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캠핑하는 것 같아서요
캠핑을 좋아했다. 처음 캠핑에 눈을 뜬 것은 2010년대 초반 록페스티벌을 다니면서였다(계기가 좀 이상한 것 같지만). 록 음악을 좋아하는 나는 2006년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이 트라이포트의 명맥을 이어 열린다는 사실에 너무 기뻤고(트라이포트 때 너무 어려서 가보지 못했다), 당시 사귄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친구(현 남편)을 끌고 펜타포트에 갔다. 물론 남편도 록 음악을 좋아한다. 나는 브릿팝을 좋아했고 남편은 메탈을 좋아했다는 아주 큰 차이가 있지만, 아무튼 대충 말이라도 통하는 게 다행이었다. 애플뮤직도 유튜브뮤직도 없던 때였다. 한국대중가요 이외의 음악에 관심을 가지려면 수고스러운 노력이 필요한 시절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매년 록페스티벌에 가고, 음악 페스티벌 붐이 일면서 우후죽순 전국에 많은 음악 페스티벌이 생겼다. 록페스티벌 붐에 맞춰 지산 리조트에서도 록페스티벌이 열렸다. ‘속세와 떨어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대한민국의 후지 록페스티벌’이 콘셉트로, 행사장에서 좀 걸어가면 식당과 모텔이 즐비했던 펜타포트나 시내버스 타고도 갈 수 있는 서울 시내의 올림픽공원과는 이미 분위기가 달랐다. 게다가 라인업도 알찼다. 나는 꼭 여기를 가야만 했다.
문제는 숙박이 열악하다는 것이었는데, 리조트 내 숙박시설은 비싸고 예약이 힘들었고, 근처 펜션 역시 예약이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지산 록페스티벌에서는 캠핑 패키지를 팔았다. 텐트 대여도 해줬는데 ‘앞으로 락페 가면 계속 쓸건데 뭘!’ 하면서 배짱 좋게 인터넷으로 반자동 텐트를 구매했다. 지금처럼 캠핑 인구도 많지 않았고 캠핑용품에 대한 정보도 별로 없었던 때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즐거웠다. 무덥고 비도 내렸지만 정말로 즐거웠다. 내 인생의 페이지를 색깔로 칠한다면 열심히 캠핑을 하며 락페를 했던 이십대 중후반은 총천연색으로 화려하게 색칠할 것이다.
맥주를 물처럼 사마셨고 종아리 가득 물에 젖은 잔디를 붙이고서도 깔깔 거렸다. 버려진 종이박스를 주워 축축한 잔디밭 위에 펼치고 앉아 라이브를 보았고 갑자기 쏟아진 비에 주워입은 우비에서 담배 냄새가 나도 아무렇지 않았다.
텐트는 제법 쾌적했다. 유스호스텔을 전전하며 홋카이도 일주를 했던 나는 그저 누군가 사용하지 않은 자리에 눕는 것만 해도 기분이 좋았고, 캠핑장 근처에 마련된 공용 샤워장에서 차디찬 냉수로 샤워를 하는 것도 나름 추억이었다. 무엇보다 텐트 밖으로 몇 발자국만 나가면 축제를 즐길 수 있었다. 록페스티벌에서 캠핑을 한다는 것은, 축제의 장에서 사흘 동안 먹고 자는 것, 록페스티벌을 온전히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그렇게 록페스티벌에서 캠핑을 즐기다가 점차 ‘꼭 락페가 아니더라도 캠핑을 하고 싶다’는 갈망이 생겨 캠핑을 시작했다. 처음 샀던 반자동 텐트는 산지 두 해만에 버렸다. 대신 지산 록페스티벌에서 대여용 텐트로 쓰던 원터치 팝업 텐트를 샀다(지금 생각해보니 그 많은 텐트를 치려면 팝업 텐트 외에는 답이 없었을 것 같다). 접어도 거대한 크기였지만 괜찮았다. 당시 우리는 아이가 없는 젊은 부부, 오로지 둘 뿐이었으니까.
제법 캠핑을 많이 다녔다. 강릉에 잠깐 살던 시절엔 날씨만 좋으면 거의 매주 캠핑을 나갔다. 서울에 다시 돌아와서도 날씨가 좋은 계절이면 교외 캠핑장을 예약해 떠나곤 했다. 영화 <곡성>을 보고 난 다음 떠난 캠핑에선 한적한 위치 탓에 밤새 텐트 밖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에(지금도 미스터리다) 잠을 설치긴 했지만, 대부분은 즐거운 캠핑이었다.
강릉으로 완전히 이주를 하면서 생각했다.
멋진 캠핑장이 주변에 많으니까 더 자주 가야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일은 당연히(!) 일어나지 않았다.
강릉으로 이주를 하고 단 한 번도 캠핑을 가지 않았다. 현관 앞에 쌓아둔 텐트와 캠핑도구는 단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다. 주위에는 캠핑 붐이 불었지만 내 안의 불씨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먹고 마시고 밖에 없는 캠핑의 일상에 지루함을 느낀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미 자연 속에서 살고 있기에 굳이 자연을 찾아 떠나지 않게 된 것이 큰 이유였다.
서늘한 초여름 아침, 베란다 창문을 열면 캠핑 냄새가 났다. 푸른 이파리의 신선한 초록 내음과 젖은 흙의 알싸한 냄새가 기분 좋았다. 밤에는 여름을 알리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렸다. 개굴개굴 소리를 듣고 있으면 바스락거리는 침낭과 낮은 텐트 천장과 비일상의 설렘이 떠올랐다.
그랬다. 이유는 하나였다. 비일상이 일상이 된 것.
물론 동네에서 벗어나 수풀 우거진 산속이나 해변에서 캠핑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데서 놀고 나면 항상 안락한 집이 떠올랐다. 쾌적하게 씻고 편안한 침대에 누워 청하는 잠. 서울에선 2-3시간 걸려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여기서 귀가란 1시간 이내면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텐트를 치고 걷는 일도 귀찮았다. 우중 캠핑은 낭만이라지만 낭만은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타프 아래서 술이나 한 잔 할 때 뿐이었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면 말려야 하는 산더미 같은 물건들을 대충 말리고 집에 돌아와 다시 옥상 같은 곳에 펴서 바짝 말려야 했다. 캠핑의 로망 중 하나는 ‘커피 향기와 맞이하는 여유로운 아침’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여유를 즐기려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해야 했으니 아침잠이 많은 나에게는 사치나 다름 없었다.
이런저런 핑계로 캠핑을 다니고 있지 않지만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경험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글램핑을 몇 번 갔다. 한창 마이 텐트를 들고 캠핑을 다닐 땐 글램핑 같은 거 뭐하러 가나 생각했었는데, 에어컨과 히터가 설치된 드넓은 텐트에 철수의 귀찮음까지 차단한 글램핑은 쌍둥이 육아 찌든 우리에겐 천국 같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글램핑에 눈을 뜨긴 했는데… 주말마다 일도 하고 여기저기 쏘다니다 보니 글램핑 역시 1년에 많아야 두어 번 가고 있다.
어쨌든 강릉에 살아보니 자연과 가까이 지낼 수 있어 참으로 좋다…는 걸 이 글을 쓰며 깨달았다. 참으로 감사하네요, 네. 절대로 비꼬는 게 아닙니다. 정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