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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Jan 30. 2024

"엄마 부르지 마!"

방학 11일 차

"너네 그거 습관이야, 툭하면 엄마 부르는 거."

"할 얘기 있을 때만 불러. 정말 중요한 전달 사항 있을 때만!!"

단호하게 아이들 눈을 바라보고 얘기했지만 대답은 내 기대와는 반대로

"엄마 그런데 이거 있잖아..."

하며 엄마 할 말이 끝났으니 아들은 본인이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하겠다며 1초 만에 '엄마'가 시작되었다. 나의 절규에 가까운 부탁은 역시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하아.. 대체 언제쯤 상대방의 말을 수용하고, '상황에 대한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시기가 오는 걸까? 아들전문가 최민준대표가 그랬다. 아들은 생각보다 귀가 안 들린다고. 실제로 남성은 여성보다 듣는 능력이 낮고, 순간의 집중력이 뛰어나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니 말을 무시한다고 분노하지 말고 아들의 특징을 인정하여 평정심을 유지하라 하셨다.

[부모 클래스] 최민준의 '아들 훈육법

 그리고 자식과 엄마 사이가 공감대가 생기려면 엄마가 먼저 아이의 일상으로 들어가 보라며 거기에서 대화 소통이 싹이 트는 것이라고 팁을 주셨다. 나는 거기에 번쩍 손을 들고 질문을 하고 싶다.

"선생님, 반대로 하루에 100번 이상 '엄마'를 부르는 거는요? 저는 소통 좀 줄이고 싶은데요??"

집중해서 안 들리는 거면 그만큼 상대방도 안 불러야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닙니까? 저 정말 귀에서 피 나올 것 같고 머리가 지끈거린다고요. 하루 종일 볶아대니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서 애들이 잘 때도 엄마환청이 들리는데 귀가 잘 들리는 저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도 알려주셔야죠. 최민준 대표님의 잘못도 아닌데 그분을 붙잡고 따지듯이 하소연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 들이 엄마를 부르는 이유는 심심할 때, 무엇을 찾을 때, 허락을 요할 때, 고자질할 때 등 다양하지만 그중 30%는 단 하나의 주제다.

"엄마, 뭐 먹을 거 없어?"

삼시 다섯 끼를 준비해야 하는 성장기 아들맘의 방학. 경험해보지 않은 자, 상상 그 이상일테니 도전해보려 하지 말라. 2끼인 간식은 셀프로 알아서 사 먹든지, 찾아먹던지 하라고 집안 곳곳에 먹거리들을 놓아두고, 그 귀하디 귀한 아카(아빠카드)는 현관 앞 서랍에 고이 모셔두었다. 이제 입이 심심하고, 출출하다는 이유로 나를 찾지 말라며 한 번만 더 간식 때문에 엄마 부르면 간식은 모두 너희의 용돈으로 사 먹게 될 거라는 엄포도 잊지 않았다.

장난꾸러기들의 셀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더니 형제들의 작전은, 새롭게 바뀌었다.

"엄마, 오늘 점심(저녁)은 뭐 먹을까?""

하아... 내 고민을 함께 해 주는 건 고마운데, 잠자리에 누워서 내일 저녁을 걱정하는 건 좀 심한 것 아니니? 그 정도로 엄마 고민 함께 해줄 거면 집안일도 함께 해 주던가. 아, 아니다. 그건 해보니 아닌 것 같더라. 취소. 퉤 퉤 퉤. (방학 5일 차 참고) 아무튼 밥 걱정도 스트레스지만, '엄마' 소리는 더더욱 스트레스이다.

"내 걱정은 나 혼자 할게. 이제 엄마 좀 그만 불러!!!!"

"키키키킥"

나의 외침이 아이들에겐 재미로 다가가나 보다. 또 둘이서 키득키득 웃으며 속닥거리더니 "엄마, 그런데 있잖아..크크큭" 하며 또 엄마 소리가 나온다. 대체 남자와 여자는 어디까지 다른 건가. 어떻게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고 장난을 칠 생각이 드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결국 아이들과 나란히 누워 잠들기 직전, 이성을 잃고 나는 공룡이 되어 불을 내뿜었다.

"그만 떠들고 얼른 자!!!!! 너희 내일 늦게 일어나기만 해!!!!!"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야 하루 종일 주인을 떠나 있던 정신이 자리를 찾아 돌아왔다.

'하아... 또 소리를 질렀네. 애들이 그러는 게 뭐 그리 잘못이라고...;;'

잠든 아이들의 이불을 덮어주고, 슬며시 방을 빠져나오며 언제나 그랬듯 오늘 하루 나의 태도를 반성한다.

매일 밤 나의 힐링타임

식탁에 멍하니 앉아 향초를 바라보다 윤지영(오뚝이샘)의 '엄마의 말 연습' 책을 꺼낸다. 나의 힐링책이자 반성의 책이다. 한 상황을 두고 나쁜 예와, 좋은 예를 들어주시며 아이의 입장과 엄마의 입장을 모두 대변해 주시는데 '안 해봐서 그렇지 하다 보면 익숙해져. 같이 노력해 보자.' 하며 아이에게 말을 알려주시고,

'하루에 한마디, 천천히라도 바꾸어 보려고 노력해야겠다' 하시며 마치 작가님이 나인 양 토닥토닥해 주시는 글들에게 위로와 조언을 받고 싶었다.

'어디 있더라.. 아, 여기 있다!'

사춘기가 되면 뭐 필요할 때만 엄마를 찾으니
엄마 부를 때가 좋은 때라고 합니다만,
막상 종일 엄마를 찾는 이들과 있으면 힘들고 지치죠.
무엇보다 몸이 힘들어서 마음의 여유도 없어지는 게 커요.
쉬고 싶은데 쉬게 해 주지를 않는 아이에게 짜증이 나고 말죠.

여기까지 읽는데 또 눈물이 난다. (갱년기인가? 요즘 자꾸 눈물이 난다.) 어쩜 내 마음을 콕! 집어 이리 예쁘게 정리하여 글로 적으셨을까.

나의 상황을 알아주는 분이 있다는 것에, 나와 같은 엄마들이 많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오늘 하루의 힘듦이 샤워기를 틀어 몸에 물을 뿌리듯 한 순간에 말끔히 씻겨진다. '이래서 내가 책을 읽지', '이래서 내가 내일 또 애들을 키우지' 하며 반성과 다짐의 마음을 펜에 담아 꾹꾹 필사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될 수 있음에 감사하자. 아자!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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