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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Nov 25. 2022

나는 오늘을, 너는 내일을

노력하는 엄마가 될게 -엄마의 첫 번째 편지



엄마는 오늘 기분이 오락가락했다. 최근에는 꽤 평정심을 유지했었는데.

아침에 너의 인형 미니를 보란 듯 집어던지고 죄책감을 애써 모른 척하고. 그래 시작은 퍽 엉망이었지만 너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산에서는 평정심을 찾았다. 다시 힘을 냈다.


그리고 순조로웠지. 새로운 시작을 위한 글 정리도 성의껏 했다. 십 년 전 나의 글이 꽤 마음에 들기도 하고 말이야. 일찍 들어온 너의 아빠도 반갑게 맞이했다. 


청소를 하려고 화장실에 락스를 뿌려놨을 때 너의 아빠가 들어왔다. 그래. 내가 하려고 뿌려놨지. 그런데 나는 특히 오늘 시간을 쪼개서 집안일을 해야 했고 화장실 청소는 너의 아빠가 스스로 약속한 일이야. 락스를 뿌려놓은 화장실을 외면하는 순간 화가 났다. 어느새 내 일이 되어버린 그 일이 참을 수 없어졌다. 그리고 거칠게 청소를 하는 나를 모른 체하고 너를 데리러 가는 것도 모른 체하더구나. 그래. 나의 입장에서 쓰는 거야. 


반나절만에 너를 보니 무척 반가웠다. 기분 좋게 사이좋게 잘 오다가 너는 떼를 썼지. 오는 길에 지나치는 놀이터 주변의 나무 가지를 잘라내는 작업이 계속 있었고 큰 차가 큰 소리로 작업하고 아저씨들이 분주히 오가는 말하자면 너에게 좀 위험한 상황이었어. 나는 되도록 빨리 너를 데리고 지나치고 싶었고 너는 역시나 서서 또 다가가서 구경하고 싶어 했지. 평소의 겁 많은 성격은 이럴 땐 어디 가니? 실랑이 끝에 넌 놀이터 바닥에 주저앉아 떼를 썼다. 지나가는 아저씨가 "위험한데?"라고 했다. 일이 잘 안 되는지 아저씨들 사이에 고성이 오가고 작업하는 차 소리도 너무 시끄러웠다. 나는 너를 유인하려고 "엄마는 간다" 하고 먼저 저만큼 갔지. 엄마가 잘 쓰는 수법이잖아. 좀 무서웠는지 금방 일어나서 쫓아왔다. 안아달라고 떼쓰면서. 그런데 이도야. 금요일은 너의 이불 짐이 추가되고 오늘은 빼빼로 데이라 과자가 또 한 봉지, 너의 가방도 메고 있고 엄마는 너를 안을 수 없었어. 업어주겠다는 말에도 끝까지 안으라고 떼를 쓰는 너를 어느 정도는 내가 먼저 도망가면서 공사 지역은 벗어났지. 엄마 부르며 울며 달려오는 너를 얼른 업고 집으로 왔다. 너를 내려 바로 손을 씻기고 나는 그 길로 나와버렸지. 땀이 비 오듯 흐르는데 한마디로 미칠 것 같았어.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상가에 있는 나의 작업실 의자에 몸을 부려버리며 도대체 왜 이렇게 화가 날까 생각을 했다.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려 하는데 정말 싫다. 다 귀찮다.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아니 그렇게 말을 하고 있더라.

이렇게 화가 나는 이유는 나는 알고 있어. 누구 때문도 아닌 나 스스로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벗어나 보고자 애쓰고 있다. 그런데 또 예상치 않게 이렇게 봇물 터지고 나는 정신을 못 차린다. 이도의 성격은 어떨까. 나의 이런 점을 닮았을까.


나는 어쩌면 상대에게 바라는 게 많은 사람일 수도 있다.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 해야만 하는 일에 임자를 구분 짓지 말고 내 일이라 생각하고 하는 것. 그게 내가 바라는 것이었어. 그러나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집안일을 주도적으로 한다는 것은 억울한 일일 수 있어. 그래 적어도 여기 이 땅에서는. 너의 시대엔 좀 달라지겠지. 고릿적 이야기로 너에게 들려줄 날을 고대한다. 


엄마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렇다. 엄마는 현실을 받아들여 상대가 싫어하는 일 억지로 시키지 않고 그냥 내가 하기로 결정을 해버렸다. 집안에서 발생하는 수백 가지 잡다한 일은 혼자 하기 버겁고 귀찮지만 따지고 보면 상대가 아니라 내가 원하고 정한 일이다. 네가 하원했을 때 손 좀 씻겨달란 부탁을 하지 않고 내가 씻기고 나온 것도 그 맥락이야. 웬만한 것은 그냥 내가 한다. 상대에게 바라는 것 없이 나 스스로 하는 것이 결국은 '자유로워'지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상대에게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으면 내가 마음 상할 일이 없다. 그냥 할 수 있는 것은 나 스스로 한다고 생각해.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네가 하는 거야. 간단해. 이 간단한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이 간단한 이치가 몸에 익어 자연스러운 너의 부분이 된다면 너는 이미 독립적이고 주도적인 사람이 되어 있을 거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주도적으로 대응하고 네가 할 몫을 찾아 자연스럽게 행하는 좋은 민주시민 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하는 것은 참 건강한 행위다. 


엄마는 아마 그런 연습이 안되어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많은 고생을 하고 있는 단계인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엄마가 알아낸 이 "자유의 법칙"을 끝끝내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해. 힘들겠지. 타성과 습관, 관성 따위는 변하게 하기가 매우 어렵다. 시간을 들이는 수밖에. 


엄마가 저녁 내내 기분이 안 좋고 너를 평소보다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해서인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정말 많이 떼를 쓰더구나. (엄마들은 아기가 기분이 안 좋아도 자기 탓인 줄 안다.) 엄마는 그래, 마지막엔 인내심을 발휘해서 끝까지 너를 잘 달래서 재웠다. 마음을 추스른 덕분인지 너의 칭얼거림이 그렇게 화가 나진 않았어. 그저 귀여웠지. 

엄마는 너의 귀여운 모습을 계속 되뇌면서 웃을 일을 찾는다, 아니? 

평생 할 효도를 지금 너의 나이 때 다 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귀여운 모습으로 부모에게 기쁨을 준다는 뜻이지. 엄마는 그 말을 지금 너무 공감하고 또 만끽하려고 한다. 다시없을 이때를 말이야.


소중한 나의 아들, my only son! 엄마는 오늘을 충실히 살았을까? 엄마는 꾸준하게 그러나 조급하지 않게 이 질문에 진실한 답변을 할 날들을 살아낼 것이다. 엄마 인생의 반은 너를 위한 것이다. 너의 내일을 위해 엄마가 오늘을 충실히 살고 깨달은 것들을 너에게 남겨줄게. 오늘이 그 시작이야. 

시작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2022. 11. 11. 엄마의 첫 번째 편지.




기록

2022. 10. 31. 아침.

등원 전 너의 옷을 입혀주고 "엄마는 이도가 너무 좋아"라고 말했더니 너는 "나도 엄마......"

"이도도 엄마가 좋아?"라고 물으니 "응~!" 강한 긍정의 표정으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너...

나는 감동해서 몇 번이나 되새기며 눈물을 찍어냈다.

2022. 11. 1. 아침.

역시 등원 전 너의 옷을 입혀주고  "엄마는 이도가 너무 좋아"라고 말했다. 

"나도 엄마 후아!" 세상에! 하루 만에 후아(좋아)라니! 하루 만에 그 단어를 말하다니! 너를 껴안고 나는 무척이나 기뻐했지.

2022. 11. 10. 아침.

이제는 귀속말로 속삭이는 "나도 엄마 후아"가 듣고 싶어 매일 너에게 고백한다.

"엄마 좋아해 줘서 고마워"라고 말하자 "아니야 모" 하하. 아니야 뭘.이라고? 귀여운 녀석.

너무 이뻐서 저녁에도 시켰더니 머리까지 긁적이며 말한다. "아니야 모!"


지켜보는 이도를 위해 엄마가 노력할게. 엄마가 찍고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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