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림가희 May 27. 2022

술 못하는 사회초년생이 문제인지 긴가민가요.

사회초년생, 업무 익히느라 정신없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 기죽던 때. 그 당시 일을 배우는 건 쉽지만 사람을 익히는 건 너무 어려웠다. 심지어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아서 회식이 몹시 괴로웠다. 신경 써주는 몇몇 선임이 있어 고마웠지만, 정작 술을 피할 능력은 스스로 갖춰야 하는 거였다.

만 20살, 능청맞게 넘어갈 기술은 없었으므로 쭈뼛거리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게 전부였다. 짧지만 긴 침묵이 흐르면 술은 안 먹어도 됐다.


다음 회식엔 술을 강요하지 않았는데 막내로서 건배사를 해야 했다. 아이들이 만나고 싶어서 여길 왔는데 "위하여"를 외치면서 직원 사기 높이기에 일조해야 한다니. 갑작스러운 제의에 졌다. 나는 잔을 들머리가 하얘져 멈춰 서 있고, 직원들도 따라 잔을 들었다. 애교를 떨던 재밌게 하던 해야 중박은 갈 거 같은데 뭘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표정 관리가 안 되는 게 느껴지는 순간 한 직원이 화이팅만 외치고 앉으라고 했다. 민망해하며 "화이팅"으로 건배사를 마치고 술잔을 홀짝거리곤 앉았다. 그때 누군가 그렇게 마시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했던 거 같은데 내 입장에선 한 번도 마셔보지 않은 술을 억지로 먹어야만 하는 상황이 서러웠다.


술을 제대로 마셔 본 적이 없고 맛이 없는 음료를 먹고 싶지 않다고도 해봤는데 사회생활을 하려면 마셔야 한다거나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제일 잘 마시더라 한다. 정기적으로 여성외과 진료받아왔기에 의사 얘기를 해가며 술을 마시면 안 되는 체질이라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디가 아프냐고 묻는 걸 보니 뭘 말해도 이유가 되지 않는다.


팀 회식 안내가 오면 위가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즐겁게 마시고 먹는 자리가 나한텐 긴장과 부담이 됐고, 생각이 몸을 지배해서 신체가 반응했다. 우리 엄마 때는 더했을 텐데 싶어 참아야 하는 건가. 아무튼 몇 차례 반복되는 회식에 어영부영 적응하고 있었다. 여전히 '술'은 문제지만 덕분에 동료와 대화하는 즐거움은 느꼈다.




기관 전체 회식 날. 2차로 곱창집에 갔다. 두 끼를 연달아 먹으니 배도 부르고, 집에 가고 싶은 밤. 다 먹어 갈 때쯤 정리하는 말이 오고 간다. 마침 관장님께서 날 지목했다.

"막내 배부른가?"

"네. 잘 먹어서 배부릅니다."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웃지도 울지도 않는 요상한 분위기. 보아하니 답변이 잘못됐나 보다. 솔직하면 안 됐나 보다. 정답이 뭔지 모른 채 멀뚱거리고 있으니 다른 팀 여직원이 3차 어디로 알아보면 좋겠냐고 말하면서 상황이 전환됐다. 다음은 낙지집이었던가. 마지막인지 알 수 없는 노래방에서 가족 핑계를 대며 도망치듯 벗어났다.


하루는 조언이라며 사회생활을 잘하기 위해 술을 배워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엔 웃으면서 응대했는데 술을 마시겠다고 하지 않으면 대화가 끝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 뭣 하러 참았는지 무색하게도 한마디 했다. 그것도 상사에게.

"술을 안 먹고, 못 먹는 게 문제일까요? 사회생활 운운하며 억지로 먹이려는 상사가 문제일까요?"

열심히 나를 위한 조언을 하시던 상사가 당황했다. 이후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이미 터트린 마당에 뒤로 물러날 곳이 없으니 옆에 서 있던 선임이 말릴 때가 돼서야 멈췄다. 할 말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속이 후련하지 않다. 내일도 모레도 막내 직원인 게 뻔한데 무리수였나 싶고, 이런다고 의인이 되는 것도 아닌데.


어엿한 직업인으로서 사회생활을 한 지 9년이 된 지금은 그런 말에 흔들리지 않는다. 화내서 달라질 상황이 아니라면 내 기분을 망쳐가며 애쓸 필요 없단 생각이다. 무례한 말 하는 사람 한 명이 날 괴롭게 하게 둘까 보냐. 진짜 모르는 거 같으면 알려주면 되는 거고, 아는데도 그러는 거면 고오-급 조크를 써야지. 사회초년생 교양 필수로 <웃으면서 한 방 먹이는 기술> 강의는 없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