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날마다 딸의 손을 마사지해 준다. 딸은 힘들 때면 아빠에게 손을 내밀곤 한다. 손 마사지를 해 달라는 뜻이다. 물론 내가 마사지를 잘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그냥 손바닥을 지압해 주는 수준이다. 그래도 그것이 좋은 모양이다. 끊임없는 아빠와 딸의 스킨십은 손바닥 마사지다. 마사지를 해 주면서 이런저런 가벼운 이야기를 한다. 일상적인 것을 묻기도 하고, 아빠로서 하고 싶은 얘기도 한다.
히들 때 손을 내미는 딸에게 나는 정말 잘하고 있는 것일까? 딸의 마음을 적어 놓은 책을 다시 보았다.
다음과 같은 말에 딸은 어떤 답을 하였을까?
부모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마다 제가 천 원씩 받았다면, 저는 지금 엄청난 부자가 되었을 거예요:
'공부는 언제 할 거니?' '방 청소해라'
이 세상의 대부분의 부모들처럼 '공부, 청소'에 대한 얘기를 제일 많이 하고 있었다. 방 청소하라는 얘기는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하는 것 같다. 물론 요즘은 청소하라고 하는 말 대신 '아빠가 청소해 줄까?'로 바꿨다. 왜냐하면 정말 필요한 때는 침대도 정리하고 책상도 나름대로 정리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뭐든지 필요성을 느껴야 하게 된다. 두 아들을 키워 본 경험이랄까. 그래서 가끔씩 해 준다. 이때 가끔씩의 기준은 엄마에게 혼나기 전을 의미한다. 그러다 때를 놓치면 딸은 엄마에게 한소리를 듣는다. 그럴 때 옆에 가서 살짝 말을 건네곤 한다. "거봐, 아빠가 청소해 준다고 할 때 해달라고 했어야지. ㅎㅎ" 이 말에 딸도 웃는다. 이렇게 서서히 단풍잎이 오색으로 물들어가듯 청소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언젠가는 딸의 방도 오색찬란한 단풍잎의 가을 풍경처럼 아름다울 것을 기대하면서.
꽃보다 마음
딸이 선물해 준 책 몇 페이지를 더 넘겼다. '제게 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라는 글이 있었다. 딸이 답한 글을 보고 생각이 깊었다. '아! 이런 말을 하면 안 되겠구나.' 물론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런 말을 했는데 이제부터는 하지 말아 달라는 마음을 전달한 것인지도 모른다. '말 안 들으려면 혼자 살아' '다 너 때문이야' 딸의 마음을 안 순간부터 이 말은 나의 뇌 속에서 지워버렸다. 나의 뇌 사전에는 '말 안 들으려면 혼자 살아, 다 너 때문이야'는 없다. '고맙다. 너의 마음을 살포시 전해 주어서'
그런데 딸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원하는 걸까? 아빠가 어떤 말로 응원해 주길 바라는 걸까? '적극적이고 모험심 많은, 정의로운, 꿈을 위해 노력하는, 예의 바른, 세련되고 매력적인,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는, 신앙심 깊은, 센스 만점인, 다른 사람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어 했다. 그런 마음을 적었다. 정말 예쁘고 사랑스럽다. 그런데 궁금한 게 생겼다. 딸은 아빠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어떤 아빠일까? 몇 장을 더 읽어 나가니 궁금증이 풀렸다.
'아빠를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은요?'
딸이 선택한 표현을 보았다. '속이 깊어요, 다정해요, 재밌어요, 따뜻해요, 느긋해요, 잠이 많아요, 북슬북슬해요, 서툴러요, 든든한 지원군' 모두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이 중에서 '서툴러요'는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집안일을 돕다보면 제대로 못해서 집안 살림의 전문가로부터 한 소리 듣기도 하는데 그런 것인 듯싶다.
사람의 마음속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마음은 알 수 없다'는 말도 있다. 10여 년을 길렀지만 어찌 딸의 마음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이렇게 자기의 마음을 책을 빌러서 전해 주니 너무나 고마웠다. 서로 말하지 않아서 오는 오해와 갈등이 있다. 그런데 딸의 마음을 적은 책을 통해서 전해 주니 너무나 고마울 뿐이었다.
복잡한 조건법 시제 따윈 없이 나는 그렇게 사랑받았다. 별다른 감사조차 없이 당연하게 받아먹었던 그 소박하고 따스한 사랑이 기적인 걸 이제 알았다. ---심윤경 소설 <설이> p.271
딸과의 소박하고 따스한 사랑이 날마다 기적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딸이 만들어 준 책은 어버이날의 최고의 선물이었다. 아빠의 위치를 잡아 주었다. 그래서 '꽃보다 마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