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윗라임 Aug 20. 2023

참지 않아도 돼,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보는 거야

나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들에게 / Piggybook

'오늘 하루 어땠나요? 괜찮았나요?'


엄마 혹은 아빠살고 있는 이 순간, 혹시 당신의 수고로움을 잊은 가족들 때문에 힘든 순간이 있었나요?


여기, 오늘도 당연한 듯 모든 걸 요구하는 철부지 두 아들과 막말하는 남편 때문에 박차고 집을 나가버린 한 여인이 있습니다. 과연 집에 남겨진 가족들은 금세 잘못을 뉘우칠 수 있을까요? 엄마는 언제쯤 집으로 돌아올까요?


오늘은 당연한 듯 나의 고마움을 잊은 가족들에게 시원하게 던져주고 훨훨 떠나버리고 싶은 책, Piggy book을 소개합니다.




제목 Title - Piggybook

저자 Author - Anthony Browne

출판사 Publisher - Dragonfly books

출판 연도 Year of Publication 1986

*한국어 번안책 : 돼지책(출판사:웅진주니어)


그저 해맑은 남편과 두 아들을 업고 있는 '엄마'의 무기력한 표정에 먼저 눈이 가는 책. 사랑스러운 핑크빛 표지의 분위기와는 다소 상반되어 보이는 제목이 크게 박혀있어 더욱 궁금해지는 책. Piggybook을 소개합니다.


이 책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영국 그림책 작가 Anthony Browne이 1986년도에 출간한 작품인데요.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인 만큼 몽글몽글 귀여운 삽화와 운율이 살아나는 간결한 글도 인상 깊지만, 작가가 책 여기저기 숨겨 놓은 메시지들을 찾는 재미가 있는 책이랍니다.


아이들을 위한 책이긴 하지만 꿈과 희망의 환상의 세계만을 담고 있는 책은 아니에요.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며 글과 그림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 책에는 1980년대 당시 서구에서 이슈가 되었던 남녀평등과 성역할 차별 금지에 대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겨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여성의 사회활동은 증가했지만, 집안일은 여전히 도맡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성평등 이슈가 제기되고 있는 시점이었어요.) 생각만 해도 무겁고 어려운 주제를 이토록 사랑스럽고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니, 정말 놀라운 작가입니다.


단순히, 평면적으로 글자를 읽고 그림을 보고 지나치게 되면 놓치게 되는 이 책의 재미요소들 몇 가지 소개해 볼게요.



표지에 숨겨져 있는 비밀

안타깝게도 한국 사람이 우리들은 책의 영문 제목인 Piggy Book과 표지 삽화의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이 책은 표지부터가 위트 넘치는 책인데 말이죠.


영어에서 'Piggyback'은 우리나라 말로 '어부바'라는 뜻이에요. 삽화에서 엄마가 가족들을 등에 업고 있는 것이 보이시죠? 이걸 바로 Piggyback이라 하는데요. 이 책의 제목인 Piggy book과 발음이 유사해 책장을 펼치기 전부터 '아하!' 하며 피식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줘요. 표지부터 재미있는 책이라니! 아이들은 어서 빨리 책장을 넘기고 싶어 안달이 날 거예요.


단어와 표현들 사이에서 숨겨 놓은 메시지들 

책에서 아들들은 very important school에서 하교를 하고, 아빠는 very important job을 마치고 퇴근을 합니다. 엄마도 일을 하지만 엄마의 일엔 어떤 형용사도 허용되지 않아요. 그저 she went to work라고만 표현됩니다.


엄마에 대한 존중도 점점 희미해지고 희생은 당연해집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아빠가 엄마를 부르는 호칭이 Dear에서 Old Girl로 바뀌는 순간 우리는 알게 되죠. 남편이 아내를, 아이들이 엄마를 전혀 존중하고 있지 않다는 걸요.

작은 프레임에 갇혀 표정 없이 그려지는 엄마

이목구비 하나하나 또렷하게 그려 낸 남성들과는 달리 엄마의 표정은 전혀 보이지가 않아요. 우람하게 한 페이지를 가득 매운 아들과 남편과는 달리 엄마의 수많은 일들은 페이지를 쪼개고 쪼개어 작게 표현되고 있어요.

진짜 '돼지'가 되어버린 남자들

이렇게 세세하게 찾아내어 깊이 생각할만한 문제들을 찾는 것도 재미있지만요. 역시 그림책의 백미는 비유와 상징 아니겠어요? 누가 봐도 보자마자 바로 이해할 수 있게 작가는 거만하고 게으른 남자들을 '돼지'로 바꿔버립니다.

정말 통쾌하지 않나요? 마치 슈퍼히어로가 나쁜 악당에게 정의의 칼을 휘두른 것처럼 단칼에 '꿀꿀이'로 만들어 버립니다. 남자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엄마의 메시지(You are pigs)는 직설적으로 그들의 태만함과 불합리함에 일격을 가해 독자들에게 '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합니다.    

'돼지를 집에 버려둔 채 떠난 엄마는 과연 다시 돌아올까요?'

'여느 동화처럼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Happily ever after'로 끝맺음을 하게 될까요?'


아직 동화책을 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 더 이상의 스토리는 노출하지 않을게요.(궁금하시죠?)

처음 아이와 함께 책을 읽을 때는 그림의 도움을 받아 책의 줄거리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게 될 거예요. 두 번째로 다시 책을 마주했을 때는 그림 속 귀엽고 사랑스러운 변화들을 (예를 들면 어디에나 숨어있는 돼지의 얼굴들 같은 것들) 찾아볼 수도 있겠죠?! 아이가 또다시 책을 들고 엄마에게도 온다면 이번엔 엄마가 발견한 글과 단어에 숨어있는 의미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질문하는 시간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마치 보물찾기 하듯요. 혹시 아나요? 아이의 눈으로 어른들은 보지 못하는 또 다른 무언가를 찾아낼지도 모르잖아요.


아이들은 본인이 좋아하는 동화책을 읽고 또 읽고 또다시 엄마에게 읽어달라 하잖아요. 좋은 동화책은 자꾸자꾸 읽어도 새롭게 보이는 것들, 새로운 질문거리들, 나눌 이야기들을 주는 책인 것 같아요.


사랑스러운 그림과 그에 못지않은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Anthony Browne의 책 Piggy Book이었습니다.


▼해당 에세이는 팟캐스트에서 오디오북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788857?e=24804100


이전 05화 우리는 모두 핑-퐁하며 살아가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