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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Dec 05. 2022

환경을 대하는 습관

나는 오늘을, 너는 내일을 -엄마의 네 번째 편지



요 며칠 날이 제법 쌀쌀해졌지? 봄 같던 늦가을 날씨는 며칠 전의 비로 하루아침에 돌변하여 비로소 겨울의 초입을 느꼈다. 너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바로 작업실에 들러 사상 인디스테이션으로 보낼 아트상품들을 챙기는데 어찌나 손이 시리고 콧물이 계속 나던지. 작업실은 왜 늘 유독 추운지.

소포 상자를 부치고 우체국의 화장실에 들렀다. 손을 씻으려는데 온수가 나온다는 표시를 보니 반가웠다. 꽁꽁 언 손을 따뜻한 물로 얼른 녹이고 싶은 충동과 동시에 묘한 갈등이 생겼다.


제법 날씨가 추워진 요즘도 엄마는 차가운 물로 네 손을 씻긴다. 어제 자기 전 손을 씻길 때 차가운 물에 움츠러드는 네 손의 반응이 느껴져 좀 미안했어. 엄마는 겨울에도 샤워를 할 때가 아니면 뜨거운 물을 쓰지 않는다. 참! 기름기 많은 그릇을 닦아야 할 때도 쓰지. 꼭 뜨거운 물을 써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가급적 찬물을 쓰는 이유는 뜨거운 물을 사용할 때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아지고 또 뜨거운 물이 나오기까지 낭비되고 버려지는 그 많은 물이 아깝기 때문이야.


엄마는 사람들이 얼마나 의식 없이 물을 낭비하는지 알고 깜짝 놀란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공중화장실에서 목격한 물을 틀어놓고 머리를 매만지고 있는 사람, 비누칠할 동안 계속해서 물을 틀어놓는 사람. 사실 후자의 경우는 대부분 그렇게 하더라고. 언젠가 엄마가 어느 초등학교에 강의를 간 적이 있는데 그때 공중화장실에서 여학생 두 명이 물을 틀어놓고 거울을 열심히 보고 있길래 슬쩍 물을 잠갔다. 아이들은 의아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더구나. 그래, 아이들은 가르쳐줘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그러나 공중화장실에서 물을 틀어놓고 딴짓을 하는 성인에게 똑같은 행동을 할 수는 없겠지. 자칫 기분 나빠 할 수 있으니까. 속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들었어. 우리는 왜 환경과 연관된 '습관'을 기르는 교육을 좀 더 하지 못했을까.  




엄마는 결국은 차가운 물로 손을 씻고 나왔다. 우체국에서 말이야. 하지만 괜찮아. 손을 주머니에 넣으면 곧 따뜻해지니까. 아주 짧은 순간만 참으면 손은 금방 제 체온을 찾거든. 엄마는 오래된 습관을 지켰고 잠깐 참으면 괜찮다는 것을 아니까 그 습관을 계속 지키게 될 거야.

이도야. 어디서든 마찬가지야. 집에선 물이나 전기, 가스 등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니 아껴 쓸 수 있겠지. 그러나 바깥에서 네가 똑같은 종류의 에너지를 써야 할 때도 집에서처럼 아껴야 해. 꼭 필요한지 생각해 보고 사용해야 한다. 똑같이 아껴야 하는 하나의 자원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해. 물티슈나 각종 휴지들도 저렴하다고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된다. 공공장소에 비치된 것도 낭비하는 게 아니야. 나 한 사람의 실천을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된다. 나 같은 사람이 몇백, 몇천, 몇만 명이 모이면 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우리의 시대적 문제의 그 해결책에 가까워져 있겠지.


다른 나라 이야길 해볼까. 독일에서는 생활 속 절약이 사람들의 몸에 배어있다. 물을 틀어놓고 이 닦는 행위는 상상할 수 없고 밤에도 대낮같이 밝은 우리들의 집에 비하면 전구색으로 밝힌 두세 개의 조명은 어둡다 할 수 있겠다. 그들은 웬만한 거리는 자전거를 이용한다. 자가용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쓰지를 않아.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들은 절약이 몸에 익은 느낌이었어. 우리보다 지불해야 할 공과금이 비싸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지금 우리나라도 많이 올라 독일 못지않을걸.

요즘 독일에서는 플룩샴(flugscham)이란 말이 유행이라는구나. 비행기(flug)와 수치, 부끄러움(scham)이란 말의 합성어로 온실가스를 어마어마하게 배출하는 비행기를 탈 때 환경에 느끼는 죄책감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해외여행하지 않고 국내에서 여행하거나 캠핑하고 노는 사람이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많은 모양이야. 최근 조사에선 독일인의 80% 이상이 환경을 위해 소비를 포기할 수 있다고 했다더구나. 대단하지 않니? 이 자본주의 극치의 소비만능 시대에 환경을 생각해서 소비를 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저렇게 많다니. 한 나라의 높은 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생각해 보자. 상품의 소비 능력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사람과 환경을 생각해 자신을 절제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이 더 가치 있는 방법으로 자신을 보여준다 생각하니? 단연코 후자 쪽이다. 설사 실천을 100%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말로써 의지를 표명한 사람이 점점 더 그쪽 길로 갈 확률이 높지 않겠니?

또 이런 일도 있었지. 몇 년 전 '그레타 툰베리'라는 스웨덴 소녀는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비행기를 타지 않고 친환경 요트를 타고 UN 기후행동 정상회의가 열리는 미국 뉴욕까지 몇 주에 걸쳐 항해를 했다. 지금까지도 환경운동의 선봉장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 자신의 신념과 다른 행동을 하지 않겠다며 요트로 대서양을 가르는 모험을 한 이 소녀는 "편한 길로 가지 않겠다" 하더구나.


참 여러 의미가 담긴 말이다. 편하고 빠르나 오염이 심한 비행기를 쉽게 선택하지 않겠다란 표면적 의미와 환경을 지키는데 따르는 온갖 불편함을 감내하는 쉽지 않은 길을 가겠다는 것, 또한 앞으로의 투쟁이 힘든 것임을 알지만 의지대로 실천해 나가겠다는 감춰진 의미까지. 이 놀라운 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단 하나의 행성이 우리의 무분별함으로 파괴의 길에 들어선 것에 대한 위기감, 그 통렬한 의식에서 비롯됐겠지. 그녀의 연설을 보면 투사다운 비장함이 느껴진다.

사실 툰베리가 요트로 집과 뉴욕을 왕복한들 하루아침에 변하는 게 뭐가 있겠니. 망망대해 떠있는 그녀의 요트 위로는 여전히 수많은 비행기들이 오갈 텐데. 그러나 이 소녀의 행위에 감동하고 동감하는 다수가 등장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플로깅'이란 문화가 이제 제법 자리를 잡았다더구나. 조깅이나 산책을 하면서 쓰레기도 줍는 것. 이런 행사엔 돈을 내서라도 참여를 한다지. 한 세대가 이렇듯 생태와 환경문제를 인식해 실천 운동을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인 게 참 다행이고 기특하다.


그렇다면 좋은 일이다. 우리가 쓰는 자연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남용되는 것이 아니며 생태를 파괴했을 때 감당해야 할 엄청난 재앙 앞에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하나의 가치로 받아들인 세대에게는 물을 낭비하지 않고 아껴 쓰는 일, 자가용이 주는 편리함을 마다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 조금 추운 겨울을 나는 일, 조금 더운 여름을 나는 일, 한번 사용하는 모든 것을 차차로 거부하는 일 등이 자연스러운 일종의 태도, '환경에 대한 습관'으로 자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일 테니까. 고도성장 시기에 당연시되던 '펑펑 쓰는 일'이, 어쩌면 인간의 본성과 자연의 질서에 위배되었던 것이, 이제야 다음 세대에 재고와 개선의 여지가 있는 일로 자리 잡아간다는 것이 정말 다행한 일이다.



ESG라는 기업경영문화가 이 시대의 대세가 되었다. E(Environment)가 제일 앞자리를 차지해 중요성을 부각하고 있지. 이제 친환경으로 생산한 제품이 아니면 소비자에게 외면을 받는다. 생산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고 자원을 재활용하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줄이는데 원청에서 이런 방식으로의 생산을 요구하는 실정이니 많은 작은 기업들도 살아남기 위해 친환경으로의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더구나. 이제는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에 엄청난 벌금을 매긴다니 글로벌 기업을 필두로 이런 새로운 이념을 따르는 회사가 점점 많아지면 좋을 거다.

돈에 민감한 기업들이 이리 재빨리 움직이니 아마 변화는 빨라질 거야. 아직도 광물자원의 의존도가 높아 친환경 산업으로의 전환에 과도기에 있지만 한번 시작한 변화는 대중의 힘을 동력으로 엄청난 속력을 낼 것 같아. 각국 정부도 신재생에너지의 전환율을 몇 년도까지 몇 퍼센트 달성하겠다는 식의 목표를 발표하잖아. 

지금은 모든 것이 과도기다. 경제도 산업도 국제정세도 환경문제도. 모든 과거의 이념들이 실질적으로 도전받고 변화의 요구가 지대한, 지구가 대격변기를 맞고 있는 기분이야. 그래서 엄마는 미래가 참 궁금하다. 우리 이도가 엄마 나이가 된 세상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과연 환경 재앙의 예견을 잘 대처하고 비껴가 한층 건강해진 지구에서 살게 될까, 어떨까.


변화를 맞는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자세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거라고 생각해. 평소에 잘 들여놓은 습관이 그래서 중요하다. 사치하지 않고 분수에 맞게(여기서 분수란 경제력의 유무가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분수다.) 꼭 필요한 만큼 사고, 쓰고, 행하고, 모든 차원의 에너지를 절약하는 습관이 잘 된 사람은 큰 변화에도 그리 흔들리지 않을 거야. 늘 자기 분수보다 과했던 사람만이 타격에 흔들린다.

물과 전기를 아끼는 습관, 걷는 습관, 불필요한 것을 사지 않는 습관, 다른 생명을 소중히 대하는 습관, 그 작은 습관 하나하나가 너를 이루어 격변에도 꽤 잘 견디게 할 거야. 너는 이미 최소한에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 이게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 평생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그 이상을 항상 요구했고 그것을 당연시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인간다움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은 최소한이고 큰 물질의 덩어리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정신적 가치에 집중하며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다움을 완성하는데.

말하자면 절약하는 생활과 습관이 인간에게도 환경에도 긍정적이고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지.





본격적인 겨울을 맞아 유럽은 생존의 문제에 직결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쟁과 인플레이션의 여파로 에너지 가격이 무려 10배나 상승했다더구나! 믿기니? 독일의 가정의 경우 평균 에너지 사용 지불액이 9만 원 선이었는데 지금은 90만 원을 지불해야 하는 거야! 평소대로 쓴다면!

엄마도 독일의 축축하고 추운 겨울을 잠시 겪어봐서 알지. 얼마나 힘든 겨울을 나게 될까. 우리에게도 곧 이런 일이 닥치지 않을까. 심란한 마음이 들었다. 평소에 잘 절약하던 사람도 이쯤 되면 참 버티기 힘들 거야. 여러모로 힘든 겨울이 될 것 같다. 지구 반대편의 에너지 위기도 곧 나의 일로 인식하고 엄마가 말한 대로 우리 모두 '펑펑'을 버리고 '알뜰'을 택한다면, 작은 실천의 용기를 낸다면 우리의 다음 겨울은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인간은 매우 영리하다. 문제점이 파악되면 해결책도 곧잘 찾아내지.

과학기술은 에너지를 모으는 장치를 이미 개발했더구나. 에너지가 있을 때 저장하고 남아도는 지역의 에너지, 태양열 등을 저장하여 부족한 쪽에 팔 수 있다. 가격이 아직 많이 비싼 모양이던데 그것도 또 좋은 소재나 기술의 개발로 곧 개선하겠지. 너무 한 가지 에너지에만 의존하는 형태를 버리고 다각화하는 움직임도 있고 말이야.  친환경 자동차의 선봉에 선 전기차가 배터리 폐기물 문제 때문에 환경에 오히려 문제가 됐었는데 우리나라의 한 개발팀이 차체 자체를 충전해 배터리가 필요 없는 자동차 기술을 개발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물론 상용화되려면 기술 보완이나 시일이 좀 걸리겠지만 정말 멋지지 않니!

이렇게 우리의 아이디어가 모이면 얼마든지 위기를 헤쳐나가는 수많은 사례들이 있어 안심하게 한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고 엄마는 더 다양한 실천들을 시도해야겠다. 아직 편리함을 버릴 용기가 없어 하지 못했던 몇몇 가지 일들, 때때로 죄책감을 가지면서도 행했던 것들을 버리고 좀 더 가벼이 살아보려 해. 엄마는 너에게 편지를 쓰면서 참 많은 다짐을 하고 반성을 한다. 그리고 진일보하지. 그렇게 믿는다.



천천히 한 발짝씩 진일보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검소하고 건강하며 몸에 밴 절제. 아흔 살에도 반짝반짝하는 노인네. 그려보니 기쁘다. 뿌듯하고. 절제하면서 살아도 절대 손해 보는 건 아닌 것 같지?

이제 이도는 아주 아기는 아니니 집안이 좀 춥더라도 잘 견뎌줄 거야. 엄마가 두껍게 입히는 카디건도 곧잘 입고 양말도 잘 신어주고 에너지 절약에 협조를 잘해주고 있어서 고마워! 겨울은 원래 추운 거고 여름은 원래 더운 거란 지극히 당연한 이치를 잘 되짚으며 같이 잘해보기로 하자!




2022. 12. 2. 엄마의 네 번째 편지.



                                                                        지난여름의 손 씻기는 아빠와 이도. 엄마가 찍고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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