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빠른 곳에서, 천천히 전진하는 중
여기서의 500일이 가지는 의미는 각별하다. '현재의 팀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일해온 편이지만 채널톡은 과거 경험의 최고치를 모두 갱신해버렸다. 흔한 허니문 기간이 지나면 콩깍지의 완만한 하강 곡선과 함께 미운정 고운정이 쌓이겠지 생각했는데, 애정 그래프조차 예상을 깨뜨린 곳이기도 하다. 공감하기도 쉽지 않지만 빠져나가기는 더 어려운 채널교 신자 생활 500일을 키워드로 정리해둔다.
* 이전에 회사생활 기록한 글들
https://brunch.co.kr/@littlechamber/193
https://brunch.co.kr/@littlechamber/179
500일동안 내가 버린 것 3가지
이방인 같던 입사 초기에 '이거 해야될 것 같은데 왜 아무도 안 하나요?' 라고 종종 말했다. 왜인지 내 말들은 항상 공허했다. 실행 가능한 전략보다 조급한 감정이 앞선 탓이었다. 금쪽같은 팀의 리소스를 사용하려면 얼마나 설득력 있는 근거가 필요한지 지금은 잠결에도 말할 수 있다 (하하)
정말 좋은 '때'는 나 혼자 결정하는 게 아니다. 얼라인이 맞지 않으면 어떤 열심도 안하느니만 못하다. 때가 왔을 때 '제가 할게요' 하려면 빈틈을 차근차근 채워두어야 한다. 아무리 린하게, 애자일하게 외쳐도 내실까지 린할 수는 없더라. 버티고 다지는 시간 없이는 모든 게 모래성이다.
멋모르고 자꾸 뛰어들려던 내 등짝을 때리고 뒷덜미를 사정없이 끄잡아 당겨 준 리더와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지금도 자꾸 계단 건너뛰어 올라가다 넘어지기 일쑤이지만 내 일세포에 경각심과 인내를 새겨넣을 수 있어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조직에서의 불안은 두 가지로 나뉜다.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불안함과, 나의 영역인데 모르는 부분이 있어 불안한 것. 둘 다 극복하기 녹록치 않지만, 실력의 부족은 그나마 좀 더 다루기 쉽다. 스스로 취약한 부분을 인정하고 도움을 청해 최선을 다해 학습하면 된다.
하지만 내 책임 범위 내에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안개 덮인 지역이 있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속수무책이 되기 십상. 그래서 가시성이 정말 중요하다. 잘 생각해보면 혼자 하는 업무 중에도 가시성 떨어지고 예측하기 어려운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스스로도 파악이 안되는데 누구한테 설명을 어떻게 하나.
매니저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끊임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만들고 팀과 개개인의 불안을 계속 지워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촘촘하게 결을 맞추고 현황을 들여다본다. 한 명의 구성원으로 이 원리를 이해하는 순간 여기서는 안전하다는 마음으로 '안심하고' 일하게 되었다.
어떤 자기훈련의 시기보다 효과적으로 나의 껍데기를 부수는 과정이었다. 뭐 사실은 긴 시간동안 이 문제를 고민해온 덕분에 채널톡에서 '마침내' 홀가분하게 벗어던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과거의 습관들이 없지 않지만 가져갈 것과 내려놓을 것의 구분도 또렷하고 이유도 분명하다.
우리 팀에서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 객관화가 필요하다. 일과 감정(나 자신)을 분리해야 하고 본인의 캐파(이 단어의 표준어 뭘까)를 아는 것과 리소스 관리도 필수다. 약점도 강점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협업해야 매일 단 1mm 씩이라도 전진할 수 있다.
내 껍데기에는 전진을 방해하는 자기방어, 교만함, 오랜 습관 등이 덕지 덕지 얽혀 있었다. 없는 줄 알았는데 있는 것, 치웠다고 생각했는데 남아있는 것, 놓기 싫어서 망설이는 것이 뒤죽박죽이었지. 결국은 '마음을 돌리는' 일, '관점을 뒤집는' 일이기 때문에 차츰 걷어낼 생각 말고 담배 한 칼에 끊듯이 단박에 바꾸는 게 맞다.
500일동안 내가 얻은 것 3가지
과거를 돌아보면 나는 작은 팀으로 똘똘 뭉쳐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수많은 순간을 누렸다. 하지만 '팀'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떻게 동작하는 것인지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늘 역량 있는 개인들이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힘겹게 성과를 쌓아올리며 기뻐하기만 했다.
팀에 속해 있더라도 각자 많은 일을 맡고 있으면 나와 업무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예전의 습관이 있어 다른 동료와 얼만큼의 선을 지키고 어디까지 상황을 공유할 수 있는지 감을 못 잡기도 한다. 일당백의 '담당자'였다면 더 그럴 수 밖에 없다.
채널톡에서 배운 '팀'은 프로세스이고 기능이면서 구조와 로직을 가진 프로덕트 같다. 고객이 성장해야 채널톡이 성공하는 것처럼 내 동료가 성장해야 내가 성공하는 판이 깔려 있다.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이 판이 너무 낯설었는데, 지금은 이런 판이 아니면 어떻게 일하나 싶다.
살면서 롤모델을 가져본 적이 거의 없다. 사실 내가 누군가를 인터뷰할 때마다 꼭 묻는 질문인데, 막상 나는 특히 악기를 그만둔 이후 진심으로 '저렇게 되고 싶다'는 모습을 마주친 일이 없었다. 롤모델 대신 레퍼런스(참고, 사례)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을 때 참 적절한 단어라며 좋아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영영 없을 줄 알았던 롤모델(들)을 채널톡에서 만났다. 물론 단 한 명이 탁월함을 모두 담을 수는 없기 때문에, 여러 명의 롤모델(들)이 갑자기 내 인생에 생겨난 셈이 되었다. 나도 저런 영감을 주고 싶어, 나도 저런 관점을 갖고 싶어, 나도 저렇게 대처하고 싶어, 나도 저런 마음을 키우고 싶어.
권위로 존경을 요구하는 리더가 아니라 정말 배울 점을 가진 리더의 팀에 속해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고 있다. 그리고 좋은 '본보기'가 눈 앞에 있을 때 성장이 얼마나 빨라지고 깊어지고 넓어지는지도 알고 있다. 레슨할 때 백 마디 말보다 한 번 제대로 보여주는 게 100배의 효과를 가지는 것처럼.
처음 채널톡 입사하고 반 년 정도 지났을 즈음 업무 미팅으로 함께 이동하던 동료가 문득 물었다. "코라는 장기적인 커리어 골이 뭐예요?"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 '테크 스타트업 온지는 이제 겨우 4년 정도라 지금은 일단 여기가 재미있다' 정도로 얼버무린 기억이 난다.
목적지가 딱히 보이지 않는 원인은 두 가지로 봤었다. 원래 성향이 그다지 결과나 목표 지향적이지 않다는 것, 그리고 나름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여기까지 건너 온 것이라 당장은 현재에 충실하려는 마음이 크다는 것. 하지만 채널톡에서의 시간이 쌓일수록 '굳이 있을 것 같지 않던' 미래의 경유지들이 차츰 또렷해진다.
악기를 그만두면서 한동안 나침반을 잃은 듯한 상실감이 컸다. 그런데 최근 감각을 되찾은 듯한 기분. 목표를 가지려면 내 강점, 약점, 좋아하는 일,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 채널톡에서의 시간은 특히 '일하는 나'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다. 덕분에 인생 지도에 체크표 몇 개 추가 완료.
500일동안 변하지 않은 것 3가지
아직도 입사 후 첫 타운홀, 첫 팀 싱크, 첫 제품팀 회고 참석의 기억이 생생하다. 상상도 못했던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대화, 자세한 질문과 성실한 답변, 끊임없이 말해지는 비전, 비전에 대한 구체적이고 확신에 찬 말들, 영감을 주는 에너지와 이를 신뢰하고 따르는 에너지의 결합.
여전히 나는 매월 타운홀 때마다, 의사결정이 필요한 싱크 때마다, 이슈 대응 프로세스를 논의할 때마다, 프로젝트 회고를 할 때마다 우리가 같은 비전의 선상에 놓여 있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리더십의 노력과 팔로워들의 노력이 함께 빛을 발하는 걸 보면서 '어떻게 이런 사람들만 모였지' 생각한다.
조직이 먼저 구성원의 손을 놔버리지 않는 것이 이토록 중요한 일이라는 걸 채널톡에 와서 처음 알았다. 이전의 일터에서 '상처받은' 순간들은 죄다 그런 '마음 없음'에 실망해서 라는 사실도 함께 깨달았지. 실은 동료에게, 회사에게 마음을 다해 정성을 쏟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된 예시를 본 적도 없었다.
과정마다 어려움이 없지 않았다. 이미 글로 발행한 여러 얘기들은 당연히 순화된 것이고 감춰진 장면도 많다. 그래도 작년 말 퇴사하는 동료가 '왜 너는 여기 남아있냐' 묻던 때와 똑같은 답을 할 수 있다.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회사도 절대 먼저 포기하지 않으니까.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경험이 아닌 다른 모든 것은 나를 일깨우고 배움을 준다. 그 대상이 동료든, 고객이든, 친구든 다 좋다. 잊지 않으려는 한 가지는 '진심으로 상대방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이는 것'이다. 내가 이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어서 얼마나 좋은지.
채널톡은 정말 over communication 을 사랑하는 조직이다. 고객에게 물어보고, 동료에게 물어보고, 매니저에게 물어보고, 리더에게 물어보고. 왜 그런지 맥락을 이해하고 또 물어보고 또 얘기하고. 내가 대화를 좋아해서 정말 다행이다. 유저 인터뷰를 하면서조차 '이렇게 얘기해도 되어서 좋다' 생각했다.
지나온 시간을 물끄러미 바라보자니, 참 더디게 어렵게 한 고비씩 넘어온 것 같다가도 소위 말하는 스타트업의 속도 때문에 생기는 착시 현상일 뿐 꽤 생동감 있게 원하는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동료들은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하하) 타인의 시선에 더는 짓눌리지 않을 만큼은 자랐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나의 성장에 대해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A만 할 줄 알던 사람이 B도 하게 되고 C도 하게 되더니 빅픽처를, 끝그림을 그리는데 기여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그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 커리어를 이어가면서 굳이 새로운 걸 자꾸 시도하는 사람이었다고 회자되면 좋겠다. (따라하라는 얘기 절대 아님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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