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06: 생존본능
시곗바늘은 4시 38분에 멈춰 딸각일 뿐 나아가지 못한다.
늘 같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통증에 정신을 차려보니, 주홍빛 가로등 하나가 올려다 보인다.
한 손은 비 젖은 아스팔트 바닥의 웅덩이에, 다른 한 손은 길에 흉하게 쓸려, 할퀴어진 자국 사이로 피가 고였다 흘러내기를 반복한다. 오른 팔꿈치 아래로는 감각이 없고, 저 멀리 찰박이는 발걸음 소리보다 선명한 건 헐떡이며 피를 토해내는 내 심장의 고동 소리. 그 고동에 맞춰 얼굴도 손도 모두 비릿하게 축축해져 간다. 서늘한 밤공기에 식었다 또 - 이번에는 더 천천히 - 축축해진다.
도망쳐야 한다. 도망쳐야 한다.
몸을 굴려 그나마 성한 왼팔로 일어선 후 다시. 또다시. 이가 바스러질 듯 다리에 힘을 주지만, 풀려 버린다. 발걸음 소리와, 굳게 닫힌 입 사이로 흘러나오는 흐느낌의 신음 소리가 심장의 고동을 집어삼킨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붉은 흰자위 사이로 검은 눈동자가 웃는다. 가죽 장갑을 물어대도 눈동자는 웃고, 복면은 소리 없는 광소에 꿈틀거린다.
옆구리가 시큰하다 따뜻해진다. 시리도록 따듯하다. 축축한 따스함이 길바닥을 적신다.
가로등 불빛이 새빨갛다. 정말 새빨갛다. 아니 사실 검은 것 같다. 마치 칠흑 같이.
그리고 암전
땀에 흠뻑 젖은 채로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니 시계는 4시 38분, 폭스바겐 비틀에서 복면을 쓴 남자가 내렸던 그 언저리를 가리키고, 뜬 눈으로 핏빛 밤을 지새운다.
어제도 그제도 엊그제도.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새벽 4시 38분, 타입 원 폭스바겐 비틀 한 대가 도로 복판에 멈춰 서고, 가방 멘 남자 하나가 차에서 내린다.
자기도, 일어나기도 두려운 시간들이 그렇게 흘러간다.
간신히 버텨내던 나는 흐름을 짚어낼 수도 없는 무수한 시간 선들 사이에서 무너졌다.
핏빛 악몽은 다시금 나를 찾아온다. 밤이면 밤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