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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화 Oct 27. 2020

나는 오락실 농구 게임, 숨은 고수다

도전장 던지시라

나는 오락실을 좋아한다. 삼성동 코엑스몰 메가박스 매표소 왼편에 있는 오락실과 건국대 입구역 먹자골목 한가운데에 있는 오락실, 이 두 곳이 단골이다. 한 번 들어가면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외부 세상과 온전히 분리되어서는 무아지경(친구들의 눈에는 가끔 이렇게 보인단다)에 빠져서 신나게 논다. 오락실 한 바퀴 돌며 놀고 나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몸도 개운해지고 머리도 맑아진다.


내 주종목은 농구 게임이다. 다른 게임도 종종 하지만 농구 게임을 특히나 좋아한다. 게다가 나는 자타가 인정하는 오락실 농구 게임의 숨은(잘하게 생긴 티가 1g도 안 난다고 붙여진 수식어이다) 고수다.


농구는 골대에 4~5개의 농구공을 하나씩 던져 정해진 시간 내 일정 점수 이상을 획득하면 보너스로 한 판씩을 더 할 수 있는 방식의 게임으로 최대 다섯 판까지 할 수 있다. 골대에 공이 걸리면 감점, 걸리지 않고 들어가면 추가점, 연속으로 공이 들어가면 보너스 점수를 준다. 큰 변수가 없는 한 다섯 판까지 살아남는 편이다. 몸과 마음의 상태가 좋은 날에는 가끔 왼편 상단에 있는 그 날 최고 기록을 경신하기도 한다. 솔직히, 꽤 자주 깬다. 기존의 최고점을.


이 농구 게임은 공의 무게 파악과 무릎 반동 조절이 핵심이다. 내가 이 얘기를 하면 농구를 잘하는 친구들은 보통 '풉'하고 웃는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웃기긴 하다. 오락실에서 농구 게임을 하면서 핵심 운운 거린다는 게. 그렇지만 게임에 임하는 내 자세는 사뭇 진지하다.


대부분 오락실 농구 게임에는 다섯 개 정도의 공이 있다. 그런데 이 공이 무게가 각기 다를 때가 많다. 어떤 공은 바람이 빵빵하게 들어가 있고 어떤 공은 조금 흐물거린다. 어떤 공은 좀 묵직하고 어떤 공은 상대적으로 가볍다. 게임이 시작되면 우선 가볍게 공을 던지면서 공 전체의 무게에 대한 감을 재빠르게 익혀야 한다. 이 정도가 중간 정도겠다 싶은 무게에 대한 감을 잡아서 힘 조절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거운 공을 던지고 난 다음 바로 가벼운 공을 던지면 힘 조절이 안 돼서 일정하게 공을 던지기가 어렵다.


무릎 반동도 중요하다. 어깨로 손목 스냅으로 공 무게에 맞춰서 일정하게 힘을 주는 건 여간해서는 쉽지 않다. 그런데 어깨와 손목 힘을 빼고 무릎을 약간 굽혔다가 펴면서 반동을 주는 동작은 힘 조절이 상대적으로 쉽다. 무릎을 아래 위로 움직이면서 그 반동으로 공을 던질 때 무릎을 굽히는 각도를 매번 비슷하게 고정할 수 있어서 일정한 반동 동작을 반복할 수 있다. 때문에 공의 무게를 얼른 파악해서 무릎 반동으로 일정하게 공을 던지면 골인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


왠지 모를 고수의 아우라가 느껴지시는가? (그렇다고 내가 유튜브에서 가끔 보이는, 양손으로 마구마구 골을 성공시키는 달인 레벨은 아니다. 나는 그냥 높은 슛 성공률에 조금 빠른 손으로 고득점을 따는 정도이다)



내가 이 농구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는 '시간제한'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 내 공 하나라도 더 성공시키기 위해 초집중을 해야 한다. 60초 게임 중 10초가 남으면 경쾌한 남자 목소리가 카운트 다운을 시작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면 심장이 콩닥콩닥 두근두근 거리는데 그게 그렇게나 재미있다. 어쩌다가 1초 남겨 두고 보너스판을 가기 위해 1점이 모자란 상황에서 클린슛을 성공하게 되면 환호성을 지를 정도로 신난다.


나는  시간제한 앞의  긴장감을 아아아주 좋아한다.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쿵쿵 뛰고 땀이 나고 머리가 하얘지는 이 긴장감.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표현 아닌가? 발표 시작 전 내 증상이다. 발표를 앞두고 어쩔  몰라하며 불안에 면서 괴로움을 느끼는 그 긴장감과 환호성 지르며 신나서 어쩔  몰라하는 오락실에서의 시간제한  긴장감은 본질적으로 결이 같다.


같은 긴장감인데 하나는 고통스럽고 하나는 너무 즐겁고.


이 글을 시작할 때 아주 야심 차게 그리고 글 전개 중간중간에도 여러 번. 나는 '발표 불안은 극복 가능하다!'라고 여러 번 강력하게 외쳤다.


이유가 있다. 발표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공포증' '정서 장애'를 겪고 있는 중이라 나름의 '처방'이 필요한 상태다. 발표 불안을 만들어 내는 비합리적인 믿음 중에 '평생 이러고 살아야 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비합리적인 생각은 내가 무언가를 해볼 만한 동기나 용기를 내볼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더 이상 피하지 않고 맞서 보겠다 생각했을 때 그 시작점에서는 '극복 가능한 대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발표 불안 모임의 첫 단계에서는 늘 '발표 불안, 극복 가능합니다'라고 한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불안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우리 뇌에는 편도체라는 부위가 있다. 편도체는 감정을 조절하고 동기와 기억, 주의, 학습과 관련된 정보를 처리한다. 신체의 여러 감각 기관에서 공포나 불안, 긴장을 일으킬만한 상황이 감지되면 편도체에서 흥분성 신경 물질이 분비되어 교감 신경계를 긴장시키면서 심장 박동과 호흡이 빨라지고 근육이 수축하는 등의 자율 신경계가 반응하게 된다. 이는 위험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싸움을 시작하거나 도망을 치는 등의 행위를 하기 위한 기본적인 생체 반응이다. 



오락실에서 신나서 긴장을 할 때에도 발표 시작 전 불안에 떨 때에도 비슷한 신경 물질이 분비된다. 전자의 긴장감은 정해진 시간 안에 공을 잘 던지기 위해 근육을 바짝 긴장시키고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긴장이다. 후자는 비합리적인 신념으로 인해 공포감을 느껴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언제든 싸우거나 도망을 쳐야 하는 상태로 몸과 마음이 준비하면서 생기는 긴장이다. 둘은 결국 같은 긴장감이다.


고로 불안은 극복할 대상이 아니라 당연한 생체 반응이다.


때문에 발표를 하기 전 내가 느낀 그 극도의 두려움은 앞에서 자세히 언급한 대로 '내가 만들어낸 비합리적인 믿음, 생각' 때문이다. '내 스스로가 만들어 내고 있는 공포감'이다.


허무하지 않은가. 스스로가 만들어낸 고통에 그토록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이.


그렇지만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찰싹 붙어 있었던 믿음을 바꾼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론에 먼저 접근을 해서 내 스스로를 설득하는 데에 공을 들였다. 여러 이론 중 내게 가장 깊은 울림을 준 것이 '행동주의 심리학의 조작적 조건 형성'이다. 어려운 설명들, 실험들, 예시들이 많지만 핵심은 그거였다. 내가 능동적으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 내 변화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구나'. 내가 당연시 여기며 지니고 있었던 여러 믿음들이 실은 아주 왜곡되어 있었다는 걸 인지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내가 통제할 수 있다'라는 생각에서부터였다.


발표 불안계의 초고수님이 그러셨다. 8년 간의 그 지독했던 고통에서 벗어난 방법이 생각보다 너무 허무했다고. 발표 불안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시작은 아주 간단한 '인식', 혹은 '알아차림'이라 하셨다. 고통의 시간이 너무 혹독했고 해소의 방법이 생각보다 너무 간단했고 불안에서 벗어난 이후의 삶이 너무 행복해서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없다고 하셨다.


내 마음이 그랬다.  


나는 심리학자도 아니고 정신분석학자나 심리 치료사도 아니다. 스피치 연구소장도 아니고 전문 강사도 아니다. 나는 그저 유럽, 남미 시장 해외 사업 개발 분야에서 일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굳이 이렇게 발표 불안에 대한 글 쓰느라 잠 줄여가며 여가 시간을 써야 할 당위도 딱히 없다. 발표 불안 모임을 운영하기 위해 컨퍼런스 콜 일정을 조율하고 친구들과 가족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줄일 이유가 그리 없다.



그렇지만 그 지독했던 발표 불안의 고통, 그 괴로움의 터널 속에 여전히 갇혀 있을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작했다, 글 쓰기를.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십수 년이 넘게 혼자 끙끙 앓아온 발표 불안이 그 방법만 알면 몇 주 내로 많이 좋아질 수 있음을 얘기하고 싶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생각을 바꾸고 반복적으로 연습하고 서로 칭찬해주면서 꾸준히 관리하면 놀라울 정도로 좋아진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


부족하기만 한 내 글이 발표 울렁증에 시달리고 있는 누군가에게 '내 생각이 왜곡되었음을 알아차림'의 시작이 될 수 있다면 매우 기쁠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발표하기 전 심장이 두근거리며 긴장한다. 그런데 그 두근거림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발표 전에 내 마음이 또 이리 설레는구나 하고 웃어넘긴다. 얼굴이 붉어지면 나는 오늘 또 누군가의 눈에는 참 예뻐 보이겠구나 하고 넘겨 버린다.


나는 여전히 강연 제안에 가슴이 콩닥콩닥 한다. 그런데 불안감 대신 기대감이다. 어떻게든 핑곗거리 만들어서 그 자리를 피해 보려던 나는 공기 속으로 사라지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즐겁게 고민하는 내가 되었다.


얼마 전,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발표 불안에 관한 질문이 쭈욱 이어지고 마지막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고수님의 답변을 기다립니다'


순간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발표 불안계의 고수가 아니다.

나는 그냥 평범한 일반인이다.

나는 그저 오락실 농구 게임, 고수 정도는 되겠다.


오락실 농구 게임 도전 정도는, 기쁘게 받아들이겠다. 도전장 던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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