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5/6)
지금까지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주제로 4회에 걸쳐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이를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독서나 영화 감상, 놀이 등 사고력을 수반한 다양한 활동은 물론 몸을 움직이는 운동과 같은 신체적 활동 역시 뇌 작용에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하다.
2. 이는 감각적인 작용도 있겠지만 '언어적 능력'이 상당히 중요하다.
3. 아무리 인공지능 시대라고 해도 이러한 것은 인간의 생리학적 발달을 위한 요인이자 존재의 본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바뀔 수 없다.
혹시나 앞뒤 맥락을 통해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으신 분들을 위하여 아래 링크를 남겨두겠습니다.
[1편]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https://brunch.co.kr/@littleaction/4
[2편] 혁신에 감춰진 정신적 해로움
https://brunch.co.kr/@littleaction/24
[3편] 구구단 안 외울거야? 구구단도 GPT한테 시킬 거야?
https://brunch.co.kr/@littleaction/25
[4편] 우리는 엄마 배 속에서 들었던 말들을 기억할까?
https://brunch.co.kr/@littleaction/26
결국 이 '언어적 능력'이 삶의 질을 결정지을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혹시나 수능 언어영역의 점수로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혹여나 그러한 생각이 드셨다면 위에 첨부한 저의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시리즈의 일독을 권유해 드립니다.
그러면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은 어떨까요? 어차피 번역기가 잘 나오니까 모국어에 집중하면 됐지, 외국어를 배워 봤자 시간과 노력만 드니 별 쓸데없는 짓일 뿐일까요? 외국어를 학습하는 것도 모국어처럼 언어적 능력과 수용력, 사고력이 서로 맞물리며 향상되는 되먹임의 법칙(Feedback effect) 이 적용되지는 않을까요?
이번 회에서는 언어에 있어서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에 관하여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에 앞서 먼저 제가 외국어를 '습득'한다고 표현하였지, 공부하거나 학습한다고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에 잠시 주목을 해주십시오.
이 전에 <우리는 엄마 배 속에서 들었던 말들을 기억할까?> 편에서 태아로부터 시작해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간략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자, 다시 한번 환기해 봅시다. 우리는 처음에 어떻게 한국말을 할 줄 알게 되었나요?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말을 할 줄 알게 되었지요?
아기들은 어떻게 모국어를 깨치게 되나요?
잠시 아기들이 모국어를 깨우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하여 예전에 한국의 영어 수업 방식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예전에 영어 수업에서 ABCD 알파벳을 배우고, 'Hi, How are you?', 'Fine thank you, and you?'를 읽고 앵무새처럼 따라 하며, 심지어 예전에는 '깜지'라는 형태의 일본식 정신승리적 방법을 차용하여 공부하기도 하였습니다. 잠시 자료 사진 보시겠습니다.
(사진 출처 : 중앙일보, 투데이코리아, Aedi의 스마트라이프)
그런데 말입니다, 어린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먼저 ㄱㄴㄷㄹ, 가나다라마바사 한글을 익히고 나서 말을 하나요? 깜지를 쓰면서 억지로 쑤셔 넣듯이 외우면서 언어를 익히나요?
아닙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말들을 '습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말을 할 줄 알고 나서 글을 배우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수많은 외국어 학습자는 교실 안에서 진행되는 고루한 수업 방식에 따라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됩니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많은 인원을 계량화된 방법에 따라 가르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산업적인 관점에서 편리한 방식이긴 합니다만, 많은 이들의 무의식 속에 외국어 학습에 대한 일종의 트라우마를 안겨주기도 합니다.
영어를 예로 들자면 최소 6년 이상의 공교육 과정을 거쳐도 영어를 잘 못하는 건 어쩔 수 없고 당연한 일이라고 치부돼버린 측면이 있습니다. 국내에서 뛰어난 영문법 시험 성적을 갖은 학생이 영어권으로 유학을 가게 되면 구어체의 영어를 어린아이 수준부터 다시 습득해야만 상황을 겪게 됩니다.
외국어를 할 줄 아는 것은 상당한 이점을 갖는 것이라는 데에 동의하지 않으실 분들은 없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이제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관점을 벗어나서, 외국어를 '습득'한다는 관점으로 바라보고 해당 과정을 바라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영어나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티벳어, 힌디어 등 원하는 외국어를 익히는 과정에서는 해당 언어의 문화나 정서, 관습 등을 수용할 기회가 저절로 주어집니다. 이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사고력 향상은 물론 문화적 수용력도 넓어지게 됩니다. 견문을 넓히는 큰 원인이 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이 한국 사람의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이라면, 한 언어를 한다는 것은 그 언어에 해당하는 문화권의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외국어를 습득함으로써 자신의 관점이 넓어져 그만큼 자신의 세계와 활동 반경이 넓어지는 것과 다름없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앞서 이야기하였다시피 디지털 시대의 영토는 이미 국경과 언어를 초월하였습니다. 앞으로는 실생활에서도 번역 기술로 인해 국제적인 교류가 더욱 용이해질 것입니다. 이미 번역기를 이용해 다른 언어권 사람들과의 접촉이 쉽게 가능합니다.
하지만 번역기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그 문화적 상대성을 이해하는 데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은 한국어만 할 줄 알고 한국 문화와 관습에만 익숙해져 있는 '한국인의 눈'을 가지고 있는데, 번역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그 한국적인 관점을 넘어서서 해당 언어권의 관점까지 바로 갖게 될 수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외국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직접 경험하고 느끼며 해당 문화와 관습을 수용하며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번역기가 단번에 채워주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번역기는, 외국어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길러질 사고력과 수용력의 향상을 대신해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모국어를 외국어보다 감정적으로 더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이는 모국어가 어린 시절부터 사용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과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모국어로 욕설을 들으면 외국어로 된 욕설을 듣는 것보다 더 격한 감정적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이는 외국어가 감정을 덜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선후배 사이에서 후배가 선배에게 뭔가 고마운 일을 베풀었을 때, 선배가 후배에게 '고맙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배는 내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거나 감정의 표시를 잘하지 못하는 성향이라서 왠지 '고맙다'라고 말하는 게 어색합니다. 그럴 때 그 선배는 후배에게 '땡큐'라고 하기도 합니다. 감정이 덜 실리는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꾸로 내향적인 성격에 감정의 표시를 잘하지 못하는 성향의 후배에게 선배가 뭔가 고마운 일을 베풀었을 때 후배는 선배에게 '땡큐'라고 하기가 애매합니다. 물론 'Thank you, 선배', 'Thank you, sir'를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해당 선배가 영어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을 떠나 아주 친밀한 관계가 아닌 이상 '땡큐'는 한국 사회 통념상 뭔가 버릇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 외국어로 사고하면 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라는 여러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https://pubmed.ncbi.nlm.nih.gov/22517192/
이를 외국어 효과(Foreign Language Effect)라고 합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이 외국어로 의사결정을 할 때 더 논리적일뿐더러 감정으로부터 더 자유로운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외국어는 문제를 더 추상적이고 심리적으로 멀게 느끼게 하여 더 냉정한 분석을 가능하게도 한다고 합니다.
한때 유행되는 용어였던 '메타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이 새로운 관점을 하나 더 갖게 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어와 영어를 예로 들자면, 실제로 한국어와 영어 둘 다 능숙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영어를 사용할 때와 한국어를 사용할 때 본인의 태도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단편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한국어, 영어를 둘 다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영어를 사용할 때는 태도가 좀 더 편안하고, 느긋하게(chill) 되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어를 사용할 때는 영어를 사용할 때보다 더 예의 있는 태도를 갖추게 되고, 왠지 일을 하는 등 뭔가에 임할 때 ‘빨리빨리’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이는 각 언어가 해당 언어가 사용되는 문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언어를 사용할 때 해당 언어의 문화적 배경이 태도와 감정 표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영어를 사용할 때는 더 직접적이고 솔직한 표현을, 한국어를 사용할 때는 더 완곡하고 예의 바른 표현을 사용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개개인에 따라서 번역기만 사용하는 것으로도 만족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번역기에만 의존한다는 것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제대로 된 경험의 과정을 겪지 못한 채 어쩌면 편향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이 속한 문화권의 시선으로만 고정되는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오히려 번역기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다른 나라의 문화에 더욱 관심이 깊어지게 될까요? 아니면 이것도 역시 기술 발전을 통해 번역기에 어떤 식으로든 각 사회의 문화나 역사, 정서, 감수성까지 반영되어 발전하게 될까요? 이런 질문들 이전에, 먼저 당장 내가 번역기를 사용하고 외국인과 소통한다면, 나는 상대방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소통하는 걸까요? 시끌벅적한 공간에서 음성을 활용한 번역기는 제 기능을 할 수 있을까요? 타이핑하는 그 시간이 서로 간의 간극으로 남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과연 AI 시대에 외국어를 습득하는 일은 더 이상 가치가 없는 것일까요?
외국어 학습에 관하여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 보겠습니다. 그중 현재 지구촌 공용어라고 일컬어지는 영어를 놓고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각 언어는 몇천 년 전부터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아주아주 오래전 기술 수준이 부족하고 지리상으로도 멀어 교류가 불가능하던 시대 때부터 각자 발전해 오며 문화를 형성해 왔습니다. 몇천 년, 몇만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19세기에 들어와서야 산업혁명에 의한 증기선의 출현으로 본격적인 교류가 가능해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엄청나게 긴 시간을 떨어져 서로의 문명을 일구어내었던 한국이 속한 동양과 영어권의 서양은 외모적인 측면에서나 언어적인 측면에서나 문화적인 측면에서나 여러 측면에서 아주 크게 다른 형태를 띠었습니다. 현대에 와서야 거리에서나 상점에서나 일상생활에서 쉽게 영어를 접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영어의 구조와 문자만 보아도 영어와 한국어는 완전히 전혀 다른 언어입니다. 더군다나 언어 안에는 해당 언어권에 관한 문화, 관습, 역사, 생활 등이 최소 몇백 년, 몇천 년, 몇만 년 이상에 걸쳐 압축되어 들어 있기에 번역기의 사용으로는 물론이고 자기 스스로가 현실에서 실제로 영어의 알파벳과 단어, 간단한 문장 짓기의 학습을 시작했다고 해서 언어에 이면에 들어있는 문화와 정신적인 유산들을 단기간에 쉽게 이해하고 수용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이 아무리 서양식으로 현대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서양과는 분명히 문화적으로 다른 점이 크게 있다는 것에 대하여 이견을 달기는 어려울 겁니다.
생활양식이나 정신적 유산 등의 거대한 것이 담겨있다는 의미를 ‘문화’라고 합니다. 이 문화의 척추 같은 존재가 바로 그 문화권의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기술적인 방법으로의 언어 학습으로는 이 언어의 문화적인 부분을 교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현지 방문이라든가, 현지 사람과의 접촉과 교류라든가, 해당 문화권의 콘텐츠를 해당 언어로 접한다거나 하는 살아 숨 쉬는 과정에서 그 문화를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어를 학습하는 목적으로 예를 들면 학생들을 제외하고서는 대개는 여행이나 업무 등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외국어를 익히는 데 있어서 목적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완벽한 원어민 수준이 아니라 자신이 필요한 만큼의 수준만을 목표로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해당 언어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나와는 다른 문화를 수용하려고 노력한다는 발전적인 행위를 하는 그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수용력이 넓어지는 것이고, 해당 외국어 학습을 하는 과정에서 그 문화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스스로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보고 답을 탐구해 나가는 과정에서 사고력 또한 향상되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삶이 더 풍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은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확실한 방법 중 한 가지임을 확신합니다.
- 다음 편에 계속 -
이번 회와 관련하여, 혹시 관심 있으신 분이 있으실지 몰라 제가 브런치에 제일 처음 포스팅하였던 '재미로 더듬어본 언어의 쓸모'를 덧붙니다.
https://brunch.co.kr/@littleaction/1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