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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May 19. 2024

대전 대동...
아름다운 시간은 나눠도 아름답다.

열한 번째 작은 세상

"야! 얘들아!!! 이리 나와봐!!!! 내가 끝내주는 것을 발견했어!!!!!!"

녀석은 호들갑과 함께 우리를 하숙집의 맨 꼭대기로 안내했다.

그리고 다시 옥탑방 위로 보란 듯이 올라갔다.


"야~!! 봐봐!!! 끝내주지??!!!!!"


녀석의 호들갑은 허풍이 아니었다.

우리의 왼편으로 해가 지고 있었고, 하늘은 붉게 물들고 있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움에 가슴까지 설레었다.




그렇게 녀석의 호들갑이 있고 며칠 뒤

스무 살,

어느 실바람이 불던 가을날 저녁 무렵, 나는 옥탑방에 누워있었다.

버스와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 사람들이 대화하는 소리, 모두 다 한 움큼씩은 멀리 떨어져 들릴 정도로 세상과의 귀를 닫고 있었다.


해는 이제 막 넘어가기 시작했고, 담배는 넉넉했으며(그 당시 나는 해비스모커였다.), CD플레이어의 배터리도 충분했다(그 시절에는 워크맨과 CD플레이어가 최신이었다.) 그리고는 넘어가는 해를 보며 담배를 피워댔다. 내게 그렇게 해넘이는 서울 노량진동의 어느 옥탑방에서 각인되었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른다.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한다는 알면서도 그것을 쉬이 할 수 없다는 것 혹은 그것이 나와 가까이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조금만 알아봐도 그날의 분위기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곳이 내가 사는 곳 근처에도 있었음에도 나는 그것을 쉬이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5년이 가고 10년이 넘어서고, 다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아주 다른 곳이지만 때로는 비슷한 영감을 주는 곳이 있다는 진실을. 나는 그 진실을 늦게서야 알아버렸다. 그리고 그 진실은 나만 모른 채로 살아가고 있었고, 의외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서야 알아버렸다.


그 진실을 알게 된 다음, 나는 그 영감을 많이 느끼려 노력했다. 친구와도 갔고, 혼자서도 갔다. 처음에는 혼자 가는 것이 낯설어 여럿이 갔지만 나중에는 혼자서 가는 것이 더 편하고 그 시간이 소중해졌다. 분명 좋은 것을 함께 해서 그 정도가 덜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한 때는 혼자가 편했다.




대전 대동으로 올라가 보자. 올라가는 길은 몇 갈래 길이지만 가장 쉬이 올라갈 수 있는 곳은 "한밭여자중학교" 표지판 골목으로 접어들어 올라가는 곳이다. 가려고 하는 곳까지 차로 충분히 올라갈 수 있지만 한 걸음씩 걸어 올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왜냐면 이곳에는 잔잔한 삶의 향기가 고여있기 때문이다.



해가 지기 조금 넉넉하게 여유를 두고 골목에 들어서야 예쁜 그림자들을 만날 수 있다. 도심이나 아파트단지에서 볼 수 있는 빛과 그림자와는 다른 빛과 그림자이다. 이들을 만나고 싶어서 이곳에 오고 싶을 때도 있다.

아름다운 것들은 홀로 존재하지 않고 대부분 함께 모여있을 때가 많다는 알게 되는 것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빛과 그림자는 이제 아름다움을 뽐내기 시작한다. 도심의 아름다움과 다르 그 모습들을.



이렇게 빨래를 널어놓은 것을 보는 것도 큰 풍경이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모습이 정겹다. 도심에서는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이런 모습이 보인다는 것은 도심 한 복판보다는 이웃들의 눈치를 서로서로 덜 보며 살아간다는 말도 된다.

 


인생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연속이라고 누가 말한다. 만약, 오르막길이라면 그 끝에서는 멋진 풍경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바로 내가 잠시 뒤에 볼 아름다운 장면처럼 말이다.





나처럼 이 쪽, 저 쪽에서 올라왔던 사람들이 한 군데로 모여든다. 이제는 잠시 혼미해질 시간이다. 한 때 옥탑방 꼭대기에서 멍하니 노래를 들으며 바라봤던 장면의 끝에 느꼈던 감정들을 다시금 느끼는 시간이다.


나 외의 다른 사라들도 같은 느낌일까. 어쩌면 같은 느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면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말은 없어지고 같은 방향을 보고 서있다. 


우리는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 아름다운 시간이다. 그 시간이 타인들과 공유된다고 해서 그 아름다움이 덜한다거나 줄어드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 시간을 배로 만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 혼자가 아닌 같은 곳을 바라봤던 소녀와 그렇게 한 장면에 대한 감정은 두 배가 되고 다시 네 배가 되는 그렇게 여러 배가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나의 스무 살, 어느 가을날 나는 해 질 녘의 아름다움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 시간에 빠져 그 시간을 온전히 내 안으로 다시 끌어들여보고 싶지만 만날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 시간을 공유할수록 그 아름다움은 내 것만이 아닌 여러 사람의 몫으로 나뉘는 것 같았다.


이제는 스무 살에서 배가 되어버린 나이. 아름다움은 나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과 함께 할수록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간다. 그것이 아름다움이 주는 자유이고 선물이 아닐까 한다. 어쩌면  또 가까운 날, 아름다움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속으로 걸어가 봐야겠다.


2024-05-19


글, 그림 고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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