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환상향

만근이

만근이의 한끼는 백 근 / 2024

by 김경

(소설 창작 동아리에서 썼던 글인데 제목 변경해서 올립니다. 현실적인 느낌을 살린다고 욕설이 좀 나와요)




곰한테 찢긴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조선시대에 역적들에게 행했다는 거열형도 사뭇 젠틀하게 말들에 묶어 집행할 터인데, 나는 오랑캐 사형수만도 못하게 곰의 맨발에 갈가리 찢길 일을 걱정하고만 있었다. 안방 안에서 쿠슈슉 쿠슈슉 코를 고는 거대한 곰. 나는 곰과 함께 산다.

그건 주거시설의 혁명이었다. 극단적인 동물애호가 ‘A.W.H(Animal With Human) C&D’ 창업주의 지시로, 지정된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조건 하에 주거시설을 제공해주는 것. 직업도, 기존 거주지도, 나이도, 그 무엇도 상관 없었다. 그 동물의 비위를 잘 맞춰주고 잘 보살펴서 죽게만 하지 않는다면. 거기서 중요한 건 함께 사는 인간의 생사가 아니었다. 인간과 함께 사는 동물의 생사와 복지였다.

집이 신축이냐, 구축이냐, 수도권이냐, 지방이냐, 고층이냐, 저층이냐, 대형이냐, 소형이냐에 따라 동물의 종이 달라졌다. 지방, 구축, 저층, 소형아파트라면 귀여운 강아지와 사는 것도 꿈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처럼, 수도권 신축에 고층 대형아파트를 선택한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녀석의 이름은 만근이입니다.’

‘만근이요?’

‘네, 만근. 이름도 만근, 무게도 만 근. 종은 시베리아 불곰이구요.’

‘장난해요? 곰? 만근? 저보고 죽으라는 건가요?’


내가 저렇게 짜증 섞인 질문을 던졌을 때 내게 향하던 A.W.H 직원의 눈초리를 잊지 못한다. 그의 얄쌍한 안경 너머로 흉흉한 안광이 번뜩였다.


‘그 정도 각오도 없이, 그 정도 예산으로 저런 집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셨나요, 고객님?’


하, X발.


<하, X발, 아... 기훈이형!> 오징어 게임에서 응축된 답답함을 토해내던 상우가 기훈이형에게 욕을 하던 장면, ‘오오, 쩌는데’ 하면서 손을 뻗던 피자 옆으로 툭 하고 떨어진 바퀴벌레. 어젯밤의 내 허름한 원룸 풍경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꽈광. 더는 그곳에 매몰되긴 싫었다. 거기에 있다간 벌레가 내 피부에 알을 낳을지도 몰랐다. 그래, 어차피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후... 알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 만근이라는 곰이 특이체질이라는 점이었다. 동면이 아니어도, 녀석은 거의 한 달 내내 잠을 잔다고 했다. 그러니 잠을 방해하지만 말라고, 그리고 혹시나 한달에 한 번 정도 잠에서 깨어나면 먹을 것을 충분히 주라고. 안 그러면 당신이 죽거나, 집을 뺏기게 될 거라고. 직원은 의미심장한 미소로 상담을 마무리했다.

이사는 태풍에 날아간 오즈의 마법사 집 마냥 휩쓸려서 이뤄졌고, 이사 후엔 난 아침마다 영혼을 모아 기도했다. 오늘은 무사하기를, 제발 저 곰이 자다가 콱 숨이 막혀 죽어버리길. 자연사로 죽는다면 내 잘못이 아니니 집을 뺏어가진 않지 않을까. 내 짐을 넣기도 전에 이미 안방을 차지하고 있었던 곰을 아직까지도 제대로 마주한 적은 없지만, 그래서 반쪽짜리 집이라고 해야 하지만, 안방을 제외하고서라도 갓 지어진 고층 한강뷰 아파트의 창밖은 영혼을 모아 기도하는 아침마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렇게 조마조마한 하루가 얼마나 지나갔을까, 오늘 아침에 출근하려는데 안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늘상 듣던 쿠슈슉 소리가 아니었다. 킁, 킁킁. 컥컥.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는 소리였다. 쿵. 심장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올라왔고, 고양이처럼 소리를 죽이고 네발로 기다시피 현관문을 나섰다. 아, 난 이제 죽는구나. 아, 그것도 하필이면 월급날에.


『야 퇴근하고 술이나 먹자』

『올ㅋ 쏘냐?ㅋㅋ』

『그래 월급날이고, 인생 마지막인데 못쏠 건 또 뭐냐』

『뭔 인생 마지막이여ㅋㅋㅋ 앞으로는 안쏠거?ㅋㅋ 여튼 ㄱㄱ』


그날은 술이 참 달고도 달았다. 인생 마지막 술이라니, 제갈량과 함께 천하통일을 꿈꾸던 내가 한낯 술에 버무려진 육회가 되어 생을 마감하다니. 그날은 친구와 혀가 꼬일 때까지 술을 마셨다. 도저히 맨 정신에 불곰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야 이 새키야, 니가 곰에 찢기는 기분을 알어? 곰 발톱이 몇 센치인줄 알어? 스쳐도 인마 사망이야!”

“넌 아냐 X신아. 어디서 유행 지난 베어그릴스 같은 정글 생존기 보고 와서 헛소리질이여. 술이나 처먹어.”

“하, 진짜... 내가 말을 말지. 인마, 나 없다고 어디 가서 울지 말고. 어?”


A.W.H에 관한 모든 사항은 극도의 비밀유지조항을 달고 있었다. 그 비밀유지조항을 어길 경우 집값의 몇 배나 되는 위약금을 물어야 했다. 덕분에 내 주변 모두는 내가 그저 열심히 돈을 모아서 좋은 집에 이사한 줄로만 알고 있었다. 아닌데, 전혀 아닌데.


“야, 문자왔다. 이 시간에 뭐냐. 새로운 썸녀냐.”

“그런 게 있을 리가...”


문자에 찍힌 번호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 고객님. 그때 알려드렸다시피 고객님과 함께 거주하는 곰의 경우 체중의 1% 정도를 한번에 섭취해야만 하니, 60kg 정도의 어류 혹은 육류를 준비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월면이 끝나갈 시점이라 확인 차 연락드립니다. -A.W.H C&D ]


걍 나를 잡아먹으면 깔끔하것네!


어떻게 걸어왔는지도 모르게 동네에 도착했다. 시간은 9시가 되어가고 동네 가게들은 슬슬 문을 닫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걷는 내 머릿속엔 몇 가지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죽음. 고기. 60kg. 불곰. 만근이.

시뻘건 불빛이 보인다. 벌써 저승인가. 드르륵. 어이쿠야, 문이 열리는 저승이군.


“손님, 괜찮으세요? 저희 마감시긴이긴 한데... 뭐, 뭐 드릴까요?”

“어어... 삼겹살 한 근에 얼마에요?”

“만 삼천원입니다.”

“그럼 만의 백분의 일... 백 근에 얼마에요?”

“하하, 곱하기 백 하면 백 삼십만원이죠?”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부들부들 떨렸다. 한 달에 한 번 처먹는데 곰이라서 백 근이라고? 60키로라고? 월급이 300인데 130이라고? 장난하나 진짜.


“아오 쓔발! 진짜, 존나 비싸네! 거 주세요오! 백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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