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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Nov 01. 2023

일기 파업

좌충우돌 정신과 입원기(10)

입원 36일차

전공의 선생님이 돌아오셨다!!! 큐브 맞추고 있었는데 소리 없이 뿅 나타나셨다. 잊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했고 잊고 보내줘야 내가 성장하는 그런 때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교수님은 치료 목표로 디데이까지 생존하는 것을 언급하셨다. 뭐… 내 디데이 어차피 망한 거였으니까.


할 말도 없는데 쥐어짜서 쓰는 것보단 안 쓰는 게 나을 거 같다. 일기 파업이다. (진짜 일기장에는 날짜밖에 안 적었고 면담록은 블로그에 올린 것을 보고 참조해 썼다.)


입원 37일차

면담 엄청 오래 했다. 한 시간 넘게?? 한참 걷다가 앉아서까지 이야기함. 대충 기억나는 건 진짜로 9월이면 다른 병원으로 가신다는 거. 하루만 보고 살기. 다들 나 보고 하루씩 살래. 어쩌면 자꾸 잊어버리는 게 좋은 걸지도 모른다는 거. 나쁜 일도 계에속 기억을 하고 그 기분이 유지가 된다면 좋을 게 없으니까. 아빠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건 아빠한테는 기대가 없기 때문일 거라는 거.

<나아지지 않는 날 데리고 산다는 건>

쌤이 추천해 주신 노래. 너무 좋아… 같이 노래 들었는데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교수님은 오늘 하루를 잘 살았다고. 잘했다고 해주셨다.


입원 38일차

전공의 선생님과 탁구 쳤다.

교수님께 8월 말에 퇴원하고 싶어요 그랬더니 안될 거 같은데? 그러셨다.ㅠㅠ 나 언제 퇴원하지. (안 된다고 하시고 8월 말에 퇴원시켜주심)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건 너무 가까이 몰두해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거리를 두고 보는 것이 필요하다. 아직까지도 공감하는 말이다.


입원 39일차-입원 40일차

정말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아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 복도에 있는 공용 컴퓨터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래서 아무 말이나 막 써서 블로그에 올렸다. 덕분에 감정해소는 많이 된 거 같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기계식 키보드로 글 쓰는 게 핸드폰 자판보다 훨씬 글이 잘 써진다.


입원 41일차

교수님이랑 전공의 선생님이랑 셋이서 루미큐브를 했다. 내 두 분 주치의랑 루미큐브라니. 그 상황 자체가 너무 재밌었다. 근데 교수님 루미큐브 진짜 잘하심.

마지막으로 친한 오빠까지 퇴원하고… 난 더 이상의 인간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단 생각에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참 무기력한 날이었다. 뭘 해야겠단 생각도 안 들었고 그럴 의지도 없었고. 사실 나도 내가 무슨 생각으로 살고 있는 지 모르겠다.

생각에 매몰되지 않기. 어젠가 그젠가 전공의 선생님이랑 한 이야기였다. 바다에 둥둥 떠 있는 건 괜찮지만 가라앉는 건 힘들다고.


입원 42일차

어제에 이어 하루종일 잤다.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내일 대회진이 오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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