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명한 A와 B가 대놓고 만났데'
연말 연초 디스패치를 장식하는 유명인들의 열애설 만큼 눈길을 자극하는 게 또 있을까요?
그토록 유명한 그와 또 다른 이가 만났다니 , 그 둘은 이미 그 자체로도 빛이나서 일거수일투족에 플래시가 터지는 스타들인데 말이죠. 각기 다른 슈퍼스타들의 만남이라니! 궁금해서 안달이 나지 않을 수 없는 정도로 그 둘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자극합니다.
도대체 누구의 이야기냐고요? 사실 유명 셀럽들의 연애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에요. 오늘은 그보다 더 유명하고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세계적인 명화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두 사람이 만나 피워내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나 만나볼 수 있지만, 명화들이 서로 만났다니! 조금 생소하시죠? 하지만 그렇기에 더 특별해진 명화들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랬던 것 같아요. 어디서 많이 보긴 했는데... 정확이 어떤 그림인지는 모르겠고... 관심이 가긴 하는데... 명화에 대해 알아보는 건 선뜻 시작하기 어려웠어요. 딱딱한 강의실에 앉아 어려운 미술사를 공부해야만 할 것 같았거든요. 당신도 그랬나요?
그러던 어느 날 어렵고 복잡해 보였던 명화들이 겁에 질려 굳게 닫혀있던 제 마음의 문을 똑똑 두드렸습니다. 피식 나오는 웃음에 맘속 빗장이 활짝 열리고 그간 멀게만 느껴졌던 명화들이 내 안으로 훅 들어왔어요.
하나만으로도 오롯이 아름다운 그 유명한 작품들이 제 눈앞에 나타났거든요. 둘씩 꼭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엔 그 둘이 만나 피워낸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고요. 그건 바로 이 책을 펼치면서 시작됐어요. 어렵기만 했던 명화들을 흐뭇한 마음으로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책 'Unlikely Pairs'를 소개합니다. 저만 알기엔 너무 아까우니까요. 같이 봐요, 우리.
제목 Title - Unlikely Pairs
부제 Sub Title - Fun with famous works of art
저자 Author - Bob Raczka
출판사 Publisher - Millbrook Press
아이들을 위해 수많은 책을 펴낸 작가이자 광고 제작자로 활동 중인 '밥 라즈카'. 그는 언뜻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 있는 '명화'에 즐거움과 재치를 가득 섞어 우리에게 슬며시 내밉니다. 둘씩 짝을 지어 책의 펼침면 양쪽에 나란히 보여줘요. 왼쪽 페이지에 그림 하나, 그리고 오른쪽 페이지에 또 다른 짝궁 그림 하나를요. 하나일 때 보다 둘이 만날 때 더 흥미로워지는 명화,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Unlikely Pairs를 소개합니다.
이십 대 중반에 한창 유행이었던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서 참 좋았지만 동시에 괴로웠던 것이 한 가지 있었어요. 그건 바로 유럽곳곳에서 만나 볼 수 있는 엄청난 거장들의 작품들을 보는 것이었는데요. '분명 유명한 그림인데 나는 왜 아무런 감동이 없지?... 재미도 없는데 여기까지 왔으니 끝까지 보긴 해야겠다...' 대략 이런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명화를 각 잡고 감상하며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란, 참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참 괴로웠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아요. 예술은 주입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풀어내기 나름이라는 것을요. 수능 문제를 풀어내듯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즐기는 마음으로 바라볼 때 의미가 더해지는 작품들이니까요.
어릴 적, 그 대단한 거장의 작품들을 직접 만났을 때, 이 책을 미리 보고 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랬다면 '명화'라는 거대하고 웅장한 단어에 눌려 머리를 싸매는 대신, 좀 더 즐길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지금 다시 이런 작품들을 마주하게 된다면 좀 더 오래 미소 지으면서 나만의 해석들을 덧붙여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술이 주는 즐거움과 위트를 경험한 덕분에요. 이제 그 즐거움을 당신도 느껴보세요. 지금 바로 이 책을 통해서요.
Keith Haring의 Untitled(1988) & Jan Vermeer의 The Guitar Player(1672) 흥겨운 음악에 어찌 몸이 따라 움직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음악과 춤은 시대를 넘어 공간을 초월하는 사랑스러운 예술이죠. 오른쪽 페이지를 보면 1672년에 그려진 The Guitar Player라는 작품이 보입니다. 한 소녀가 악기를 연주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소녀의 음악은 왼편에 자리한 작품 속 사람들을 춤추게 합니다. 왼쪽 작품은 키스 해링의 Untitled라는 작품인데요. 그림이 그려진 시기도 스타일도 모두 다르지만 어찌 이리 찰떡으로 어울릴까요? '흥겨운 음악에 저절로 춤이 나는건 아무리 그림이라도 어쩔 수 없었나 보네'라는 생각에 미소가 절로 지어 집니다.
Jean-Baptiste Simeon-Cardin의 Soap Bubble(1733-34 ) & Vasily Kandinsky의 Several Circles(1926) 모차르트 처럼 우아하고 정갈한 옷을 입은채 머리를 곱게 묶은 청년이 보입니다. 창가에서 비눗방울을 불고 있는 걸까요? 그냥 평범해 보이는 비눗방울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그가 만들어낸 색색의 아름다운 비눗방울에 시선이 가닿습니다. 그의 옅은 숨에서 시작된 비눗방울은 칸딘스키가 원으로 만들어낸 현대 작품으로 이어집니다. 마치 형이 동생을 위해 불어낸 방울들이 바람을 타고 오른쪽으로 날아가고만 있는 것 같아요. 두 작품의 만남, 정말 그럴듯하지 않나요? 마치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던 두 작가가 콜라보를 한 듯 자연습니다.
Emile-Amtoine Bourdelle의 herakles Archer(1909) & Jasper Johns의 Target with Four Faces(1955) 이번에는 활을 쏘고 있는 궁수가 눈에 들어옵니다. 1909년 제작된 이 조각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헤라클레스의 근육을 하나하나 보여줍니다. 그는 불어오는 바람에 민감하게 반응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어요. 그리고 그 화살은 나아가죠. 40년의 세월을 지나 1955년에 그려진 붉은색 배경의 과녁판으로요. 헤라클레스는 명수이니 아마도 과녁판 정중앙에 화살을 꽃게 되겠지요? 이 두 작품 또한 나란히 놓고보니 짝꿍인듯 완벽한 조화를 보여줍니다.
Henri de Toulouse-Lautrec의 Loge with the Gilt Mask(1893) & Edgar Degas의 The Ballet(1872) 이번엔 오페라 하우스로 갑니다. 공연장에는 멋진 드레스와 턱시로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네요. "허허! 아주머니, 아저씨! 공연에 집중하셔야죠!" 앞에서 공연을 펼치는 예술가들이 무색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둘이 있습니다. 왼쪽 페이지에는 1893년에 그려진 귀부인의 모습이, 오른쪽 페이지에는 1872년에 그려진 신사가 등장해요. 마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공연을 보고 있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들에겐 과연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해져요. '이렇게라도 같은 공간에 있고 싶었던 그렇고 그런 사이일까?' 하고요. 어찌보면 높디높은 신분의 귀족 사모님과 맺어질 수 없어 그저 슬픈 가난한 예술가의 이야기가 그려지기도 합니다. 그 스토리가 궁금해져 두 그림을 나란히 놓고 다시 들여다보니,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온도차가 느껴지네요. 남자분의 눈빛이 더 애틋한 것 같아요. 그 간절한 눈빛이 어쩌면 오랜 옛 여인을 잊지 못한 남자의 슬픈 짝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Auguste Rodin의 The Thinker(1879-89) & Paul Klee의 Large Chess Board(1937)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 볼까요? 왼쪽 페이지에는 우리에게 정말 익숙한 작품이 등장합니다. 바로 생각하는 사람, 로뎅이에요. 로뎅 작품 옆에 자리한 오른쪽 페이지에는 체스판을 그린 작품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둘이 나란히 있으니 '아하!'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됩니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이 왜 그토록 심각했는지 알것만 같아요. 이 둘을 함께 바라보고 있자니,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진중한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알파고와 바둑을 두던 이세돌 9단의 대국 장면 말이에요. 이 작품의 배경은 서양이니 바둑 대신 체스가 놓여있을 뿐이지요. 열 수 앞을 내다보며 다음 말을 어디에 놓을지 고민하는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에 조금 더 묵직한 긴장감이 더해지는 듯 합니다. 생각하는 사람과 체스판, 이 둘의 조합. 정말 찰떡이지 않나요? 사상가로 멀게만 느껴졌던 로뎅의 작품이 좀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짝꿍 그림입니다.
Freederic Edwin Church의 Niagara(1857) & George Caleb Bingham의 Fur Traders (1845) 이번엔 자연으로 가봅니다. 펼친면 오른 쪽에는 잔잔한 강가에 떠있는 소박한 나룻배에 두 사람과 검은 고양이가 유유히 떠가고 있어요. 그런데 이걸 어쩌죠?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른다더니, 그들이 향하고 있는 잔잔한 호수 끝에는 빨려 들어갈 듯 쏟아지는 폭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왼쪽 페이지엔 끝없이 떨어지는 거대한 나이아가라 폭포를 그린 작품이 있으니까요. "저기요! 지금 그렇게 유유자적 흘러갈 때가 아니에요. 어서 뱃머리를 돌리세요!"라고 소리를 질러야 할 것만 같이 나란히 자리한 그림들. 위트있으면서도 긴장 가득한 짝꿍 그림의 케미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Farans Hals의 Yong Man Holding a Skull(1626-28) & Edvard Munch의 The Scream(1893) 이번에도 너무나 유명한 작품입니다. 페이지 오른쪽에는 뭉크의 절규가 등장해요. 이 그림에서 주인공은 왜 그리 혼란에 빠져 소리를 지르고 있을까요? 왼쪽 페이지를 보면 '피식'웃음이 납니다. 사실 그는 겁쟁이였다는 걸 알게되거든요. 왼편엔 빨간 모자를 쓴 한 청년이 한손에 해골을 들고 여유롭게 웃고 있는 그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화들짝 놀라 초점이 나가듯 혼이 빠져 경악을 금치 못하는 절규의 주인공이 아주 귀여운 어린아이로 보여요.이쯤되면 이런 생각마저 듭니다. '저 형도 참. 동생이 저 정도로 놀랬으면 달래줄 법도 한데, "해골이란 말이야."라며 자신의 지식을 뽐내고만 있는 것 같습니다.
어땠나요? 짝꿍 작품을 감상하면서 피식 웃음이 난 부분, 이렇게 저렇게 상상해 본 이야기들은 아마 모두 다를 거예요. 그래서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영감을 주는 무언가를 통해 그저 문화의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로 살아가는 기쁨을 만끽한다는 건요.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지는 이 시대에 알고리즘 안에 갇혀 나를 소진하지 않도록. 우리 가끔은 이렇게 내면의 새로움을 창조해 내는 능력을, 즐거움을 깨워보는 건 어떨까요?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그리고 이제 막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한 초롱초롱한 눈빛의 아이들도 함께요.
▼해당 에세이는 팟캐스트에서 오디오북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788857?e=24815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