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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The Bankers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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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Feb 04. 2022

채용의 비밀

소설 The Bankers_은행원이란 모름지기 기름기가 좔좔


“대박. 태어난 시를 모르는데 그게 가능해요?”

“뭐. 아주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 그래도 아마 결정적이었을 거야.”

“부장님. 사주가 좋으신가 봐요. 혹시 부장님도 사주 보세요?”          



최 대리가 호들갑을 떤다. 올해 서른인 93년생. 우리 팀의 막내다. 저 카키색 백팩에 무엇이 들어있지 궁금하다. 사무실에 와서 한번 열어보지도 않으면서 매일 열심히 메고 온다. 책상 옆 쓰레기통 위에 툭 던져두었다가 잠시 집에 다녀올 때 또 들고나간다. 최 대리는 성실하고 붙임성이 좋. 점심과 저녁 메뉴 정에 탁월 재능이 있다. 바람직한 막내의 자질을 다 갖추었다. 이 삭막한 전쟁터에서 잡담 주제도 적절히 선정하여 가끔 웃음꽃을 피우게 한다. 오늘의 주제는 나의 채용에 관한 뒷이야기이다. 최 대리가 눈을 반짝이니 박 이사가 술술 풀어놓는다.       



박 이사는 나의 고등학교 오 년 선배이자 현 직장의 사수이다. 예전에 두어 번 얼굴을 본 적은 있었다. 어디나 그렇듯 이 업계도 좁다. 그때 건너 듣기로는 과묵한 워킹 머신(working machine)이라고 했다. 직접 와서 보니 낮이고 밤이고 일만 하는데 퇴근도 잘 안 한다. 여섯 대의 모니터에 업무 외의 화면이 떠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모니터에서 눈을 뗄 때는 책을 읽는다. 만화도 소설도 아닌 업무 관련 서적. 아, 부동산 책을 읽는 것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제목이 ‘학군지도’였던가. 암튼 혀를 내두르게 하는 박 이사의 우직함과 영업왕 김 전무가 만나 업계 15위였던 이 팀을 5년 만에 1위로 끌어올렸다. 그들은 전설이다.          



영업왕 김 전무. 부대표 직함도 달고 있다. ‘은행원은 모름지기 기름기가 좔좔 흘러야 해!’라고 종종 말한다. 본가도 처가도 자가도 모두 압구정 현대아파트인 본투비 강남스타일. 영화 킹스맨의 콜린 퍼스(Colin Firth)가 눈앞에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수트가 잘 어울리는 미중년이다. 브로그 없는 옥스퍼드(Oxfords Not Brogues)를 신고 나타나서는 몽블랑 만년필로 서명한다. 살짝 들린 재킷 사이로 셔츠 소매의 커프스가 반짝인다. 업계 소문난 영업왕이지만 술을 못하고 담배도 안 피운다. 골프도 안 친다. 입털기와 글쓰기로 다 하는 것이다. 찐이다. 그의 비결이 진심으로 궁금하다.       



이곳은 김 전무가 일감을 물어오면 박 이사가 사무실에서 밤낮없이 보좌하는 시스템이다. 최 대리는 전무의 비행기 일정 확인부터 입찰 제안서 제출까지 - 요즘 같은 시대에도 직접 제출을 요구하는 곳이 꽤 많다 - 각종 잔심부름을 도맡아 한다. 종일 전무의 전화를 받고 카톡에 대답하느라 바쁘다. 제안서를 제출한다고 어제는 울산에 다녀왔다. 팀의 성적이 좋아지면서 인력 충원이 절실했고, 그 덕분에 내가 부장의 자리에 들어왔다. 우리는 ‘DCM Team_Korea’다.




         


“그렇게 논리적인 분이 왜 채용 같은 중요한 문제를 철학관에서 의논한대요?”

“이유가 있지. 김 전무에게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2015년이 있거든.”

“무슨 일이 있었어요?” 꿀꺽. 최 대리가 침을 삼켰다. 내 두 귀도 쫑긋 섰다.          



박 이사가 의자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그의 자리는 창문 바로 옆이다. 가끔 찬 바람이 들어와서 춥다고 투덜거리긴 하지만 하늘이 잘 보이는 그 자리에 꽤 애착이 있는 것 같다. 겨울 하늘이 새파다.

     


“2015년에 일이 좀 많았어. 일단 인턴이 네 명이나 연달아 그만뒀지. 첫 인턴은 2주 만에 나갔어.”

힘들어서요?” 내가 물었다.

“그렇지. 이력서에 외국계 투자은행 경력 한 줄을 넣으러 왔던 애가 업무 강도를 보고 놀랐나 봐. 바로 그만두고 다른 곳 알아보더라고.”

“이해는 하지만 2주는 너무하네요.”

박 이사의 뒤통수를 보며 말했다.          



“그다음에 온 인턴은 한 달, 세 번째 인턴은 한 달 반 정도 버텼어. 그전까지는 인턴으로 온 친구들도 최소 6개월은 근무했는데 말이야. 우리가 진짜 일이 많은 것인지 세대가 바뀐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었어.”

박 이사가 두 손을 등 뒤에 대고 허리를 젖혔다.

“세 번째 인턴이 그만두던 날 전무님과 나는 진지하게 고민했어. 우리가 문제가 있나 싶어서 말이야.”

“있죠…. 하하하.” 최 대리가 멋쩍게 웃으며 박 이사의 눈치를 살폈다.



한 번만 더 해보자며 네 번째 인턴을 뽑았어. 면접 때 여러 번 물어봤지. 업무 강도가 상당한데 괜찮겠냐고. 괜찮다고 하길래 뽑았는데 다섯 달하고 나갔어. 넷 중 가장 오래 있긴 했어. 그 이후로 인턴은 뽑지 않기로 했지. 채용 프로세스에 에너지가 많이 들잖아.”

“그렇긴 해요.” 최 대리가 얼른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인사팀장이 따로 그 친구를 불렀나 봐. 그전에 그만둔 인턴들에게도 연락했던 것 같아. 애들이 계속 그만두니 문제 삼을 만하지. 인사팀에서는 혹시라도 ‘직장 내 괴롭힘’이나 ‘위계에 의한 권력 남용’ 같은 일이 있었는지 조사했던 것 같아. 너희도 알다시피 김 전무랑 인사팀장이 서로 코드가 안 맞잖냐.”



계약서에 서명하던 날이 생각났다. 김 전무와 일하면 고생길이 훤하다며, 앞으로 힘내라고 인사팀장이 한마디 했었다. 나를 걱정하는 마음인 줄로만 알았는데.



최 대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래서요?”

“별일은 없었어. 인턴인데도 일이 너무 많고 퇴근이 힘들다. 그 정도 불만이었지. 그래도 인사팀에서 조사하니 전무님 심기가 불편했어. 괜히 귀찮기도 했고.” 

자리에 앉아 펜을 돌리며 이야기하던 박 이사가 잠시 아웃룩의 메일함을 확인했다. 시계도 슬쩍 쳐다보았다.

“그랬군요…. 그런데 또 다른 일도 있었어요?”

나는 궁금했다.          



“응. 몇 달 뒤 전무는 갑자기 검찰 조사를 받았어.”

“네??”

최 대리는 입으로 가져가던 초코송이를 와르르 떨어뜨렸다.



“옆 팀에 고위공직자 아들이 신입으로 왔었대. 그리고 얼마 후에 김 전무는 그동안 거래가 없었던 공기업 한 곳과 서명을 했어. 정부에서 채용 비리 근절을 외치던 때였는데, 갑자기 우리 회사가 검토 대상이 된 거지. 고위공직자 아들을 뽑아주는 대가로 계약한 것 아니냐, 뭐 이런 논리였어. 갑자기 검찰 들이닥치고 컴퓨터 다 가져가고 전무 불려 가고. 아이고. 그때는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와. 어마어마하네요. 진짜 그런 커넥션이 있었어요?”

최 대리가 물었다.               

“아니 전혀. 걔가 그런 집 아들이라는 사실은 인사팀 관계자 두세 명만 알고 있었대. 걔는 본인 실력으로 입사했고. 우리 회사가 나름 외국계잖냐. 글로벌 스탠더드 준수해.”

이번에는 내가 말했다. “조사는 금방 끝났겠네요?”       



“말도 마. 그렇다고 조사를 금방 끝내겠? 뭐라도 찾으려고 눈을 시뻘겋게 뜨고 한동안 들들 볶았다. 전무님 그때는 진짜 고생 많이 하셨지. 별일 없이 끝나긴 했지만 말이야.”

“휴, 다행이에요.” 최 대리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뭐…. 그해 가을에는 김 전무 개인 메일이 해킹당해서 IT팀과 며칠 동안 확인하고 그랬어. 해커 IP주소가 루마니아였나. 개인 카드 정보 털렸어. 그쪽에서 결제를 시도했는데 카드사에서 막았대. 전무님은 혹시나 업무상 중요한 내용이 유출되었을까 봐 엄청 마음 졸이셨지. 다행히 중요한 내용은 없었던 것 같고.”

박 이사가 책상 위에 있던 삼다수 병을 들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겨울에는 점심 먹으러 가다가 길바닥의 얼음을 못 보고 넘어졌는데 오른팔이 부러져서 깁스를 한 달 넘게 하셨어. 광화문 한복판에서 넘어졌으니 얼마나 쪽팔렸겠냐. 그건 둘째치고 미국 출장, 프랑스 출장. 출장이 줄줄이 취소되었지. 하필 오른팔이라 젓가락질도 못 하고 똥 닦을 때도 불편하다내내 투덜거렸어. 김 전무에게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2015년이야.”

“그럴만하네요.”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 문제냐를 고민하다가 결국 사주까지 봤대. 그 이후로는 매년 정초에 신년운세를 보러 다니지. 한 군데만 가는 것도 아닌 것 같아. 서울 시내 유명한 곳 중 세 곳 정도로 추린 것 같더라고. 중요한 직원을 채용할 때는 최종 후보자 명단을 들고 가서 궁합도 보고 그러셔.”

“전무님 교회 다니시지 않으세요?”

최 대리가 아는 체를 했다.

“맞아. 일요일마다 사모님과 부모님 모시고 서초동에 있는 큰 교회에 성실히 가시지.”

….” 우리는 숙연해졌다.          



박 이사가 의자를 돌리며 마우스를 바쁘게 움직였다.

“이번 강 부장 채용 건은 중요했어. 우리 팀원을 뽑는 일이잖아. 명단을 들고 두 군데는 갔을 거야. 강 부장이 전무님과 궁합이 좋았던가, 아니면 사주가 엄청 좋았던가 그랬나 봐. 이제 일하자.”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이력서에 쓰는 생년월일이 이렇게 활용될지는 상상도 못 했다.           



나의 사주. 박 이사와 최 대리 앞에서 말할 수는 없었지만 지난 몇 달간 나의 화두이기도 했다. 나는 홍콩에서 일하고 있었다. 홍콩에서 시위가 발생하자 회사는 전 직원 재택근무를 시행했다. 외국인은 본국으로 돌아가서 일하는 것도 가능하도록 했다. 덕분에 나는 가족들과 서울에서 머물며 재택근무를 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며 집에서 일하는 기간이 길어졌다. 일 년 반쯤 지났을까. 국외 재택근무를 더는 허용할 수 없다며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정해진 날짜까지 모두 홍콩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나는 여러 이유에서 홍콩으로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아니 갈 수 없었다. 이직을 필사적으로 알아보았다. 전염병 탓에 경기가 잔뜩 움츠러들어서인지, 아니면 서울의 사정이 좋지 않아서인지 옮길 만한 곳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답답했다. 답답하니 별생각이 다 들었다. 어느 날 아내에게 물었다.          



“장모님, 요즘도 어디 물으러 가셔?”

“가는 것 같아. 스님한테도 가끔 여쭤보고. 산할매한테도 여전히 가고.”

“어디가 더 영험한 것 같아?”

“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응. 나의 미래.”

“자기 답지 않게 왜 그래. 의지의 남자가.”

“좀 물어봐 줘. 내가 서울로 들어올 수 있을지 말이야.”          



아내는 ‘산할매’님께 전화상담을 했다. 애들이 어려서 그 먼 그곳까지 직접 갈 수는 없었다. 아내는 산할매가 단호하게 ‘어려워요’라고 말했다고 했다.          



“자기. 한 십 년은 외국에서 떠돌아다닐 것 같다는데?”

“안된대? 절대?”

“내가 여러 번 물어봤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지금과 같은 조건으로는 들어올 수 없대. 연봉이든 삶의 질이든 간에 말이야. 무리하지 말고 홍콩으로 다시 나갈 준비 하자. 나는 마음 정리했어. 유치원이나 알아볼게.”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지금과 같은 조건’이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솔직히 상당히 좋은 조건 속에서 일하고 있었다. 금융계의 공무원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괜찮은 워라벨을 유지했다. 홍콩의 물가를 반영해서 책정된 연봉은 만족스러웠다. 서울에서의 체류 기간이 길어지며 한국에서도 납세의 의무를 이행했으나 참을만했다. 재택근무 덕분에 첫째가 ‘엄마’ 보다 ‘아빠’를 더 좋아했다. 둘째 출산 즈음 배우자 출산휴가도 10주나 사용할 수 있었다. 이 조건을 포기할 것인가.          



가뭄에 콩 나듯 이직할 만한 자리가 올라왔다.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뿌렸다. 드디어 연락이 왔다. 면접 날짜가 정해졌다. 순조로웠다. 전무, 서울사무소 대표, 홍콩의 아시아 태평양 본부장. 대면 또는 화상으로 인터뷰를 했다. 얼마 후 정신 차려보니 나는 광화문의 어느 사무실에서 계약서에 서명하고 있었다.          



그렇게, 서울에 있는 외국계 IB의 DCM부장으로 이직에 성공했다.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IB.



성공. 과연 성공한 것일까.




본 소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연재 예정입니다.

본 소설은 허구의 인물과 사건, 배경을 담고 있습니다.

IB는 Investment Bank‧투자은행의 약자이고 DCM은 Debt Capital Markets‧채권자본시장 부서의 약자입니다.

사진은 Pexels에서 검색하여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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