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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Aug 10. 2023

#_글은 삶을 파고든다.

당신에게 전하는 릴케의 조언

내게 충고를 해도 좋다고 했으므로 감히 말하는데, 제발 그런 일은 되도록 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자신의 내면이 아닌 바깥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그러지 마세요.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충고를 해 주거나 도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단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자기 자신 속으로 파고들어 가보세요. 그럼으로써 당신에게 자꾸 쓰라는 명령을 내리는 그 근거를 한번 캐 보세요.

조각가 로댕의 비서로 일하며 사물을 깊이 관찰하고 사색하는 훈련을 할 수 있었던 릴케가 1903년 한 젊은 시인에게 답장한 편지의 한 부분입니다. 자기 자신 속으로 파고 들어가 보라는 그의 주문이 깊이 와닿습니다.

글은 남을 위해 쓰는 것이기 이전에 최초의 독자인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깊이 파고들어 가지 않고 나온 글은 힘이 약합니다. 반면에 자신의 내면을 관통하고, 내 삶을 거치며 단단해진 문장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 같습니다. 내 안에서 나온 것이지만, 나를 지탱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릴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자꾸 타인의 비평을 통해 자신을 개선해 나가려는 작가(젊은 시인)에게 타인의 검열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한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글쓰기 입문자들에게 흔히 발견되는 오류입니다. 아직 사물과 나 자신을 관찰하는 것도 서툰 상태에서 쓴 자신 없는 글이 타인에게 만족스러울 리 없습니다. 물론 그 서툼 속에서 아주 작지만 생명을 품고 있는 씨앗을 발견해 주는 이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매일 '나'로써 살아가는 나조차 모르던 것을 '남'이 발견해 주길 바라는 게 욕심 아닐까요?

그러니 우선 스스로 자기 자신 속으로 파고들어가봐야 합니다. 생각의 흔적을 따라가 보고, 삶 곳곳에 깊게 베인 향기를 따라가 보고, 내가 좋아했던 것들의 다양한 모양을 하나씩 찾아가다 보면 분명 보이는 것이 생길 것입니다.  릴케의 말처럼 쓰지 않고 견딜 수 없는 어떤 마음의 욕망 혹은 명령의 이유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건 남에게 물어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남에게 물어볼 수 없다는 것이 남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반응이나 생각도 중요합니다. 다만 그런 바람에 뿌리까지 흔들릴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사람은 저마다 풀지 못한 수수께끼입니다. 우리가 소설을 보고, 드라마를 보고, 타인의 스토리에 집중하는 이유는 그런 이야기들이 나라는 존재의 수수께끼를 푸는 힌트를 주기 때문 아닐까요?

정말 아무런 관심도 없는 걸 보는 사람이 있나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쓰고 있는 것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보면 내가 보일 겁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글은 삶을 파고듭니다. 그것도 깊숙이 말이죠.

때론 무섭기도 합니다. 너무 적나라한 나를 발견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대개는 놀라울 겁니다. 신기하기도 하고요. 막연하게 알던 내가 점점 입체적으로 바뀌게 될 겁니다.

저는 모든 글쓰기는 삶의 욕망에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욕망이 없는 글은 쓸 수 없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몇 달 전에 가족들과 에버랜드에 갔는데, 그때 푸바오(판다)를 봤습니다. 나오면서 푸바오 인형을 하나 샀는데, 저를 제외한 가족들 모두 엄청 좋아합니다. 옷을 입혀주기도 하고, 순서를 정해서 누가 데리고 잘 건 지를 정하기도 합니다.(아내 포함) 요즘 푸바오는 핫하고, 제가 봐도 귀엽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와 관련한 이야기에 딱히 욕망이 없습니다. 그러니 매일 한 두 번 이상 푸바오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있지만, 제가 글로 남기는 일은 없는 것이죠. 푸바오를 많이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렇게 물으실 겁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네, 그럴 수 있습니다. ㅎㅎㅎ

제가 한 때 니체에 빠져 다양한 책을 읽고 빠져있을 때, '니체의 책 읽어보셨나요? 진짜 엄청난 책이에요.'라고 말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같이 맞장구 쳐줄 가능성은 무척 낮을 겁니다. 상대가 니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라고 물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대중적인 콘텐츠라고 해도 모든 사람에게 빠짐없이 좋은 콘텐츠는 없습니다. 그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콘텐츠가 있을 뿐'입니다.


다시 글에 대한 욕망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욕망은 부정당하고 있을 것이고, 어떤 욕망은 은밀히 충족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 어떤 욕망은 마음껏 드러내기도 하지만, 또 어떤 욕망은 딱히 부끄러울 이유가 없음에도 드러내지 못하기도 할 겁니다. 왜 그런지 모릅니다. 저마다의 무의식의 영역일 테니까요. 그저 그런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만 알 뿐입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저는 제 자신에 대해서는 깊이 파고들어 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훈련을 많이 하긴 했지만, 아직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그것을 표현하는 것엔 서툰 단계(2-b)가 아닐까 싶습니다. 단계별로 표현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 나의 욕망에 대해서도 모르고, 타인(세상)의 욕망에 대해서도 모르는 단계
2-a. 나의 욕망에 대해서는 알지만, 타인의 욕망에 대해서는 모르는 단계
2-b. 나의 욕망은 모르지만, 타인의 욕망에 대해서는 아는 단계
3. 나의 욕망에 대해서도 잘 알고, 타인의 욕망에 대해서도 아는 단계


2단계는 2가지로 나뉘겠지요. 나를 먼저 이해하느냐, 타인을 먼저 이해하느냐.

릴케는 2-b를 추구하는 작가에게 우선 2-a부터 하는 게 어떠냐고 조언을 건네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도 같은 생각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2-b부터 가능한 사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편적으로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일은 아니라는 거죠. 중요한 건 어떤 과정을 거치든 결국 3번 단계에 이르는 것이 목표라면, 반드시 나를 먼저 파고드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릴케가 말합니다.


다른 판단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당신에게 해 줄 수 있는 충고는 이것이 전부입니다. 자신에게 파고들어 당신 생명의 그 깊은 근원을 느끼도록 하십시오. 그 근원으로부터 창작을 해야 할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어려운 요구이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 없는 충고이지 않나요?

저는 이렇게 조언드리고 싶네요. 매일 조금씩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짧은 글들을 먼저 써보길 권합니다.

갑자기 이전의 일상과 다르게 너무 많은 시간을 글쓰기에 할애하기보다는 매일 5분이나 10분 정도만이라도 글을 적어 보는 겁니다. 일기도 좋고, 에세이도 좋아요. 형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글이 삶에 연결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거든요. 매일 글을 쓰면서 그 연결점을 조금씩 늘려나가 보는 겁니다. 훌륭한 작품을 남긴 수많은 선배 작가들의 조언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삶을 글로 파고들어 멋진 탐험을 시작해 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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