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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Dec 12. 2022

지금은 또 비울 때

나는 오늘을, 너는 내일을 -엄마의 다섯 번째 편지



엄마는 주기적으로 옷장, 서랍장, 붙박이장을 싹 다 비우고 새로 정리를 한다. 왠지 모르지만 어느 날 불현듯 정리 욕구가 생겨. 옷장을 서랍장을 붙박이장을 매일 열고 물건을 빼고 넣고 무심코 하는 행동 같지만 쓰다 보면 흐트러지는 물건들과 어느새 쌓여 방치된 물건들이 신경에 계속 걸리는 채로 남아있다 어느 순간 확 터져버려 '오늘은 정리하자!'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

지난 10년 동안, 기억도 정확하게 딱 두 번 입은 롱코트를 오늘 결국 버렸다. 누군가의 손때가 잔뜩 탄 '새'원피스도 버렸어. 온라인으로 주문했는데 아마 매장에서 사람들의 손때가 잔뜩 낀 제품을 그냥 보냈던 모양이야. 귀찮다, 그냥 빨아 입자 생각하고 빨아서 그대로 붙박이장에 2년째 걸려있던 그것을 코트와 같이 보냈다. 디자인 멀쩡한데 이상하게 잘 안 입어지고 계속 버리고 싶던 카디건도 오늘은 맘먹고 보내버렸다. 멀쩡하고 거의 새것이라 언젠가는 입겠지 하고 뒀던 것들이 결국은 재활용 컨테이너로 간다. 망설이다 오늘은 일단 패스! 한 검정 코트도 조만간 같은 운명일 거다. 버리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은희한하게 결심하기가 참 쉽지 않아.


엄마는 옷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물론 신발도. 결혼 전엔 그 많던 신발과 코트 때문에 할머니에게 무진 구박을 받았어. 그때는 매일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작업실에 출퇴근했었고 수업도 많이 했었고 사람도 매일 만났지.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는 한참 멋 부릴 나이었고. 지금과 다르게 날씬한 몸에는 어떤 옷이든 잘 어울려 모델 같단 소리도 종종 들었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부지런히 꾸미고 다녔네. 그런 에너지가 이제는 도저히 없는데.

엄마고 주부가 되니 치장이란 것은 어느새 소원해졌지. 이제 매일 보는 사람은 오직 너와 너의 아빠뿐이다. 그리고 주중에 어린이집 선생님, 며칠 꼴로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가끔 친구, 한 달에 한번 목요 미식단 모임의 지인들. 작업실도 지금은 아파트 상가로 옮겼고 활동 반경이 참 좁아졌네. 며칠 전 외출엔 지하철 탔는데 오랜만에 정말 많은 사람 봤고 사람 구경 잘했다.




엄마는 외출할 때 가방을 들지 않는다. 여름엔 손에 휴대폰, 겨울에는 외투주머니에 휴대폰과 립밤이면 끝이야. 벌써 몇 년 된 것 같은데? 너와 외출하게 되면 너의 짐이 많으니 할 수 없이 큰 쇼퍼백을 사용하지만.

엄마가 가방을 들지 않게 된 건 고질적인 목과 어깨의 통증 때문이었어. 서른 줄 부턴가? 목의 통증 때문에 목걸이를 못하게 되다가 점점 심해져 어느 날부턴 스카프와 가방도 견디기 힘들게 됐지. 조그만 쇼핑백으로 대체하자 한결 나아지더구나. 쇼핑백의 사이즈가 점점 작아지다 결국 맨손이 됐다. 정~말 편하다. 휴대폰 하나만 잘 간수하면 잃어버릴 게 없지. 두 손이 자유를 한번 맛보니 엄마의 예쁜 가죽 가방들은 그대로 붙박이장행이 됐다.


엄마의 그 많던 스커트, 차마 버릴 수 없어 일단 상자에 넣어 작업실에 두었던 것들이 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아쉽거나 생각나지 않고 심지어는 한번 꺼내 입지도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젠 맞지도 않아. 그것들을 어쩌자고 버리지도 못하고 그리 뒀는지. 꼭 살 빼서 옛날처럼 멋들어지게 입어보자 생각했겠지만 이젠 절대 그럴 리 없다는 걸 잘 안다.

엄마는 매일 산행을 한 시간 이상씩 하고 야식을 안 먹어. 먹는 양이 결코 많다고 볼 수 없지만 절대로 10년 전 체중으로 돌아가지 않더구나. 엄마가 지금 그때의 몸무게로 돌아가려면 지금의 먹는 양에서 훨씬 더 줄여야 하지. 말하자면 다이어트를 맘먹고 해야 한다. 그렇지만 무엇 때문에? 엄마는 산행을 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져서 지금의 모습에도 충분히 만족한다. 표준체중이고 건강검진 결과도 훌륭해. 어느 정도 있는 뱃살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바지를 한 치수 크게 늘렸다. 예전의 사이즈를 고집하지 않으니 엄청난 편안함이 찾아오더구나. 먹고 싶은 것을 적당히 다 먹어보는 기쁨을 계속 누리고 싶고 사람들과 같이 나누고 싶어. 이도랑 맛있는 음식 먹으려는데 엄마가 살찔까 봐 겁내면서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것, 너무 이상하지 않니?


몇 차례 고민 끝에 결국 오늘 버린 옷들로 엄마는 또 한결 가벼워졌다. 홀가분하다.

말 나온 김에 작업실의 상자들도 붙박이장의 가방들도 처분해야겠다. 예전에는 나의 것이었으나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모든 것을 차차 처분해야지. 아직도 버릴까 말까 하는, 언젠가 입을 것 같은 옷들, 신발들, 소품들이 수두룩하다. 정말 많이 처분했는데 아직 한가득인 것 같아.

엄마는 물건들로부터 정말로 벗어나고 싶은데 서랍장들은 반대로 가득 차 있어. 끊임없이 버리고 싶은 욕구 앞에서도 선뜻 비우지 못하는 것은 필요할 것 같고 언젠가 쓸 것 같고 아까운 마음에 더해서 버리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있기 때문이야. 그 괴리에서 괴로움을 느끼는 거지.  

수시로 들여다보는 서랍장에 빈 공간이 그득하고 종내 그 서랍장마저 들어내 집에 텅 빈 공간이 생기면 나의 이상이 실현되는 건데.


할머니가 억지로 보내 준 세 개의 화분이 아니면 가구가 단 두 개. 필요한 것만 갖춘 완벽한 공간이다.


예전 우리 집은 엄마의 이상에 부합하는 멋진 공간이었다. 그땐 비대면 배달이 아니어서 마트에서 배달 온 직원이 우리 거실을 휘둥그레진 눈으로 보더니 "진짜 아무것도 없네요! 제가 딱 이런 곳에서 살고 싶었어요!"라고 외치던 게 생각 나. 그는 본능적으로 해방감을 느낀 게 아닐까.

지금 우리 집엔 저 소파 앞에 한자리 차지하고 깔린 매트와 너에게 필요한 물건들, 네 장난감을 정리하는 서랍장, 부피가 큰 장난감,  물려받은 책장, 정리함, 에어컨, 공기청정기, 온갖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가득하지. 물론  탓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과도기로서 곧 정리될 물건들이고 이 안에서도 엄마는 정리력을 발휘해 나름의 질서를 이루고 있으니 좋아, 좋아.

너의 물건들만 늘어나면 괜찮았을 텐데 나의 물건들, 주로 옷이 많이 늘었다. 휴. 붙박이장이 모자라 압축한 이불, 옷 등의 팩들이 창고에 한자리 차지했고. 늦가을에 쓰는 차렵이불을 아빠에게 사주려 했는데 정작 본인은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그걸 왜 그렇게 사주고 싶었을까. 사주니 잘 덮고 있지만 기존에 덮던 이불은 창고에 또 압축됐지. (아까워서 버리지는 못하고.) 휴. 난방을 전혀 하지 않았을 때 필요했던 전기장판과 거위털 이불, 두꺼운 실내용 옷들도 말이야. 앞으로는 계속 난방을 해야 하는데 그럼 압축팩의 내용물들은 어쩌나. 엄마는 또 갈등하게 생겼구나. 휴.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물건이 과연 몇 개나 될까. 내 몸에 꼭 맞고 내 손에 맞아 나의 일부가 되어 계속 쓰이는 정말로 필요한 물건은 몇 개면 될까.

90년대에 샀던 니트, 목티는 지금까지 입는다. 그땐 옷이 지금처럼 싸지 않았고 질이 좋았나 봐. 그렇게 몇십 년을 사용하는 물건이 엄마는 몇 개가 된다. 그런 걸 제외하고 그냥 존재하는 물건들, 샀으니까 받았으니까 할 수 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들을 과감히 버릴 수만 있다면! 이제는 안 살 수 있다면! 

더 중요한 것은 이거야. 엄마가 너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며 엄마 스스로도 매번 깨지면서도 계속해서 싸움을 거는 것, '사지 않는 일'. 고백건대 엄마는 승률이 좋지 않다. 꽤 나쁜 편이지.

아직도 쇼핑앱 두 개를 지우지 못했고 거의 매일 들여다본다. 오늘은 살 게 없을 거야 하면서. 사실 사지 않는 날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괴로워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말 필요해서 물건을 사는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야. 아직도 남은 관성과 타성으로 적당한 타협을 하는 게 하닌가, 의구심이 들어서야. 또한 환경에 결코 떳떳하지 못해서지.

절대로 가득 채우고 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산, 작은 서랍 두 칸이 전부인 냉동고가 며칠 전의 몇 가지 소비로 가득 찬 게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것은 엄마가 좀 지나친 것일까. 아니지. 절대로 가득 채우고 살지 않겠다 다짐했으면서 좀 싸다고 대량으로 구매하는 이중적 태도에 스스로 찔리는 거지. 좀 비싸더라도 필요할 때 조금 사서 더 이상 가득 찬 저장고들이 신경 쓰이지 않게 한다면 내 마음이 참 편할 텐데. 아니, 이런 어지러운 정세에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데 사재기 좀 해놔야 되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반항하듯 드는 것은 엄마가 얼마나 비움에 목말라하며 애쓰는지 오히려 잘 보여주는 대목 아니냐.


엄마는 12월이 되면서 이번 달은 사지 않는 달로 정했다. 물론 벌써 실패했다. 오늘 받은 책 세 권은 고민 고민 끝에 샀지만 받으면서 기쁘지 않던걸. 도서관 다니면서 보다 꼭 사야겠다 싶은 것만 샀어야 되는데. 지우지 못한 문제의 쇼핑 사이트에서 중고책을 너무 싸게 파는 바람에 샀지만 기대에 못 미친 거지.

엄마의 친구 한 명은 얼마 전 그 유명한 샤넬백을 샀다더구나. 많은 '웨이팅'을 감내하고 몇 번만의 시도 끝에 비싼 매장에 들어가는 떨림도 이겨가며 마침 딱 있었던 사고 싶었던 디자인의 가방을 거금을 주고 구매했는데 긴 이야기에서 엄마 귀에 꽂힌 한 마디는 "그렇게 좋지 않더라"라는 것이다. 소비의 본질을 바로 보여주는 그 한마디에 엄마는 내가 기를 쓰고 가고자 하는 방향의 옳음을 간파했던 거지.

엄마는 스스로 꽤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고 자부했다. 질 좋은 상품을 아주 싼 가격에 산다는. 그런데 다 똑같은 거야. 비싸나 싸나 질이 좋으나 나쁘나 잠깐의 만족이 지나면 결국 똑같이 필요 없이 쌓이는 물건이다. 집착일 뿐이지. 충동에 사고 쌓이고 후회하고 망설이다 버리고 못 이긴 충동에 또 사고 또 또... 거기에서 해방된다면 나는 얼마나 자유로울까. 밖에 나다닐 때 아무것도 없는 내 맨손처럼. 물건에서 해방된 나의 에너지가 집중되어 쓰일 곳은 어디겠니.



가랑비에 옷 젖는다.
작은 소비가 모여 무시 못할 큰 타격이 되고 반대로 작은 절약은 무시 못할 큰 힘이 되어 돌아온다.
하루하루의 작은 나쁜 혹은 좋은 습관은
나를 망치기도, 나를 변하게 하기도 한다.
물건 하나 사고 싶은 충동을 참는 것은
충동을 제어하는 사람이 되게 한다.
쓸데없는 소비로 낭비되지 않은 돈은
그대로 에너지로 쌓여 후에 경제적 자유로움으로 돌아온다.
쓸모없는 것을 곁에 두지 않으면 그 자리엔 다른 건전한 가치들이 자리 잡게 된다.
더 이상 물건들에, 하찮은 것들에 집착하지 않고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생각은 더 건설적이고 진취적으로 나아간다.
충동 조절에 뛰어나고 행동에 걸릴 것이 없는
 참 자유인이 된다.



엄마가 생각하는 물건을 사지 않으면 자유인이 되는 과정이야. 자유를 향한 첫걸음이 바로 물건의 집착을 버리는 것, 사는 충동을 이기는 것이란 엄마의 말에 너는 동의하겠니? 차차 많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기겠지. 엄마는 너에게 편지를 쓰면서 언제나 각오를 다진다. 이제부터 이번 달이 끝날 때까지 물건을 사지 않겠다! 엄마는 너로 인해 마음을 다잡고 엄마가 향하는 방향을 점검한다. 아이가 어른을 키우는 법이지.

아직 많이 부족하고 실수하지만 엄마가 향하는 방향만큼은 옳다는 생각을 가지고 너를 이끌 생각이다. 물론 강요하지는 않아. 강요도 엄마의 방향 안에는 없으니까. 엄마의 생각이 어떤지, 그저 너의 의견을 듣고 싶구나. 그 귀여운 입으로 지금은 몇 가지 말 밖에 하지 못하지만 언젠가 엄마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되겠지. 와, 진짜 엄마는 상상이 안 되는걸! 이런 이야기들을 우리 이도는 좋아할까.

글쎄. 엄마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정도만 알아줘도 참 고마울 것 같아.

다정한 너는 며칠 전 엄마 아빠를 안아주며 "엄마, 아빠, 고마와."라고 했다. 정말 감동이었어. 이렇게 다정한 아기인 너는 커서 엄마와 조금쯤은 대화도 나눠주겠지.

쑥쑥 잘 커라, 이도야. 엄마도 서툴지만 잘 커볼게.(아냐! 너무 빨리 크진 마~)

감동 그 자체인 내 아기. 엄마가 항상 너에게 고마와!



2022. 12. 9. 엄마의 다섯 번째 편지.



작년 여름 장난감에 둘러싸인 이도. 엄마가 찍고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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