을 비집고 나오는 걱정과 근심.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낮에는 공장을, 밤에는 야시장에서 일을 하는 부모님.
그리고 그런 부모님 대신 우리 형제를 보살펴 주시던 외할머니.
모든 현실은 가난으로부터였다.
현실이 이렇고,
형편이 저렇고,
상황이 이렇고 저렇고.
꿈을 아직 찾지 못했던 아이의 마음속에는
어느새 가난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었다.
현실적인 선택의 연속은
가난을 극복하게끔 만들어줬다.
좋은 미래는 쉽게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부모님의 현실적인 일은
높은 성장률과 글로벌이라는 이상적인 시대와
부모님의 노력이 만나 어느 정도 가난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고,
현실적인 선택을 좇아가던 나는
꿈을 버리고 대기업을 선택해 가난을 극복했다.
역설적이게도 시간이 지나고 먹고살 만해지니까
삶의 방향을 잃었다.
먹고사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니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꿈'은 '현실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현실적'이기만 했던 나는 '꿈'을 꾸는 방법을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
가난을 극복하겠다는 현실적인 목표는
돌이켜보면 미지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만든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뿐이다.
그 선택의 결과가 어떻게 돌아올지 알지 못한 채,
당장의 문제에만 집중했고,
십수 년을 그렇게 살아본 후에야
내가 가고 싶었던 길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꿈을 꾸는 것'은 두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믿고,
보이지 않는 것은 부정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들은 현실적인 것을 좋아하고, 편안해한다.
그렇게 그들은 이상적인 미래를 '포기'한다.
현실적인 선택의 다른 의미란 '포기하다'인 건 아닐까.
>> 한 줄 코멘트. 인간의 뇌는 익숙한 것을 선택하기를 좋아한다. 현실적인 선택을 많이 한 사람은 계속해서 그렇게 '포기'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