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크어버드 Sep 01. 2020

시골생활의 치명적 단점

“안녕하세요, 119죠? 인터넷에서 보고 가능하다고 해서 연락드렸는데 혹시 벌집 제거도 해주시나요?”
“네, 물론입니다. 혹시 크기가 얼만 한가요? 많이 큰가요?”
“그렇게 크진 않고 남자 주먹 크기로 처마 밑에 붙어 있어요.”

“그 정도면 생각보다 크네요. 바로 출발할 건데 지금 소방관분들이 다른 현장에 계셔서 약 30분 정도 뒤에 도착하실 거예요. 주소와 전화번호 부탁드립니다.”
“네, 강원도 동해시 xx입니다. 감사합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언제 저렇게까지 집을 지었나 싶다. 벌레와 동거하는 시골 생활에 이제는 익숙해졌나 싶었는데 벌집을 보는 순간 또다시 멘붕이 왔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여름철 주택에는 자주 있는 일이라고 한다. 시골에선 흔한 일이라는데 우리는 처음 겪다 보니 처음에는 무척이나 당황했다. 시골에서 생길법한 일들은 거의 다 경험한 줄 알았는데 아직도 뭐가 많이 남았나 보다.


다행히도 소방관분들께서 빨리 와 주셨고 이 정도 사이즈는 에프킬라로도 처리할 수 있다며 순식간에 소탕해 주셨다. 벌 생김새만 보고도 어느 정도 위험한지 아신다는데 다행히 땅벌은 아니라 쏘여도 그냥 따끔한 정도라고 한다. 10분 만에 모든 상황은 종료되고 우리는 연신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아주 기쁜 마음으로 잔해물을(?) 치웠다. 요새 유행하는 제주도 연세살이나, 강원도 한달살기를 생각한다면 여름철엔 꼭 처마 밑을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겠다. 혹시라도 오래 방치해 둔다면..... 으!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치열했던 10분간의 사투

시골은 벌레, 잡초와 함께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시골 어르신들이 마당에 잔디를 심는 게 아니라 시멘트로 덮어 버리는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아무리 뽑아도 자라나며 비가 오면 그야말로 무시무시하게 자라나는 잡초는 시골생활을 하겠다면 단단히 각오하고 오는 게 좋겠다. 우리는 모기 정도는 딱히 신경 쓰지도 않았는데 그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한 뱀, 지네, 말벌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달콤한 빵 냄새를 맡고 말벌이 들어와 한바탕 소란을 피우질 않나.. 집 창틀 옆으로 뱀이 지나다니질 않나.. 지네는 대체 어떻게 해서 침대에서 나오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모르겠다.




어느 날 새벽 6시, 손님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에 잠이 깼다. 전화기를 보는 순간 "무슨 일이 터졌구나!"를 직감했는데 받아보니 역시나 우려했던 대로였다. 새벽에 주무시다 어떤 소리가 나서 일어나 보니 지네 한 마리가 이불에 붙어있어 소스라치게 놀라셨다고 한다. 깜짝 놀라 자리에서 박차고 나왔는데 그날따라 객실이 만실이었던 터라 다른 손님이 깰까 봐 소리도 못 지르고 이불로 지네만 돌돌 감싸 카페 구석에 숨겨놓은 뒤 새벽 내내 공용공간에서 밤을 지새우셨다고 했다.


새벽 시간이라 우리에게 연락도 못 하고 다시 들어가 잘 엄두도 나지 않아 이른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연락을 주신 거였다. 너무 놀라고 죄송해서 얼른 출근했는데 더욱 죄송했던 게 다른 손님들이 보면 더 놀라고 영업에 손해를 끼칠까 봐 한쪽 구석에 이불을 치워놓으신 거였다. 우리가 오니 다른 손님이 보기 전에 얼른 치우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많이 놀라셨을 텐데 그 와중에 우리 걱정을 해주시는 게 너무 고마우면서도 죄송했다. 이불을 들고 밖으로 나가 힘차게 흔들었더니 약 15cm 정도 크기의 지네가 땅에 툭 떨어졌다. 분노의 발길질로 밟아 죽인 뒤 이불 커버를 바로 벗겨냈다. 집 안으로 못 들어오게 항상 집 주변으로 약을 쳤는데 어떻게 뚫고 들어와 침대까지 들어간 건지 모르겠다.


연신 손님께 사과드리고 환불까지 해드렸는데 모처럼의 여행 계획을 우리 때문에 망친 것 같아 너무 죄송했다. 이분도 우리처럼 뜻하지 않게 일출을 보셨다고 했는데 정말이지 그 기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전에 제주 주택에서 본 적이 있어 그나마 덜 놀라셨다곤 하셨지만 얼굴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한 일인데 지네 같은 경우는 시골 주택에 살다 보면 도무지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으니 아름다운 풍경 뒤엔 이런 숨겨진 고난(?)도 있음을 감수하자.


막연하게 푸른 바다만 생각하고 왔다간 혼쭐이 난다!


양평에서 전원생활을 하시는 부모님 같은 경우엔 주무시다 지네에 물려서 응급실에 간 경우도 있고 심지어 세탁기 안에서도 지네가 튀어나오곤 했다. 이웃 어르신께 여쭤보니 그나마 최근에는 깔끔하게 공사를 해서 이 정도지 전에는 훨씬 많았다며 시골엔 당연히 지네가 나오지 그게 뭔 놀랄 일이냐며 여기도 새벽에 응급실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씀하셨다. 새벽의 지네와 눈 마주치는 그 공포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절대 모를 거다. 그렇다고 천적이라는 닭을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쉽지 않다.. 다시 시골 생활을 꿈꾸면서도 우리를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요 녀석 지네 때문이다.


가게가 위치한 논골담길은 가끔 뱀도 나타나곤 했다. 시골은 마당에 뱀이 똬리를 틀고 있거나 아주 심한 경우 안방에 똬리를 틀고 있을 때도 있는데 논골담길에서 처음 뱀을 봤을 땐 지네의 공포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젠 하다 하다못해 뱀까지 나오는구나, 집을 팔아버려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만든 순간이었다. 묵호 자체가 산 동네라 산에 뱀이 사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가끔 갈 곳을 잃었는지 방향을 못 찾고 엄하게 가게 주변을 서성이곤 했다. 처음 봤을 땐 너무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움직이지 못하다가 정신을 차린 후 부랴부랴 도망치듯이 가게로 피신했다.


어느 날 가게 문 앞에 그 뱀이 다시 나타났는데 하필 손님이 많은 조식 시간이었다. 무서워서 문을 닫은 채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당황해 119를 부를 생각도 못 하고 있는데 손님 한 분이 긴 막대기를 들고 밖으로 나가셨다. 어릴 적에 시골에 살아 근처 물가에서 물뱀을 많이 잡아봤다며 머리를 보니 독은 없다며 잡아 보겠다고 하시는 거였다. 위험하니 하지 마시라고 했지만 괜찮다며 긴 나무 막대기로 뱀을 꼬아 저 멀리 반대편 숲 속으로 던져 버렸다. 가게 유리창 옆으로도 지나다니는 작지만 무서운 녀석이었는데 다행히 그날 이후로 가게 근처에선 더 나오지 않게 되었다. 가끔 눈을 감으면 문 옆에 숨어서 날 쳐다보던 뱀의 얼굴이 떠오른다. 다시 나타나도 아마 못 잡을 것 같은데 아무대로 난 뱀 때문이라도 도시에서 살아야 하나 보다. 지네까진 어떻게 해봐도 뱀은 도저히 안 되겠다.

 

이제는 이런 시골길을 보면 예쁘다! 보다는 뱀 나오겠다! 는 생각이 먼저 든다 ^^;


이전 15화 나도 시골이 있었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