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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IM Jan 21. 2022

읽는 사람

눈이 빠질 것 같지만…

1. 많은 일이 있었다. 무엇보다 바빴다. 일종의 전환기였고 부지런히 날갯짓을 했다. 지칠 때까지 펄럭대다가 가지에 안착한 기분이다. 여유가 생겼다. 생활에 익숙해진 것보다 그런 시기가 왔다. 잠시 짬이 났고, 그 틈에 쓴다. 실은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잤다. 커서를 띄워놓고 눈꺼풀을 깜빡이다가 정신을 잃었다. 정신적 소모가 심한 날들이었다. 요는, 지금은 괜찮다.


2. 어제는 전화를 받았다. "000 기자님, 저희 0월 0일 0요일에 0000에서 기자회견 하는데 오실 수 있나 해서요~" 오랜만에 들었다. 체감상 그랬다. 기자일을 한 게 아득히 먼 과거처럼 느껴질 정도로 요즘 일에 몰두했다. 감회가 새로웠다. "제가 직을 옮겨서요~"라고 답하자 근황 토크가 이어졌다. 탈언론했다는 내 말에 상대는 "추.. 축하드려.. 요?"라고 받아줬다. 그러면서 물었다. "축하.. 드릴 일 맞는 거죠?" 우리는 함께 웃었고, 통화를 마친 뒤 잠시 옛일을 떠올렸다. 그런 시절이 있었더랬지.


3.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주차장을 봤더니 차가 한 대밖에 없었다. 내 차였다. 나는 최근에 원래 대던 자리를 뺏겨 옆 자리에 대고 있었다. 그러니까 원래 내 자리가 비어있었다. 1년 넘게 대오던 자리다. 무슨 의미냐면, 얼마 전 이사 온 사람이 자리를 뺏었다. 지금 내 차 자리에 자신의 차를 대놓고 있다가 내가 차를 뺀 사이 내 자리에 자기 차를 다시 댔다. 그렇게 1~2주간 주차하다가 이제 차를 주차하지 않는다. 이유는 뻔하다. 저 자리 위에 나뭇가지가 있다. 매일같이 새들이 똥을 싼다. 계절이 바뀌면 열매도 떨어진다. 차주에겐 지옥 같은 자리다. 그런 곳에 눈독을 들였다가 2주 만에 자기가 한 짓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근 10일간 사람은 귀가하는데 차는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며 괜한 욕심은 화를 부른다는 걸 배웠다.


4. 장기근속을 위해 아이패드를 샀다. 농담이고, 갖고 싶었다. 맥북을 5년째 쓰지만 여전히 현역이다. 들고 다니기엔 나이를 먹었다. 랩탑이 아니라 내가. 15인치 맥북의 무게는 2kg에 육박하는데 이는 허리에 상당한 부하를 준다. 맥북과 책 한 권, 다이어리, 유인물 조금, 보조 배터리 등을 챙기면 "오우.." 소리가 나온다. 종종 촬영 장비라도 드는 날엔 아프다. 대체로 무리를 하면 이틀 뒤에 신음 소리가 나온다. 수습기자 때 추간판 탈출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팠던 적이 있는데 그 이후 가끔씩 허리가 고장 난다. 먼 옛날 선배들에게 허리나 어깨병은 기자들의 직업병과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일을 그만둔 뒤에도 통증이 계속돼 조금 억울한 면이 있다.


5. 대 영상 시대에 여전히 활자가 좋다. 이런 기호 탓인지 하루 종일 활자를 본다. 눈이 빠져라 활자와 일하고 집에 오면 초주검이다. 그런 시간들로 1-2주를 보냈다. 머리를 박고 일을 하다가 "퇴근 안 해요?"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들면 하루가 다 갔다. 나는 이런 일이 꽤나 할만하다 느꼈다. 아마도 일에서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일 터다. 이런 감정이 대체 얼마만인지. 바쁜데 즐겁게 일했다. 바빠서 즐거웠는지도 모른다. 정신적인 피로감이 심해도 괜찮았다. 하루하루를 소진했지만 소모되는 기분은 없었다. 다만 단기간 눈이 좀 나빠진 것 같은데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낙관하는 중이다. 최근엔 (필요에 의해) 책을 읽고 패드로 전자책 생활도 시작했다. 시대야 어쨌든 나는 읽는 사람으로 남았고 이 일을 지속하려면 많이 볼 수밖에 없다. 그런 날들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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