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자녀의 유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스케이프고트, 골든 차일드, 인비저블 차일드, 로스트 차일드, 트루스텔러 등이 있다.
나는 스케이프고트이자 트루스텔러였다.
물리적 단절 이후 격렬하게 요동치는 감정,
이를테면 수치심, 분노, 죄책감, 그리움, 미안함 등에
나는 정신을 못 차리고 휘청거렸다.
'나에게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원은수)‘는 이런 나에게 큰 도움을 준 고마운 책이다.
이 책을 쓰신 원은수 선생님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
특히 아래의 내용을 접했을 때, 마치 내 삶을 보고 쓴 것 같아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풀 수 있는 대상, 즉 자신의 펀칭백 같은 존재인 스케이프고트가 필요하다. 자신의 모든 잘못에 대한 탓을 그 대상에게로 돌리면서 그 대상을 원망하고 비난하는 것이며 스스로의 책임은 회피하는 것이다. (중략) 스케이프고트 역할은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 더 약하거나 만만해 보이는 특성을 지닌 자녀가 주로 선택된다. 예를 들어, 다른 형제보다 더 온순하고 침착한 자녀는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공격에도 그만큼 반격하지 않기에 펀칭백 용도로 활용하기 적합할 수 있다. 또 자녀가 선천적으로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배려심이 깊고, 이타적인 성향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략) 다른 한편,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자녀, 즉 부모보다 똑똑하고 남들에게 인정과 관심을 더 받는 자녀 또한 스케이프고트가 될 수 있다. 특히 취약한 나르시시스트 부모 같은 경우 자신이 평소 저지르는 우둔한 행동에 대해 자녀가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자신보다도 더 성숙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 같으면 무능감이 자극되어 자녀가 눈엣가시가 될 수 있다. - 나에겐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 원은수, 144-146쪽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건강하지 않은 측면들을 아주 어린 나이게서부터 감지하는 능력이 있는 자녀들이 있다. 그들은 '나르시시스트'라는 단어 자체를 알지는 못하지만,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 분명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일찍이 인지한다. 부모가 보이는 행동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깨우치는 성숙함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다. 나는 이런 능력을 타고난 자녀들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중 라마니 박사의 콘텐츠를 통해 처음 트루스 텔러라는 용어를 접하게 되었다. (중략) 트루스텔러 자녀들은 점차 성장하면서 용기를 내어 부모에게 어떤 부분들이 잘못됐는지 바른말을 하기도 하는데,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닌 자녀에게 더욱 매섭게 공격적인 모습을 모일 수 있다. (중략) 또 안타까운 마음에 다른 가족들이 부모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하도록 하기 위해 객관적으로 부모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려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경우 "엄마한테는 아무 문제가 없어. 그렇게 생각하는 네가 이상한 거야!"라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잘못됐다고 비난받을 가능성이 크다. - 나에겐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 원은수, 159-165쪽
나는 초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학교에서 나오는 가정 통신문 중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을 대신해 서명했다.
엄마는 나의 학교 일에 관심이 적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엄마의 귀찮아하는 눈빛과 표정을
마주하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는 쪽으로 행동했다.
스스로 해결하는 쪽이 마음이 편했다.
꼭 필요한 준비물도 부모님께
사달라고 말하기가 아주 어려웠다.
판자촌에 살만큼 가난한 우리 집 형편에
무엇을 사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부모님께 부담을 주는 행동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본능적으로
나의 필요에 관심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나도 모르게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막연한 직감은
내가 필요를 말했을 때 확인이 되었고
그런 상황에 불편함을 느껴
최대한 그런 그 상황을 피하고자 했다.
엄마가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면
나는 나를 더 자책하는 쪽으로 생각을 전환했다.
너무 어린 시절에는 엄마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힘이 없었다.
'집이 어려운데 내가 엄마에게 부담을 주었나 봐'라든지
'괜히 말했다. 굳이 없어도 다른 걸로 대체하면 되는데.'라든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엄마에게 솔직하게 뭔가를 말하기가
어려웠다.
드라마나 교과서에 나오는 엄마와
현실의 우리 엄마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은 했었다.
엄마에게 무언가를 말했을 때
엄마가 나에게 보여주는 표정과 눈빛은 분명 그랬다.
엄마와 이야기하면 이야기를 하기 전보다
마음이 힘들 때가 많았다.
어려서 이유는 잘 몰랐다.
막연하게 불편했다.
성장하면서 나도 나름 판단력과 독립성이 커지는
시기가 도래했다.
사춘기와 20대 초반 시기에는
엄마의 비상식적인 언행, 일관성 없이
그때그때 말이 바뀌는 태도를 참다 참다
비판하는 표현도 종종 했다.
“엄마는 왜 내 말에 공감을 해 주지 않는 거야?
남도 내가 이런 말을 했을 때에는 공감하는 척이라도 해"
"(다단계에서 파는 물건을 나에게 좋다고 소개할 때) 엄마는 저번에 A가 최고라고 했으면서 그런지 얼마나 지났다고 이번엔 A가 최악이라고 하고 B가 최고라고 해? 이러다가 또 쉽게 B가 최악이라고 할 거잖아. 엄마는 너무 쉽게 극단적으로 판단하고 그 판단이 또 너무 빨리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런데 그건 위험한 사고방식이야. 엄마가 그런 모습을 보이면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엄마를 이용하려 할 거야.”
엄마는 전혀 내 말을 수용하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향해 비난을 쏟아냈다.
나는 원가족에게 너무 답답해서 참다 참다
무언가를 말하고자 할 때면,
내 진심을 말하기 전에 미리
“벽을 보고 말한다고 생각하자.
그 이상은 기대하지 말자."
라고 생각한다.
예상되는 반응은 언제나 적중하기 때문이다.
토라져 아무 말도 안 하거나,
나라는 사람의 성격을 꼬투리 잡아 비난하거나,
근거 없이 나를 공격하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아니, 더 근본적으로는 그 공격을 내 생각과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할 만큼
내면에 힘이 부족했던 나였기에 상처받기 싫어서
미리 방어 기제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런 시기를 거치면서
내가 스스로 거듭 다짐한 것은
아무리 뭔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좀 더 참고
가급적 입밖에 내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엄마의 여러 모습을 잘 참고
수용해 주는 것이 '효도'인데
어린 시절엔 내가 너무 반항심이 강했다고 자책했다.
나는 스스로 건강한 자신감을 갖지 못했다.
엄마가 뭔가 다른 엄마와는
다르다는 막연한 생각은 했지만
엄마뿐만 아니라 나 역시 약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러한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약점'의 영역이라고 여겼다.
엄마의 성격적 특성 중 일부에 불과한 것인데
내가 예민해서 수용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더 컸다.
'나 때문이야, 내가 더 수용해야 해, 엄마를 도와야 해.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할까. 나는 성격이 별난가 봐'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많았다.
엄마의 비난을 고스란히 내 언어로 수용하고 되뇌었다.
아빠는 술주정의 정도가 너무 심했고
폭력적일 때도 많았기 때문에
나에게 엄마는 피해자처럼 인식되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실제로 아빠 때문에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자녀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데
이를 명분으로 활용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빠의 술주정으로 힘든 것은 엄마뿐만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나의 힘듦을 스스로 돌볼 생각이나
그걸 공감하지 않는 엄마를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했고 오로지 엄마가 조금이라도
덜 힘들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몰두하며 살았다.
엄마 역시 나에게 그러한 역할을 늘 요구했다.
결혼도 이혼도 엄마의 선택과 책임의 영역인데
자신이 한 결혼도 책임의식이 없었다.
엄마는 자녀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자주 했다.
"결혼식장에서도 나는 뭔가 꺼림칙했어.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직감했어
식장에 들어가기 싫었는데"
결혼을 마치 자신의 의지로 한 것이 아닌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이 얘기를 자라면서
너무 많이 들었는데 듣다 듣다
너무 화가 나면 엄마가 선택한 결혼인데
책임감 없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이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
삼 남매가 아빠의 술주정을 너무 견디기
힘들었던 중고등학교 시기에
엄마에게 이혼을 권했을 때에는
우리의 고통에 공감해 주기보다는
그래도 자기는 종교적 이유로
아빠를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이라
이혼을 할 수 없다며
자신이 이혼을 안 하고 버티는 이유를 미화하여
우리를 가스라이팅했다.
(그런 논리라면 이혼을 권하는 우리는
아빠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데 엄마는 늘
자기만 옳은 사람이길 바랐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르시시스트인 엄마는
경제적 활동을 할 의지,
독립적 삶을 스스로 살아나갈 책임감이 전혀 없었고
아빠에게 경제적 의존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다.
단절을 결정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이러한 자각이 생기기 시작했지
자라면서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엄마가 마냥 불쌍했고 도와드리고 싶었다.
엄마는 나의 이타적 특성, 공감 능력을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했다.
엄마는 중학생인 나에게 아빠의 외도에 관해
성적으로 지나치게 자세하게 묘사하며
아빠를 미워하도록 한 적도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불쌍한 피해자인지를
강조하는 데에만 열중했다.
딸이 느낄 충격이나 감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는
막내 동생이 게임에 큰돈을 썼다며
내가 동생을 훈계를 하고 혼내달라고
아이처럼 이르기도 했다.
게임 머니에 거액을 쓴 초등학생
막내 동생에게 회초리를 든 것은 나였다.
엄마는 엄마로서 마땅히 해야 할 훈계나
가르침을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요청에 늘 충실하게 맞춰주었다.
그야말로 고분고분했다.
하지만 엄마는 나에게 진정으로
고마워하거나, 내 생각을 궁금해하거나,
내 마음을 이해하거나 해주지는 않았다.
늘 자신이 얼마나 힘들지에 관해 이야기했고
그걸 명분으로 삼아 나에게 늘 요구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그 요구에 부응하려 애쓰는 나를
너무 쉽게 비난했다.
여동생은 자기표현이 강한 편이었다.
여동생이 늦잠을 자는 날에 엄마가
지각을 염려해 깨우면
도가 지나치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기도 잘했다.
가족여행도 가기 싫으면 혼자 잘 빠졌다.
(나는 엄마가 여행 가고 싶다고 하면
교통편과 숙소를 알아보고 예약하고 여행 루트를 짜며 여행을 가고 싶다는 요구에 충실히 부응했다.)
엄마는 그런 동생의 무례한 행동에는
한 번도 뭐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다.
그러나 늘 순종적이고, 엄마의 요구를 들어드리려고
애쓰고 발버둥 치는 나에게는 비난과 공격을 잘했다.
나에게 도움을 요청해 놓고도 정작 발 벗고
도와주면 하나하나 어깃장 놓았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엄마와 아빠의 비정상적 행동을 공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여동생에게 힘들었던
일에 관해 고민을 나누면
여동생은 나보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다고
공격했고 또 자신은 (나와 달리) 얼마나
부모를 잘 공경했는지 자신의 헌신에 관해
자랑하듯 설명했다.
'언니는 나보다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아.'라는 눈빛으로.
하지만 나는 속으로
내가 지방 발령으로 자취할 때에는
나에게 부모님 때문에 힘들다고 전화가 오면
나는 매일 공감하며 잘 들어줬는데
내가 힘들다고 하면 전혀 공감해 주지 않는
모습이 어이가 없다고 생각했고,
여동생이 평소에 본인이 내키지 않으면
얼마든지 부모님을 돕는 일에서
발을 뺀 적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역시 괜히 말했구나,
아무 말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나는 스케이프고트였고
나는 트루스텔러였다.
왜일까.
나의 예민한 기질이 이유일 수도 있다.
나는 예민하다.
그런데,
나라는 사람은
그냥 그런 것이다.
사람마다 눈 코 입 모양이 다르듯이
나는 단지 이런 특성을 가지고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엄마는 나의 특성을 늘 비꼬았고
부정적 프레임을 씌웠다.
늘 나의 예민함을 문제 삼으며 비난했다.
(자신의 무지함을 회피하려는 발언임을 이제는 안다.)
난 이제 그 프레임을 벗어났다.
나의 내면에 좋은 면들을 찾아가고
인정해 나가며 살아가고 있다.
마치 보물 찾기를 하듯이.
예민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
이제는 오히려 나의 이런 특성을
잘 활용하며 살아가고 싶다.
언젠가 직장 동료에게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이야기하며
“내가 너무 예민한 성격이라 더 스트레스를 받나 봐."
라고 하자,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한 거지. 그건 특별한 장점이야."
라고 말해주었다.
참 고마웠다.
내 성격의 이 특성은 늘 비난의 중심 소재였는데
나 조차도 좋게 바라봐주지 않았는데
그 한마디가 오래 마음을 밝혀 주었다.
나는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심했다.
엄마나 여동생이
늘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칭찬하고
회사에서 교회에서 자신이 어떤 긍정적 평가를
받았는지 늘어놓는 모습이 속으로는 많이 불편했다.
그런 경험이 누적되다 보니
나는 나 스스로를 좋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도 너무 재수 없고 불편감이 있었다.
문제가 터지면 내 탓으로
돌리는 것이 익숙하고 제일 편한 방식이었다.
누구나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강점만 집중하고
약점은 철저히 외면한다.
반대로 에코이스트인 나는 나의 약점에만 집중하고
강점은 외면하며 살아왔다.
(에코이스트: = 나르시시스트의 이기주의와 반대되는 성향으로 이타적이며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고,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의 탓을 먼저 하며,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특징이 있다.)
나를 낮추고, 끌어내라며 살았다.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여 일군 성과도
그리 높게 평가해주지 않았다.
그동안은 나 스스로도 나를 짓밟고 살았으니
이제는 내 강점에 집중하며 살아가고 싶다.
사실 엄마나 동생 가족의 비난은 그들의 생각일 뿐이다.
내가 괴로웠던 이유는 그걸 마치 내 생각인 것처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난 이제 그들의 생각과 나의 생각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이제 트루스텔러나 스케이프고트가 아닌
그냥 ‘나’로 살아가고 싶다.
이 글도 그런 삶을 살고 있다는 증명이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