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 Jun 30. 2023

그렇게 째려보면 안 자라

오이+호박+가지

엄마가 영국에 오셨던 5월에 오이, 호박, 들깨, 상추, 파, 부추 씨를 모종판에 심었다. 그리고 엄마가 한국에 돌아가시고도 한참을 더 있다가 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텃밭에 5월 말쯤 모종을 옮겨 심었다. 오이는 부엌 가까이 해가 가장 잘 드는 곳에  grow bag을 사다가 심고 내가 수시로 물도 주고 신경을 썼다.


오이는 B가 가장 좋아하는 채소로 한국에 있을 때도 내가 직접 텃밭에 심어 금방 따자마자 옷에 쓱쓱 문질러 먹었던 그 단 오이맛을 기억하고 있어서 해마다 오이는 빠지지 않고 심는다.


작년 한국에 갔을 때 백오이 씨를 사 와서 영국에서 보통 심어 먹는 피클용 작은 오이와 함께 심었다.

그런데 여기 날씨 탓인지 도통 자라지를 않는다. 6월 내내 비도 거의 내리지 않고 건조하고 덥기만 하더니 이제 비가 한번 쏴악 내리고 나서는 온도가 20도로 뚝 떨어졌다.  


저녁 먹고 정원에서 B와 캐치볼을 하면서 내가 오이 쪽으로 다가갔다.


"있지, 오이가 엄마가 그렇게 정성을 다하는데도 달리기는 했는데 크지를 않아. 꽃만 이렇게 많이 피면 어쩌냐고... 오이가 크질 않는데... 이놈의 영국날씨 정말"

"엄마가 그렇게 날마다 오이를 째려보면 오이는 자라고 싶겠어?."

"엄마가 언제 오이를 째려봤다고 그래? 너 오이 하나 못 따먹고 여름 날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거지"

"아니야, 엄마가 오이를 바라보는 눈빛은 정말 째려보는 거였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봐봐"


한방 먹은 것 같기도 하고 생각을 해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자랄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 주고 자연의 힘을 믿고 기다리면 될 것을 아무래도 B말이 맞는듯하다. 재촉하듯이 물을 주고 웃거름을 주고 지나칠 때마다 째려본 게 맞는 것 같다. 일단 나를 안심시키려 꽃은 피웠는데 쑥쑥 자라나는 데는 부담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오늘부터 너그러운 눈빛을 장착하고 오이를 대하기로 했다.


아이들도 내가 문제집 사주고 맛있는 간식 줘가며 시험공부하라 재촉하면 공부하는 시늉이야 하겠지만 더 하기 싫은 맘과 같지 않을까...... 아이들을 믿고 맡겨보는 너그러움과 인내가 필요한 것을...... 이렇게 아이들은 바른 소리를 가끔 해서 나를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한다.

작가의 이전글 Dordogne, camping to Franc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