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묘일기
한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단어에 짓눌려 '망설임' 속을 부유하던 제게 "까짓 거 키워 보자."라는 남편의 말이 제게 '결단'을 할 용기를 주었어요.
"구경 한 번"이 아니었다면 늘 '실천력' 부족인 저는 남의 고양이 사진만 주야장천 보고 있었을 거예요.
20년 11월 7일 "쏨"이가 똥꼬 발랄하게 첫 발을 우리 집에 디뎠습니다. 드디어 그동안 상상만 하며 육묘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죠.
조그마한 하얀 덩어리가 움직이는 게 어쩜 이리 예쁠까요?
그런데 혹시라도 펫샵에서 안 좋은 균이 묻어왔을까 하는 마음에 '샤워'를 시켜야 한다는 마음이 조급하게 일었어요. 지금이라면 고양이에게 샤워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고 털을 잘 말려주지 못할 바에야 자주 안 시키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당시엔 한 달에 1번은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쏨이는 귀 진드기를 알았던 적이 있다고 하니 더 위생에 신경 써줘야 할 것 같았죠.
목욕용품도 없고 첫날이라 낯설 텐데 스트레스를 받을까 싶어 냥이용 샤워젤을 구비하고 이틀 후에 목욕을 시켜줬습니다.
뽀송뽀송 우리 쏨이
놀라서 튀어나올 것 같은 눈망울
"저한테 왜 이러세요?"
하고 따져 묻는 것 같네요.
그런데 울 아가에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주댕이에 털이 빠져요...
제 무릎 위에 앉은 쏨입니다.
이때는 무려 "무릎냥"이었어요!!!
냥집사들 사이에선 무릎에 올라와 앉는 냥이를 '무릎냥'이라 표현해요.
귀여운 냥젤리에 밟히는 것도 너무 행복하고 다리에 쥐가 나더라도 냥이를 위해 무릎을 가만히 내어주는 것이 냐옹이를 위한 마음이죠.
제 위에 올라타주고 무릎에 올라와서 잠도 자주는 '다정다감 아가냥'이었는데 현재는 '까칠쏨'이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냥춘기'가 정말 있는 것 같아요.
여하튼 귀여운 냥주댕이에 털이 옅어지더니 분홍분홍한 피부가 드러났어요. 피부병일까 싶어 열심히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딱히 어떤 병이라고 하긴 어렵고 입 주변이라 약을 발라주기도 어려웠어요. 영양부족이어도 부분 털 빠짐이 있고 스트레스나 알레르기일 수도 있었어요. 곰팡이성 피부염이라고 하기엔 딱히 피부에 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아 조금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그 후 예방 접종을 위해 동물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 선생님이 별다른 얘기는 없으셨어요. 별거 아니라는 듯한 반응이셨습니다. (동물병원 이야기도 하려면 밤을 새야 할 정도로 마음에 꼭 맞는 병원 찾기는 사막에 바늘 찾기 같더라고요.)
첫 육묘를 하다 보니 어려운 것은 '사료 선택'이었어요.
처음 펫샵과 병원에서 추천해 준 사료는 '로얄캐닌'이었는데 저는 이게 꽤 고급사료라고 생각했어요. 사료에 대한 지식이 전무해 로얄캐닌이 외국사료면서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고양이카페에서 정보를 얻고 사료 성분을 보게 되니 로얄캐닌은 그저 보급품 정도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좀 더 좋은 사료로 바꿔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카페에서 사료 추천글을 찾아보고 직접 검색해 보는 등의 과정의 거치면서 '금사료'라 불리는 것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사료가 몇 킬로 안 되는데 십만 원이 훌쩍 넘더군요.
금사료는 너무 부담스럽고 성분 좋은 가성비 사료라 생각되는 걸 찾아 주문했습니다. (당시 '오리젠'과 '생식본능'-오리젠 오리지널의 성분이 현재 바뀌었고 가디언8은 구하기가 힘들어 현재는 '생본 얼티밋 프로틴 치킨'을 먹이고 있어요.)
다행히 털이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는데 눈곱이 조금 많이 끼더라고요.
육묘를 해보며 알게 된 또 다른 점은 6개월이 되기 전에는 털이 거의 안 빠진 다는 점이에요.
고양이 털이 없는 곳이 없다는 이야기에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었는데 아기고양이는 털 빠짐이 거의 없었어요.
'아! 쏨이는 예외로 주댕이 털이 빠졌지만..... 사방팔방 날리는 털갈이 같은 게 없습니다!'
이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예요.
영롱하고 따스하고 보드라우면서도 귀엽고 사랑스럽죠~
(고양이 시)
그저 빛
살짝만 보아도 귀엽다
잠시 스쳐보아도 귀엽다
네가 그렇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나태주'의 시를 응용하여지었습니다.
나태주 시인처럼 어렵고 복잡하지 않은 언어로 감동을 주는 시를 쓰는 따듯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늘 생각합니다.
주댕이 털이 많이 회복되었죠?
늠름한 앞다리로 지탱하고 서 있는 폼이 마치 '정글의 제왕'같아요.
우리 집의 제왕 '쏨'이 이대로 제왕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