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 설 Nov 01. 2022

그날을 기억합니다

8화

 웅성웅성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쯤 구급차가 도착했다. 의식이 없는 그녀를 빼내기 위해 구급대원들은 전자동 톱을 신속하게 준비하고 차의 뒷좌석을 절단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녀의 왼쪽 팔과 다리를 움켜쥐고 있던 고철들이 조각나면서 축 늘어져 버린 팔이 보였다. 그녀의 모습을 확인 후 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이제야 상황 파악을 한 트럭 운전자의 낡아빠진 조끼를 움켜쥐고 주먹을 날렸다. 남자의 얼굴이 돌아가면서 퀴퀴한 술 냄새가 났다. 함께 도착한 경찰은 내 팔을 잡고 형식적으로 안정을 취하라고 한 뒤, 그녀와의 관계와 사고 경위에 관해 물었다.     


 “혹시 피해자로 보이는데 임산부예요?”     


 경찰관을 등진 곳에서 그녀가 들것에 실려 응급차에 실리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난 경찰관의 물음을 뒤로하고 주저 없이 구급차에 몸을 실었다. 응급실까지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피가 너무 많이 흐르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녀의 팔과 다리에는 하얀색 지혈제가 범벅되어 있었다. 초조했다. 모든 것이 내 탓 같았다. 이게 끝이 아니길 바랐다.      


 “보호자분 비키세요.”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의료행위는 일사불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수술실로 사라졌다. 피범벅이 된 채, 급히 들어가 버린 그녀의 모습에서 난 자책하고 있었다. 차를 그곳에 주차하는 게 아니었다. 침착해야 한다고 몇 번을 되뇌었는데 우왕좌왕 어쩔 줄 몰라 시간을 지체했다. 그녀를 뒷좌석에 태우는 게 아니었다. 산모수첩은 미리 챙겼어야 했다. 그녀를 혼자 있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리고 집을 구하는 일은 혼자서 해결했어야 했다.     



     

 “오늘 아빠 진짜 진짜 멋있었어요.”

 -우리 딸, 아빠의 어떤 점이 그렇게 멋있었을까?-

 “친구들에게 수화를 가르쳐줬잖아요. 친구들이 모두 아빠 멋있다고 부러워했다고요. 아마 엄마도 하늘에서 보시면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실 거예요. 맞죠?”     


 그녀는 사고 당일 숨을 거뒀다. 당시의 수술은 그녀를 위한 수술이 아니었고, 아이를 살리기 위한 응급수술이었다. 수술실로 들어간 뒤 약 한 시간 후 수술실에 함께 들어갔던 젊은 의사가 심각한 얼굴을 하며 나에게 수술실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그녀가 누워있을 수술실로 들어가는 복도는 하늘길보다 길고 아득했다. 차가운 공기를 감싸고 있는 적막은 마치, 내가 처음 언어를 잃어버렸을 때의 바닷속과 닮아있었다. 그 기억에 또다시 입술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 의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작가의 이전글 꿈이라고 말해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