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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이#10 나와의 약속

캘린더에 적힌 나와의 약속

by Linda


#규율 (Disziplin) 규칙(Regelungen)


이 두가지는 독일 사람들에게는 생활방식, 습관과 같은 것들로 인식되어 있다.

이는 사회에서 뿐만이 아니라 개인생활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며, 누가 보지 않아도 본인이 스스로 정한 규칙대로 삶을 살아간다.


한 번은 직장동료가 주말에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했고 몇몇 사람들을 초대했다. 나에게 같은 부서의 독일인 직장동료의 참석여부도 물어봐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았다.

나: 주말에 옆팀 사람 ㅇㅇㅇ하고 같이 저녁 먹을 건데 시간 되시나요?

독일직원: 음.. 잠시만요 일정 좀 확인할게요. 3시에 운동하고 피아노 연습하고 6시에 책 좀 읽고, 한국어도 공부해야 해요. 그러고 나면 8시쯤 시간이 있네요. 아쉽지만 너무 늦어서 안될 것 같아요.

나: 아 그래요? 오늘 중요한 사람들도 오던데, 같이 가시면 좋을 것 같아요.

독일직원: 항상 주말마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정해져 있어서 바꾸기가 어렵네요. 나와의 약속이거든요.

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독일 사람들의 알고보면 ‘친절한’ 개인주의


사실 그냥 그 저녁약속이 가기 싫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그분의 성향 상 싫으면 싫다고 매우 솔직히 말하는 사람이고, '아쉽지만'이라고 했다.

독일 사람들은 계획을 짤때도 사뭇 진지하다. 정말로 실행에 옮길 예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와의 약속이라는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To do list 같은 것을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니 나와의 선약을 지키기 위해 갑자기 생긴 약속들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 것이다.

나였다면 ‘혼자 하는’ 독서와 한국어 공부를 내가 원하지 않는 일정으로 바꾸며 나를 희생시켰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일로 거절하는 독일 사람들의 태도가 사회적이지 못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나를 위해 시간을 먼저 내어 주므로 나 자신을 잘 대해주고 내 할 일을 해 나감으로써 내 생활을 먼저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과의 다음번 약속에도 기꺼이 나가서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마치 중간고사를 앞두고 찝찝한 마음으로 계속 놀러만 다니다 처참한 결과를 받고 좌절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평소에 내 탓을 잘하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기꺼이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편의를 보고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며 만족감을 느낀다. 이런 나의 태도를 친절이라고 봐주며 긍정적으로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면년전부터는 거절하는 연습을 해 왔다. 나 자신을 좀 더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20대에 내 다이어리를 빼곡히 채웠던 To do list는 모두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고 그 약속을 지키며 내 자존감이 단단히 쌓여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스스로와의 약속을 미루기만 했다. 이런저런 사건들로 마음이 힘들어지고 내 다이어리도 텅 비어 있었다. 그냥 되는 대로 살다가 큰 실수도 했다.

이제는 나와의 약속을 먼저 지켜나갈 것이다. 비행기에서 내 산소마스크를 먼저 쓰고 옆사람을 도와주 듯이.


늘의 야기 끝..!



Ich habe schon Pläne.
[이히 하베 숀 플레네]
나 할 일이 있어.

ich 나는
habe 가지다 haben 동사의 변형
schon 이미, 벌써
Pläne 계획 der Plan의 복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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